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는 중이다.
한때 나는 용서를 ‘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가 나에게 한 일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애써 지워보려 했다.
상처를 준 말, 차가웠던 표정, 외면하던 순간들.
기억에서 없애야만 비로소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잊으려 해도 그 장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럴수록 나는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한 걸까’ 자책했다.
그때는 몰랐다.
용서는 잊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상처받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상처받으면 분노했고,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약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깨달았다.
용서는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가 그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나에게 차갑게 돌아섰는지,
그 이유에는 그 사람 나름의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그때는 나만 아픈 줄 알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도 자기 상처를 숨기느라 서툴게 행동했던 것이다.
이해는 그렇게 나를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었다.
‘나만 힘들었다’는 생각이 ‘서로 힘들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마음속의 매듭 하나가 조용히 풀렸다.
용서는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나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그 사람에게 묶어두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여전히 흔들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건 내가 아직 그를 놓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용서는 그 끈을 스스로 잘라내는 일이다.
“이제 그 일로 내 마음을 흔들지 않겠다.”
그 다짐이 진짜 용서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제 그를 이해한다.
그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어쩌면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비슷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를 용서한다는 건, 그 일의 상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상처를 품고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흉터가 남았다고 해서 상처가 계속 아픈 건 아니다.
그건 이제 내 일부가 되었고,
그때의 나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용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도
심장이 덜 뛰고,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때 깨닫는다.
‘아, 내가 정말로 용서했구나.’
그건 잊어서가 아니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도 나처럼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같은 이해를 건넨다.
그때 왜 그렇게밖에 못했는지,
왜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했는지,
왜 그토록 불안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버텨내려 애쓴 사람이었다는 걸.
용서는 결국 나를 향한 이해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자라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단지 그 안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시선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해는 상처를 없애지 않지만,
그 상처에 이름을 붙여준다.
“이건 내가 사랑했고, 믿었고, 상처받았던 기억이야.”
그렇게 이름 붙여진 상처는 더 이상 나를 해치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때로는 문득 분노가 올라오고,
어떤 날은 그리움이 되어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 모든 감정의 끝에는 이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걸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용서는 잊음이 아니라 이해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날,
나는 내 과거의 나에게도 말할 수 있었다.
“괜찮아, 그땐 그럴 수 있었어.”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