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메모
밤마다 하는 일들이 있다. 물컵을 채우고, 탁자 모서리를 닦고, 방문 앞 매트를 반쯤 돌려놓는 일.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새벽에 급히 일어나도 발끝이 미끄러지지 않게. 예전에는 이런 작은 정리들이 지루한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하나하나가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 가벼운 징검다리처럼 느껴진다. 다리가 있으면 강을 건널 때 발을 헛디딜 확률이 줄어드는 법. 내 하루는 그 확률을 낮추는 일의 연속이다.
팬데믹이 휘몰아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집이 하나의 긴 악기처럼 느껴진다. 바닥은 낮게 울리고, 컵의 가장자리는 얇게 떨리고, 커튼은 보이지 않는 숨결을 받아 느릿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 소리들을 따라 하루를 건넜다. 소란과 고요가 번갈아 들어오면, 내 안의 어떤 척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할 수 있는 일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머리의 계산이 아니라 귀와 피부의 감각으로 옮겨 앉았다.
밤에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기침이 하나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짧은 틈이 생기면, 그 사이에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지금’을 길게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잠깐 스치는 쉼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미지근한 물 한 모금이 목의 열을 식히며 내 숨을 현재에 묶어 두었고, 가지런히 펴 준 이불 모서리는 어둠 속에도 질서가 있다는 걸 확인시켰다. 미간이 풀리고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가는 그 표정이 방 안에 번지자, 밤의 무게는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말의 자리를 내가 다르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의 문장들이 자꾸 흐려지면서, 나는 설명을 줄이고 관찰을 늘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캐묻기보다, 지금 무엇이 거슬리고 무엇이 편안한 지부터 살폈다. 그때 알았다. 돌봄은 정답을 내밀어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무게를 가늠하듯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임을. 곁에 머무를 줄 아는 사람이 끝까지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움은 종종 소파 밑의 고양이처럼 나와 함께 있었다. 소파 밑에 숨어 있다가 내가 손을 뻗으면 더 깊이 달아나고, 가만히 있으면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 존재를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소파 끝에 자리를 조금 비워 주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 둥글어진 두려움도 모서리를 거두고 슬며시 다가와, 위험을 먼저 읽어내는 눈과 조용히 보태는 손길로 바뀌었다. 사라지지 않아도, 다치지 않게 다룰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두려움과 화해를 시도한다. 두려움은 건너갈 문 앞에 드리운 그늘이다. 그늘은 문이 가까이 왔다는 표식이니, 그림자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두려움이 오면, 차를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두려움은 모양을 바꾼다. 김이 오르고 꺼지는 그 작은 무상(無常) 앞에서, 두려움도 조금 식는다. 차가 식어 적당한 온도가 되면,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싼다. 온기와 향이 손바닥을 적시고, 그 향이 천천히 폐를 채운다. 이렇게 하루의 한가운데서 나는 스스로에게 작은 법문을 건넨다.
어떤 날은 집 안의 사물이 모두 감독이었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어 주었고, 식탁의 유리는 내 표정을 반사해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성과로 시간을 재던 습관을 내려놓고, 밀도로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같은 한 시간이더라도, 누군가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시간은 더 많았다.
많은 시간은 길어서가 아니라 가득 차서 많았다.
나는 ‘끝’을 자주 상상했다. 그러나 상상이 깊어질수록, 내 손은 자연스레 ‘지금’으로 돌아왔다. 점검표를 만드는 대신, 온도를 느꼈고, 뉴스의 숫자 대신, 이마의 식어 가는 기미를 읽었다. 그 선택이 거창한 의미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묶어 주었다. 흩어지지 않는 마음은 천천히 따뜻해졌다. 따뜻해진 마음은 오래 버텼다.
돌봄이 나를 바꾸었다고 말하기엔, 바뀐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집도 변했고, 사물도 변했고, 밤의 길이도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손의 성질이었다.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무게. 그 무게로 나는 컵을 옮기고, 담요를 겨우 한 뼘 올렸다. 그 한 뼘이 전부였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전부가 누군가에게 충분한 날들도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은 언제나 배경에 있다. 그 위에 서로의 작은 신호들이 얹히고, 그 신호들은 곧 풍경이 된다.
“풍경을 바꾸는 건 요란한 말이 아니라, 매일의 같은 손길이다.”
밤이면 나는 물컵을 같은 자리에 놓고, 아침이면 같은 인사를 마음속으로 먼저 건넨다. 반복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결과가 매번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들이 모여 하루를 다른 색으로 칠했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가 건진 문장은 단출하다.
나는 모든 것을 고칠 수 없지만, 오늘의 밀도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밀도가 달라지면 표정이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면 방의 공기가 달라진다. 공기가 달라지면, 그 안에서 버티는 일이 조금 쉬워진다. 나는 그 ‘조금’을 믿는다. 커다란 변화는 오지 않을지 몰라도, ‘조금’은 늘 도착했다. 그 ‘조금’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같은 자리에 컵을 둘 것이다. 같은 손으로 이불의 모서리를 펼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작은 인사를 반복할 것이다. 오늘 여기까지 와 주어서 고맙다고. 그 인사가 나를 가볍게 하고, 남은 이들을 덜 아프게 한다는 걸—팬데믹의 긴 밤이,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연기(緣起)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먼저 감촉을 받고, 그 감촉이 ‘상(相)’—곧 개념화된 표상—으로 묶이며, 그 표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주체감이 잠정적으로 드러난다. 이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조건들이 잠시 얽혀 만든 결과물일 뿐이다.
예를 들면, 새벽에 엄마가 내 소매를 불쑥 잡아당기는 그 순간, 손목에 닿은 압력과 거친 숨이 먼저 촉으로 스며든다. 그 촉은 곧 ‘위험’이라는 ‘상(相)’으로 묶이고, ‘지금 큰일 났다’는 해석이 붙는 동안 나는 순식간에 경비원처럼 굳은 ‘나’로 드러나 불을 켜고 “가만히요!”라며 지시를 쏟아낸다.
하지만 조명을 미리 낮추고 통로를 비워 두며 “잠깐 뒤에 화장실 가요”라고 예고해 둔 밤이면, 똑같은 잡아당김이 이번엔 ‘길을 찾자는 신호’로 표상되고, 해석은 “지금 안내가 필요하구나”로 바뀐다. 그러면 나타나는 ‘나’도 달라져, 동행자 같은 목소리로 “천천히요, 여기 손잡이요” 하며 어깨를 낮춘다. 같은 촉이라도 얽힌 조건이 달라지면 표상과 해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드러나는 ‘나’의 모양도 전혀 다르게 생겨난다.
결합은 우연한 충돌이 아니라 ‘필요’가 무르익을 때 일어나는 성숙한 만남이다.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 무의미한 결합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펼쳐진 세계는 이전 조건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낸 끝에서 ‘이렇게’ 나타난 현상이다.
곧,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우발이 아니라, 지금-여기서 반드시 드러날 만큼의 이유와 필요를 이미 품고 온 것들이다.
실상이 이러하다면 우리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 “왜 내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이 일이 지금 무엇을 요청하는가, 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로.
원인 규탄이 아니라 ‘요청 파악’, 원망 지탄이 아니라 ‘응답 설계’가 맞다.
돌봄의 자리는 이 통찰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새벽 5~6시에 깨워 단잠을 끊고 화장실을 재촉하는 일, 밤새 젖은 기저귀를 갈고 씻기는 반복, ‘일상의 내 시간’을 접어야 하는 포기,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야 하는 부담, “언제 끝날까” 혹은 “갑자기 끝나버리면 어쩌나”라는 끝 모를 두 불안—이 모든 고(苦)는 실제로 ‘지금’을 온전히 보지 못할 때 더 커진다. 오지 않은 순간을 앞당겨 두려워하거나, 이미 지난 일을 붙들어 되씹을 때 고통은 증폭된다.
어떤 날은 배변물이 엄마의 손끝에 묻어 있거나 바닥에 얼룩으로 남아 있는 장면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그때 “왜 이러시나, 왜 나에게”라고 묻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연기(緣起)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병의 경로, 감각과 불안, 수치심 회피, 안내 부족이 얽힌 ‘필연의 드러남’이다.
회피할 수 없는 일이고, 동시에 ‘요청’이 분명한 일이다.
그러니 해석을 바꿔야 한다. 이상행동이 아니라 신호, 낭패가 아니라 필요. 신호로 읽으면 즉시 할 일이 보인다.
안전을 정리하고(미끄럼·오염 차단),
감각을 낮추고(조명/온도/냄새 완화),
몸을 덮고 씻기며(따뜻한 수건 기저귀 의복),
짧은 문장으로 안내하고(“지금 정리해요, 곧 깨끗.”),
함께 마무리한다.
이렇게 ‘왜’ 대신 ‘무엇·어떻게’로 전환하지 못하면 낙담과 절망의 늪이 금세 발목을 잡고, 그날의 배움—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잃고 만다.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에 가깝다. 쾌락은 기대보다 작고, 고통은 상상보다 크다. 나는 고(苦)를 지우려 애쓰기보다, 고(苦)를 ‘정밀히 인지하고 응답하는 기술’로 다뤄야 함을 알아차렸다.
이미 ‘고(苦)’라는 사건은 일어났다면 “지금 일어난 것은, 지금 필요한 것이다.”라는 태도로 거부·외면보다 직면·응답을 선택하고, 원망보다 절차를 세우고, 긴 설명보다 짧은 안내와 따뜻한 손길을 먼저 둔다.
어떤 일도 헛되이 오지 않았다는 믿음 위에 서면, 같은 장면도 덜 잔혹해진다. 오늘 일어난 것을 탓하기보다 그 일이 무엇을 요청하는지 귀 기울이면, 고(苦)는 막다른 어두운 동굴이 아니라 더 깊은 평온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그렇게 마음의 초점을 바꾼 채, 나는 그 밤을 맞았다.
그 밤도 겨울의 고요가 집 안을 얇게 덮고 있었다. 엄마는 겨울 호수처럼 미동도 없이 깊은 잠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숨은 평소보다 길었고 어깨는 낮게 내려앉아, ‘혹시…’라는 생각이 목울대를 스쳤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믿음이 먼저 내 안을 가라앉히자, 방 안의 침묵도 덜 날카로웠다.
나는 고개를 들어 어둠 속 집의 윤곽을 바라보았다. 소파, 테이블, 책장, 화분. 모두가 제자리에 있었다. 제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주는 안도감이 이렇게나 큰지 그때 처음 알았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제자리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소란에 휩쓸리지 않고, 오늘의 컵을 오늘의 자리에 놓는 일.
이불 가장자리를 다시 펴고, 창을 아주 조금 더 여몄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확인’이 아니라 ‘동반’뿐임을. 고(苦)를 대신 짊어질 수는 없지만, 고(苦)가 지나가는 길 옆을 함께 걸을 수는 있다. 그 동반은 무력감이 아니라 용기라는 사실이, 내 손을 흔들림 없이 붙들어 주었다.
그 깨달음은 시선을 바꾸었다. ‘모든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강박 대신, ‘곁에 선다’는 결심을 고르자 죽음의 모습도 달리 보였다. 죽음은 불시에 들이닥치는 벽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집 안에 있던 문—낮에는 커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다가 해가 기울면 윤곽이 드러나는 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으로 향하는 동선을 조금씩 정리한다. 약 칸을 맞추고, 진료 일정을 적고, 불필요한 장애물을 치우는 일. 죽음이 문이라면, 삶은 그 문턱을 미리 낮추는 돌봄—장애물을 치워 두려움·통증·혼란의 턱을 덜고, 서두르지도 붙잡지도 않게 마지막 한 걸음을 고요히 돕는, 소박하지만 가장 다정한 준비다.
윤회를 떠올리는 일은 내게 유머와 위안을 동시에 준다. 출근길 신호등 앞에서 문득 생각한다. 전생에 내가 엄마의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받아쓰기에서 틀린 나를 보며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도 끝내 소리치지 않았겠지. “다음엔 더 잘하면 되지.”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성대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지, 나는 일터에서 학생과 이야기할 때 그 어조를 무의식적으로 흉내 낸다.
내 안의 전생이 지금의 습관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생엔 내가 엄마의 이웃이 되어 가끔 저녁 국을 나눠 먹는 사이라면, 그것도 괜찮겠다. 굳이 거창한 인연이 아니어도,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오늘도 잘 지냈어요?”라고 묻는 사이. 윤회는 어떤 거대한 서사보다 이런 사소한 상상에서 더 친근해졌다.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며 가장 자주 떠오르는 단어는 ‘속도’다. 세상은 언제나 나를 재촉했다. 결정, 성과, 다음 일정. 하지만 엄마와 함께일 때 세상은 느려지고, 나는 처음으로 나의 속도를 가진다. 천천히 옷 단추를 끼우고, 수저를 맞추고, 거실 한가운데서 멈춰 서서 바람소리를 듣는 속도. 그 느린 호흡이 오히려 나를 앞으로 데려다준다.
“느리면 놓친다”라는 문장은 돌봄 앞에서 무력했다. 오히려 “느려야 보인다”가 내게 더 맞는 진실이었다. 무상(無常)은 빨리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드시 변한다는 뜻.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반드시 변할 것이기에, 나는 천천히 본다.
나는 가끔 엄마의 잠든 얼굴 옆에 앉아, 작은 기도를 한다. 약속 같은 기도다. “괜찮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길도 괜찮을 겁니다.”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호한 이 말들이 내 귀로 되돌아와 마음을 정리한다. 무아(無我)의 연습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를 살리는 게 아니라, ‘엄마와 나’의 하루가 서로를 살린다는 믿음. 이 믿음이 단단해질수록, 나는 덜 초조하고 더 다정해진다.
“지금도 지나간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방 안 공기가 조금씩 차가워졌다. 밤이 깊어졌다. 나는 다 쓰면 불을 낮추고, 문을 반쯤 열어 둘 것이다. 완전히 닫지도, 활짝 열지도 않은 문—그 문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내 마음도 드나든다. 죽음과 삶 사이의 문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반쯤 열린 그 문이 있을 테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가볍게 잡고 천천히 지나갈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컵을 제자리에 두고, 담요의 가장자리를 펴고, “괜찮습니다”라고 중얼거리던 내 모습. 그리고 나는 웃을 것이다. 무상(無常)·무아(無我)·고(苦)—세 단어가 이 삶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고, 오히려 살갗에 닿는 바람처럼 가볍게 스치게 해 주었음을 기억하면서.
내일도 엄마와 나는 계단을 한 칸 오를 것이다. 엄마의 숨은 고르게 흐르고, 내 마음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며, 작은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 앉는 하루.
이렇게 한 칸, 또 한 칸. 문턱 앞에서는 서두르지 않으며,
웃을 수 있으면 웃고, 힘들면 잠시 쉰 뒤, 신호를 보내고 천천히 응답하는,
잠이 들 듯-조용히,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