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죽음과 삶 사이의 물마루(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by stone



아들아,


네가 밤마다 내 숨을 세며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밤에는 꿈과 현실이 뒤섞여 창문이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고, 베개가 구름처럼 가벼워지기도 하는데, 그때 네 발소리가 방문 앞에서 살포시 멈춘다. 그 발소리만으로도 나는 안심한다. 내가 잊은 많은 이름과 길들 사이에서, 네 발소리는 길잡이 별처럼 반짝인다.


그때의 일을 너도 이렇게 기억하는구나. 코로나가 집안을 눌러 앉았던 며칠, 체온계의 짧은 소리가 밤을 잘라 놓고, 젖은 수건의 온기가 방의 공기를 조금씩 바꾸던 그 시간들을 나도 잊지 못한다. 마스크 너머로 네 눈이 먼저 웃음을 건네던 걸, 두 겹 장갑 낀 손끝이 내 이마를 스치며 “조금만 더 버텨요” 하고 말하던 그 촉감을 나는 지금도 안다.


나는 그때 내 몸의 사정을 말로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내 숨 사이의 간격을 세고, 기침의 깊이를 듣고, 물잔의 높이와 약의 시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웠다. 텔레비전 속 숫자들이 자꾸 마음을 가라앉힐 때, 너도 열이 나면서 냄비에서 김을 조금 더 올리고, 수건을 한 번 더 데우고, “지금 도울게요”라는 짧은 말을 잊지 않았다. 말이 줄어든 내 쪽에서는 그 한마디가 가장 큰 약이었다.


그때 배웠다. 위급 속에서도 사람을 붙드는 건 긴 설명이 아니라, 순서 있는 작은 손길과 한 줄의 안심이라는 것을.


밤이 깊어지면 내 기침이 파도처럼 몰아쳤지. 한 번 크게 다녀간 뒤 잠깐 찾아오는 고요—그 아주 짧은 틈에 너의 숨도 함께 풀리는 걸 느꼈다. 네가 말한 ‘얕은 여울’이라는 비유가 나는 참 좋다. 내게 그 여울은, 기침 끝에서 돌아오는 한 모금의 숨, 수건을 새로 갈아 덮을 때 어깨에서 빠지던 힘, 그 잠깐의 평탄함이었다.


우리는 그 짧은 평탄함을 발판 삼아 다음 파도를 넘었다.


그때부터 나는 떠남을 벼랑이 아니라 완만한 건너감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문턱 같은 자리. 먼저 냄새를 맡고, 너를 한 번 더 보고, 속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야 발을 내딛는 자리.


돌아보면, 그 며칠은 너와 나를 더 단단히 엮어 주었다. 약국이 비어 있고, 전화 연결이 멀고, 도움을 부르기도 애매한 밤마다, 너와 나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을 고르고 또 골랐다. 불빛을 낮추고, 물을 덥히고, 자세를 조금 바꾸고, ‘지금 2분’만 견디자고 조용히 맞잡던 약속, 그 연습이 지금도 두 사람의 숨을 살리고, 나날의 길을 매만져 준다.


떠남을 미리 불러오지도, 억지로 밀어내지도 않고, 오늘의 돌다리를 가지런히 놓는 마음. 너는 그 마음을 나에게 보여 주었고, 나는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혹시 또다시 비슷한 밤이 온다 해도, 나는 덜 두렵다. 네가 내 얼굴을 한 번 살피고, 수건을 한 번 더 덮어 주고, “괜찮습니다”라는 낮은 목소리로 방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드는 걸 나는 안다. 그게 우리 집의 방법이니까. 벽처럼 보이던 것들을 여울로 바꾸는 기술. 네가 내게 가르쳐 준 기술이다.


그러니 내 걱정 너무 오래 하지 마라. 그때도 우리는 건넜고, 다음에도 우리는 건널 것이다.


파도가 오면 숨을 맞추고, 고요가 오면 고요를 마신다.


그 사이사이에 너의 손이 있고, 나의 미소가 있다. 그 손과 미소가 있을 동안, 나는 평안하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저문 뒤에 문이 열리면—너에게 배운 그 순서대로—고맙다는 말부터 먼저 꺼내 보겠다. 그때 너는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다음 날의 밥을 지으면 된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약속이니까.


무상이라 했지. 맞다, 모든 게 변한다. 나는 가끔 내 혀끝에서 단어가 미끄러지는 걸 본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맞물리지 않아, 문장들이 뜨개실처럼 소리 없이 풀려날 때가 있다. 그런데 한 겹 풀리고 나면 이상하게도 바람길이 열린다. 문장 사이로 드나든 바람이 내 뺨을 식히고, 엉켜 있던 마음을 조금 풀어 준다. 변한다는 건 무섭기만 한 일이 아니더구나. 오래 입던 외투를 벗듯, 손에 익은 슬픔도 언젠가는 벗을 수 있다.


무아도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네가 내 아들”이라는 말에 마음이 꼿꼿이 섰다. 그 말이 든든한 울타리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울타리를 조금 열어둔다. 너를 내 것으로 꽉 쥐지 않고, 네가 나에게 머무는 시간만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너는 더 선명해진다. 네가 누구인지 모르는 순간에도, 네가 나를 위해 기울이는 작은 몸짓들—담요를 올려 주고, 컵을 같은 자리에 놓고, 말 대신 미간을 펴 주는 그 표정—이 더 잘 보인다. ‘내 아들’이라는 단단한 이름 대신 “지금 곁에 있는 너”라는 따뜻한 숨을 느끼기로 했다. 무아는 서늘한 말이 아니라, 따뜻하게 쥐고 있던 손을 살짝 풀어 주는 말이었다.


고통은—너도, 나도—모른 척할 수 없다. 어떤 날은 발목에 작은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걸음이 무겁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눈물이 먼저 고인다. 그래도 나는 고통을 내다 버리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 무릎 위에 올려두고, 때로는 품에 안는다. 그러면 고통도 숨을 쉰다. 네가 건넨 따뜻한 물 한 컵, “괜찮습니다”라는 네 말 한마디가 그 숨을 길게 해 준다. 고통이 나를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 주면, 그 자리에 작은 길가 풀잎 같은 평온이 자란다. 나는 그 풀잎을 매일 조금씩 쓰다듬는다.


너는 윤회를 물었지. 전생, 다음 생… 글쎄다.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전생에 나는 시장에서 너를 자주 보던 상인이고, 너는 늘 내 장터를 스쳐 가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네게 미소를 건네면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네가 무사히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겠지. 이번 생에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걸 보면, 아마 그때도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사이였을 거다. 다음 생에는 어떨까.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어린아이, 너는 길가에 서서 “천천히”라고 말해 주는 어른일지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놓인다. 생이 여러 번 이어진다면, 우리는 아마 매번 서로의 속도를 맞춰 줄 것이다.


가끔은 네가 그려 준 그 풍경을 나도 따라 떠올린다. 벽이 아니라 두 풍경이 맞닿은 자리, 여름 강의 얕은 여울. 물이 발목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면 나는 서두르지 않겠다 마음먹는다. 먼저 물결의 냄새를 맡고, 너를 한 번 더 보고, 속으로 “고맙다”를 건넨 뒤에야 조심스레 한 칸을 건널 것이다. 물결이 잦아들듯, 노을이 밤에 자리를 내어주듯 그렇게.


나는 두렵지 않다. 네가 내 등을 아주 살짝 받쳐 줄 걸 아니까. 그리고 너도 문턱에 오래 서 있지 않으리라는 것—문이 닫히면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다음 날의 밥을 짓고, 네 길을 또박또박 걸을 것이라는 걸—안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약속이다.


나는 오늘도 배우고 산다. 숨을 조금 길게 쉬는 법, 무릎을 너무 세게 굽히지 않는 법, 말이 모자랄 때는 눈을 먼저 웃게 하는 법. 네가 내 옆에서 보여 준 모든 작은 것들을 따라 해 본다. 그러면 하루가 덜 미끄럽다. 내 안에서 변하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만 살핀다. 변하지 않는 것—네가 나를 안심시키려 낮추는 목소리, 내가 네 어깨선을 보면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그리고 너와 내가 서로에게 건네는 “괜찮다”는 신호. 이 몇 가지에 기대 오늘도 지나간다.


아들아, 밤이 오면 나는 다시 잠들 것이다. 너는 방문 앞에서 조용히 멈췄다가, 다른 방의 불을 끄고 물컵을 제자리에 둘 것이다. 그 모든 장면이 내 마음속 작은 등잔불을 밝힌다. 등잔불이 꺼질 때가 오면, 나는 그 불이 헛되이 타오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사랑이 기름이었고, 나의 미소가 불꽃이었다.


삶과 죽음은 한 등잔에 깃든 두 빛결. 맞닿은 유리 틈으로 서로의 숨을 비춘다.


그러니 내 걱정 너무 오래 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있기에 평안하고, 네가 떠난 뒤에도 네가 남겨 놓은 질서와 온기로 충분히 따뜻할 것이다. 무상과 무아와 고—그 세 단어가 우리와 싸우러 온 것 같았지만, 실은 우리를 안으러 온 손님이었다. 너와 나는 예를 갖춰 맞았고, 손을 잡고 문턱을 건넜다. 그 손을 놓는 날까지,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었다는 사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내가 잊어도,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잊히지 않는다. 이 말만은 문이 닫힌 뒤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멀어지는 것들 속에서도 너에게 머무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