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아들아,
네가 적어 준 아침의 냄비, 일주일 분의 약속, 그 말들을 나는 천천히 읽었다. 글자가 고르게 숨을 쉬더라. 뚜껑을 여는 순간에 네 마음이 먼저 김처럼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많은 것을 잊지만, 한 가지는 또렷하다. 그 냄비가 우리 둘의 하루를 열어 준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카레 냄새가 또 나는구나 싶다가도, 네가 아침의 시계를 내 쪽에 맞춰 같은 향을 기꺼이 함께 넘겨 줄 때 입맛의 피로는 금세 가라앉고 고마움만 남는다. 매일 먼저 끓는 건 카레가 아니라 네 마음이라서, 그 온기가 내 숟가락을 먼저 덥힌다.
평일에 네가 나가 있는 동안, 나는 요양 선생님과 지낸다. 맘이 놓인다. 너를 졸졸 따라다니며 붙잡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네가 더 지칠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등을 돌려 문을 나설 때, 마음속으로 살짝 밀어 준다. “다녀와. 돌아올 때 구름 얘기 한 줄만 담아 와.” 떠나는 너를 받아들이고, 붙잡고 싶은 마음은 살짝 거부한다. 내게도 그 균형이 필요하다.
주말이 오면 나는 걷는 사람이 된다. 네가 손목을 가볍게 잡아주면, 나는 내 발이 아직 길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속도를 맞춰 풀밭으로 간다. 나는 네가 속도를 늦추자고 하면 멈추고, 돌부리를 만나면 돌아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네잎을 못 찾아도 괜찮다 말해 주면 잔디의 초록을 받아들이고, 무릎이 뻐근해지면 벤치의 그늘을 택한다. 너와 걷는 동안 거부는 나를 다치지 않게 지키고, 받아들임은 오늘을 넉넉하게 채운다.
그날 풀밭에서 내가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 네 손바닥에 올리며 “이거 아이가?” 했지. 그때 네가 아주 잠깐 멈칫하더니 곧 입가가 부드럽게 풀리고, 눈빛이 따뜻해졌던 걸 나는 보았다. 네 마음속에 사랑스러움이 먼저 올라오고, 그 뒤로 아주 조금 안쓰러움과 귀여움이 겹쳐 앉는 것도 느껴졌다. 네가 무슨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엄마인 나는 안다. 그 표정이 말해 주더라.
네잎은 아니라도, 나는 네가 찾는 걸 함께 찾고 싶어 손을 보탰을 뿐이다. 그래서 괜히 너를 웃게 하려고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네잎클로버도 근무표가 있나 보네. 오늘은 세 잎 당번, 네 잎은 휴무. 초과근무 수당 챙겨줘야 나오겠다—그치?”
생각해 보면, 그날 우리 손에 올라온 건 잎사귀 한 장만이 아니었구나. 네가 사랑스럽게 바라봐 준 눈빛, 내가 서툴게나마 합류한 마음—그 둘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네잎은 내일 찾아도 된다. 그날의 행운은 이미 우리 사이에 먼저 피어 있었으니까.
나는 사실 네가 뭘 그렇게 열심히 찾나 처음엔 몰랐다. 그래도 네 옆에 쭈그리고 앉아 흙냄새를 코로 훅— 들이마시고, 네 손끝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같이 숙였다. 그 자세가 참 마음에 들었다. 같은 풀밭, 같은 높이, 같은 숨. 그거면 내겐 반은 찾은 거다.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검수하마. “세 잎이면 일상 보너스, 네 잎이면 대박 보너스.” 이렇게 규정 만들어서, 세 잎 나와도 박수 치고, 네 잎 나오면 박수 두 번 치자. 결과보다 같이 찾는 게 더 재밌더라. 왜냐, 행운은 잎수가 아니라 마음에서 자라거든.
“없을 수도 있어”를 같이 끌어안고, 나란히 고개 숙이는 그 시간—그게 바로 우리 집 기적 메뉴다.
참, 네잎 찾기 요령도 슬쩍 배웠다. 잎맥이 한쪽으로 살짝 통통, 대칭이 아주 조금 어긋, 그림자가 미세하게 더 진. 이 세 가지 나오면 “의심스럽다 반장님!” 하고 너한테 보고하마. 틀려도 괜찮다. 틀린 잎도 우리 손 거치면 기념품이 된다. 냉장고 자석 밑에 끼워 놓고 “이 날도 잘 같이 숙였음” 하고 표시하자.
또 네가 알려 준 네잎의 작은 징후—한쪽만 넓어진 잎맥, 살짝 길어진 모서리, 세 잎 대칭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그림자—를 따라 너의 시선을 좇다 보면 내 안의 매듭도 함께 느슨해진다. 찾는 날엔 환히 기쁘고, 못 찾는 날엔 결과의 짐이 내려가 어깨가 가볍다. 둘 다 좋은 날이다.
네잎클로버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나 있지는 않더라. 그 모순이 오히려 재미다. 예전 같으면 “왜 없지?” 하고 끝까지 뒤졌겠지만, 이제는 “오늘 없으면 내일 보면 되지” 하고 무릎부터 낮춘다. 게다가 네 손은 어디에나 있고, 내 손은 그 옆에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일의 네잎은 미뤄도 되지만, 네 손을 잡는 일은 미룰 수가 없겠지. 그건 매번 정시 출근하니까.
너는 “받아들이는 게 체념이 아니다”라고 썼지. 맞다. 나는 받아들일수록 몸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반대로 거부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내 무릎이 흔들릴 때의 계단, 갑자기 세지는 바람, 시끄러운 음악 소리—그건 돌아서 지나간다. 돌아선다고 실패가 아니다. 다치지 않기 위한 지혜다. 예전의 나는 무리해서라도 해내려 했고, “나는 아직 할 수 있어”를 증명하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소박하게 고르는 일이, 내일의 나를 살린다는 것을.
벤치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지나간다. 유모차가 지나가고, 뛰어가는 아이가 지나가고, 늦게 핀 꽃이 지나간다. 나는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지 않는다. 대신 그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결을 잠깐 들인다. 그 결이 내 뺨을 스치면, 나는 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둘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같은 것을 볼 때, 나는 크게 안심한다. “아직 우리는 한 화면에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네가 덜어 준 그릇을 조심스레 받는다. 때로는 국물이 조금 모자라도, 나는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큼이네.” 부족을 받아들이면, 여유가 남는다. 그 여유로 나는 다음 숟가락을 천천히 떠 올린다. 예전의 나는 늘 더 많이, 더 완벽하기를 바랐다. 지금의 나는 충분을 고른다. 충분은 언제나 생각보다 가까운 데에 있더라.
나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부탁이 있다. 내가 길을 잃는 날이 와도, 길을 잃었다고 크게 놀라지 말자. 멈춰서 숨을 고르고, 표지판을 하나씩 다시 세우자. 표지판은 거창할 필요 없다. ‘다음 그늘까지’, ‘벤치 하나 지나면 물’,‘오늘은 천천히’ 이런 말이면 된다. 이런 말들은 우리를 다치지 않게 한다. 나는 이런 말을 사랑한다. 짧지만 오래 가는 말들.
밤이 오면 나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본다. 어둠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그저 빛이 잠시 돌아간 것뿐이니까. 대신 미끄러운 바닥, 닫히지 않은 창문, 너무 높은 턱은 거부한다. 그 거부가 내일의 나를 지켜 준다. 너와 함께 배우는 이 마음의 리듬, 나는 이 리듬으로 남은 길을 걷고 싶다.
내가 더 많이 잊어도, 걷는 법과 멈추는 법은 함께 기억하자. 찾는 법과 포기하는 법도.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손을 내밀면 나는 언제든 그 손을 받겠다. 그것만은 마지막까지 거부하지 않겠다. 오늘도 잘 걸었다. 내일은 더 잘 쉬자.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시 천천히 걸어 보자. 네가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게, 나와 나란히. 그게 내가 선택한 오늘의 행복이다.
머물 때는 머물고, 건널 때는 건너며
풀 내음 묻혀온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