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과하지 못한 순간이 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는 중이다.

by 연월


살다 보면 꼭 그런 순간이 있다.

진심으로 미안했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 순간.

그 말 한마디가 너무 늦어버려 입안에서만 맴돌던 그날들.

그때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건, 그 미안함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과를 어려워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패배 같았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두려웠고,

사과하는 순간 나라는 사람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괜찮은 척 넘겼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늘 미묘한 후회가 따라왔다.

내가 말하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 구석에 쌓여,

시간이 지나면서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그 무게가 점점 커져서, 나조차 모르게 마음이 굽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다.

그때 한마디만 더 했더라면,

지금은 조금 다르게 남았을 관계.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자존심, 두려움, 혹은 단순히 타이밍.

그때는 나도 상처받은 입장이었고,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다 변명이었다는 걸 안다.

진짜 용기는, 마음이 다치더라도 진심을 내놓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사과는 타인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그 말을 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오래 고통받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때 미안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삼킨 채로

수없이 그 장면을 되새기며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다.

사과하지 못한 미안함은 결국 내 안에서 부패하지 않고,

조용히 숙성되어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감정으로 남았다.


나는 언젠가 그런 걸 느꼈다.

시간이 지나도 사과는 늦지 않다는 걸.

어떤 마음은 지금이라도 전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없더라도,

그 이름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조용히 “미안하다” 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졌다.

진심은 꼭 상대에게 닿지 않아도,

내 안에서 방향을 바꿔 나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한 사과는 결국 내게로 돌아와

내가 나를 용서하게 만드는 시작이 되었다.


사과하지 못한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같다.

그 마음은 닫히지 않은 문처럼 남아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그림자처럼 나를 스친다.

그러다 문득 어떤 노래나 냄새에 그 시절이 떠오르면

가슴이 살짝 저리면서 동시에 따뜻해진다.

그건 후회이자 감사다.

그 사람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이제 안다.

사과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의 행위라는 걸.

그 말 안에는 용기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 함께 들어 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은 단순히 과거를 닫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다.

그리고 그 손길은, 상대에게 닿지 않더라도

언젠가 나를 더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그 미안함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 감정은 당신이 여전히 따뜻하다는 증거라고.

사과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살아 있고, 사랑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누군가를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이제는 나도 내게 사과하려 한다.

그때 너무 몰아붙이고, 너무 냉정했던 나에게.

그때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몰라서 미안했다고.

내가 나에게 하는 사과는 늦지 않았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진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는 중이고,

그 과정 속에서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사과하지 못한 순간이 있지만,

그 미안함이 우리를 더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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