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내 안의 시간표였다.

나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는 중이다.

by 연월


나는 여전히 후회를 잘한다.

누군가에게 한 말, 하지 못한 말, 놓친 순간, 지나간 기회.

후회는 늘 너무 늦게 찾아왔다.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면 꼭 마음이 아려왔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끝없는 되묻기 속에서 나는 자주 나를 괴롭혔다.


후회는 마치 내 안의 시계처럼 작동했다.

지금의 나를 과거로 데려가서 다시 그 장면을 반복시켰다.

그 장면 속의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어리석고, 미숙하고, 불안했다.

그때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마치 다시 그날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를수록

그 장면이 나를 괴롭히는 대신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후회는 내가 성장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예전에는 후회를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약한 마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억지로 잊어보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밀어낼수록 후회는 더 선명해졌다.

어떤 기억들은 마음 한가운데 깊게 새겨져 있어서,

잊으려 하면 오히려 더 뚜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후회는 잊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마주해야 하는 감정이라는 걸.


어쩌면 후회는 내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를 알려주는 시간표 같은 것이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을 지금은 알게 되었을 때,

그제야 ‘후회’라는 감정이 찾아온다.

그 말은, 나는 그만큼 자라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후회가 찾아와도 예전처럼 피하지 않는다.

조용히 맞이한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묻는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질문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변화를 확인한다.


후회는 마음의 교과서 같다.

그 속에는 우리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감정이 남아 있다.

용기, 미안함, 다정함, 그리고 진심.

그때는 몰랐던 마음을, 후회 속에서 천천히 배우게 된다.

그래서 후회는 아프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그 아픔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게 바로 성장의 흔적이다.


나는 여전히 어떤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하다.

그때는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이 전혀 닿지 않았던 일들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는 어긋났고,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멀어진 사람도 있다.

그 기억들이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하지만,

이제는 그 아픔마저 내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최선이 지금의 기준과 달랐을 뿐이다.

후회는, 그 차이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일들은 그때는 잘 몰라서,

훗날 시간이 지나야 의미가 보이기도 한다.

그때는 단순히 아팠던 일이,

나중엔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경험이 된다.

나는 그걸 ‘시간이 주는 해석’이라고 부른다.

시간은 우리가 느꼈던 후회를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

후회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색으로 바뀐다.

처음엔 어두운 회색이었다가, 어느새 따뜻한 베이지색으로 변한다.

그 색깔의 변화는 내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예전엔 “왜 그랬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말을 대신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괜찮아. 너는 그때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잖아.”

그 말을 해주면, 내 안의 어린 내가 조금은 안심할 것 같다.

후회는 결국, 그때의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지금의 내가 대신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후회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후회는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해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용서하게 된다.

후회가 없다면 용서도 없고, 용서가 없다면 성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후회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건 더 이상 아픈 감정이 아니라,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작은 시간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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