아들의 편지
엄마
나는 가끔 묻습니다. 언제부터 당신의 마음이 내 안위의 작은 기척에도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을까. 기억이 옅어지는 지금도, 내가 한 번 기침하면 얼굴빛이 달라지고, 피곤해 보이면 눈길이 여러 번 머뭅니다. 이름은 잊고, 장소도 흐려지지만, ‘괜찮나’하고 건너오는 그 마음의 물결만은 늘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의무가 아니라 인연의 반사신경—당신과 내가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는지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듯 합니다.
주민센터 앞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회복지사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내려오던 당신이, 계단 끝에 서 있던 나를 보는 순간 망설임 없이 달려왔지요.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찾듯,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길을 냈습니다. 잠시 주변의 시선이 멎은 듯했고,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치매라는 상황이 삶을 덮을 수는 있어도, 인연의 향방까지 바꾸진 못한다는 것을. 모든 이름이 흩어져도, 당신의 발걸음은 여전히 나를 향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신의 선택은 ‘나를 희생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기엔 너무 촘촘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연이 이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받아 든 일이었지요. 분필가루가 손가락에 하얗게 묻던 어느 겨울, 교무실 창밖으로 눈발이 소리없이 흩날리던 날, “뇌졸증으로 거의 하반신이 마비되어 누워계시는 시어머니를 혼자 두고 수업에 들어가면 마음이 자꾸 밖으로 나간다.”라며 사직서를 반으로 접어 교장선생님 책상 위에 올리던 그 순간의 손 끝 떨림을 당신은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이후 15년 동안 당신의 하루는 학교 종이 아니라 약탕기 끓는 소리에 맞춰 흘렀습니다. 새벽엔 미지근한 소금물로 입안을 닦고, 낮엔 손마디가 퉁퉁 부으면 따뜻한 수건을 데어 눌러 주고, 밤엔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을 때까지 등을 쓸어내리며 기다렸지요.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당신의 배움과 목소리, 아이들 앞에서 빛나던 자리를 내려놓았는지, ‘왜 세상일의 호출을 뒤로 하고 한 사람의 밤을 지키길 택했는지’섭섭함과 의문이 섞인 마음으로 한동안 그 결정을 멀찍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돌고, 당신의 기억이 느슨해지면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인연의 사슬—누군가의 시간 속에 머물러 주는 일이 또 다른 생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는 사실을요. 당신이 시어머니의 밤을 지켰기에, ‘나’라는 하루가 존재할 수 있었고, 당신이 내 어린 숨을 살폈기에, 지금의 내가 누군가의 곁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당신 곁에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밥솥 김이 오르는 동안 약봉투를 날짜별로 나누던 손의 질서, 방문을 조용히 닫고 다시 열며 잠깐의 숨을 만들어내던 호흡,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경계를 정하던 단호함. 그 풍경들이 내 몸에 새기듯 들어와, 오늘의 나를 움직입니다. 이제 내가 당신을 돌봅니다. 이 일은 역할의 교대가 아니라, 인연이 이어 쓰는 문장입니다. 당신이 할머니를 돌보던 그 문장의 다음 구절에, 내가 이름을 적을 차례가 온 것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간은 필연이면서도 의미입니다. 필연인 까닭은, 당신과 내가 서로의 삶에 이미 오래전부터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고, 의미인 까닭은, 그 스며듦이 또 다른 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나는 예전의 나처럼 의문을 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의 관계든, 언젠가는 ‘머물러 주는 차례’가 옵니다. 그때의 선택은 누군가의 생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생을 깊게 만드는 일입니다. 나에게 돌아온 이 차례가 ‘억울한 의무’가 아니라, 당신이 내게 남겨 준 ‘배움의 순번’임을—그리고 그 배움이 우리의 바깥,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음을—나는 조용히 믿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오래된 이야기를 더 덧붙입니다. 당신이 넷째를 가졌을 때, 위로 누나 둘이 있으니 주변에선 “이젠 그만하라”는 말이 많았다지요. “아이 넷을 돌보며 교단에 서고, 또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까지 한 몸으로 감당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걱정도 뒤따랐고요. 그때 외할머니가 조용히 당신의 손을 잡아 용하다는 한의원으로 이끌었죠. 문지방을 막 넘었을 때였습니다. 한의사는 맥도 짚기 전에 당신의 얼굴과 걸음새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습니다. “이번 아이는 귀한 아입니다. 놓치지 마이소.”
지금 돌아보면, 그날 외할머니의 걸음엔 단순한 설득 이상의 뜻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 본인도 훗날 치매로 오래 앓다 떠나셨지요.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데도, 마치 마음의 더듬이가 먼 훗날의 사정을 먼저 쓸어본 듯했습니다. 인연의 고리가 당신에게도 이어질지 모른다는 예감—그 예감 때문일까요, 외할머니는 딸인 당신 곁에 언젠가 ‘누군가의 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고, 그래서 한 생을 이생으로 이끌려고 문지방을 넘어섰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미래를 계산해 낳고 태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랑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질서—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결—를 더 깊은 층에서 감지하고, 그 감지를 따라 조용히 방향을 내주곤 합니다.
그 한 줄의 말, “놓치지 마시오,”는 그래서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손길, 한의원의 문턱, 당신의 망설임과 숨—이 작은 요소들이 겹치며 한 생을 세상을 향해 밀어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의 ‘나’이고, 세월이 돌아 나는 당신 곁을 지키는 손이 되었습니다. 인연의 깊이와 하중은 눈앞의 시선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아주 오래전의 걸음, 아주 미세한 고개 끄덕임 하나가, 훗날 누군가의 침상 곁에서 온도를 맞추는 손으로 움직입니다. 그 복잡하고 은밀한 질서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차례에 맞춰 한 사람의 밤을 지키고, 또 다른 날에는 누군가의 손에 기대어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나는 압니다. 그날 문지방을 넘던 발걸음이, 지금 당신과 나, 두 존재의 밤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돌아보면, 이 돌봄은 대단한 결심의 결과라기보다 오래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인연의 길 위에 서 있는 일 같습니다. 누군가의 설득, 문지방에서 건넨 한마디, 망설임 끝에 택한 방향—그 작은 결들이 오랜 시간을 돌아 지금의 수고와 안심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를 의무가 아니라 ‘외면할 수 없는 인연’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이 시어머니 곁에 머물렀던 그날들처럼, 나는 오늘 당신 곁에 머뭅니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누구의 삶에도 이런 문지방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훗날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손을 만들어 줍니다.
나는 그 사실을 믿으며, 당신의 숨결에 맞춰 오늘도 자리를 펴고 앉습니다. 오래전 한의원 문 앞에서 시작된 말 한마디가, 이렇게 지금의 밤을 지켜 주고 있음을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를, 나는 오늘 여기서 또 잇습니다. 이제 내가 돌봄을 맡아 이어 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교대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서로의 삶에 스며 있던 결을 따라,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는 일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처럼—서로 기대어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모양—당신이 나를 길러 내가 돌볼 수 있고, 내가 돌보고 있어 당신은 지금-여기에 또렷이 서 있습니다. 숨과 눈빛, 걱정과 웃음이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서요.
가만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당신이 태어난 날의 바람, 한의원 문턱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 그리고 외할머니의 손길까지. 그 모든 것이 겹쳐져 ‘나’라는 하루가 건너왔고, 이제는 ‘당신’이라는 하루를 다시 건너가게 합니다. 우연이라 부르기엔 너무 오래 준비된 인연, 억지로 붙잡을 필요도 없이 향처럼 스며드는 인연. 나는 그 인연 덕분에 한 사람으로 서 있었고, 그 인연을 따라 오늘의 돌봄을 배웁니다. 만약 지금처럼 당신이 내게 기대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관계의 뜻을 이만큼 깊게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은 날들은, 서둘러 앞서가거나 뒤처지지 않고, 발을 맞추어 걷는 동행이었으면 합니다. 불편은 덜고, 웃음은 조금 더 얹으며, 기억이 흩어져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의 사소한 장면으로 확인하면서요.
당신은 어떤 기대와 향기를 머금고 이 세상에 오셨을까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 기대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깊은 인연의 결과였겠지요. 나를 무조건적인 아들로 받아들이셨고, 나는 그 선택 덕분에 이 세상에서 한 존재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고단한 세월조차도 감사하게 여깁니다.
나의 삶에서 당신은 언제나 봄날의 꽃향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름 모를 들꽃이 바람에 스쳐 지나갈 때 느껴지는 향기처럼, 눈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온 마음을 적시는 힘. 당신의 삶이 내게 그러했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인연이란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향기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임을.
남은 날들, 인연이 들려주는 한 곡의 느린 춤에 맞춰 서로의 걸음과 숨을 맞추어 지냈으면 합니다. 걱정은 덜고 웃음은 더하며, 기억이 흩어져도 이 인연과 사랑은 흩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해 가면 좋겠습니다.
나를 세상으로 보내 주시고, 이름 불러 세워 주시고, 늘 안부를 먼저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배운 이 마음을 내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건네 보려 합니다. 당신이 내게 그랬듯이요. 당신은 오늘도 편히 쉬시고, 나는 곁에서 조용히 살피겠습니다. 이 고마움과 이 인연을, 끝나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인연이 이어준 자리에서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