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다는 것, 나를 바라보는 일

리얼리즘과 포토제닉 사이에서 발견한 나만의 시선

by 김남정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걷다가, 멈추다가, 마음이 잠시 붙잡힐 때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켠다. 사진은 그렇게 내 하루 속으로 들어왔다.


딸들이 대학생이었을 때, 우리는 사진전을 자주 다녔다. 전공과는 상관없었지만, 그 시절 딸들은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 줄 알았고, 나는 그 옆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읽기도 듣기도 했다. 그때 알게 된 사진의 개념 하나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사진에는 리얼리즘과 포토제닉이 있다.


리얼리즘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구도나 미학적 완성도보다는 현장의 공기, 그 순간의 진실에 집중한다. 때로는 삐뚤고 거칠지만, 그래서 더 생생하다. 반면 포토제닉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우선한다. 빛과 색, 구도가 조율된 화면 속에서 현실은 조금 정리되고 다듬어진다. 현실보다 더 '사진다운'세계다.


KakaoTalk_20251216_105016904.jpg 한영수 사진전 (24년, 3월~15~4월 27일) , <순수의 시간>


한국 사진계에서 리얼리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영수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 속에는 연출이 없다. 전쟁 이후의 서울,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 장터 한편에 쪼그려 앉아 있는 여인,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뒷모습.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인물들과 정돈되지 않은 배경이 화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구도는 때로 비껴가 있고, 화면은 거칠지만 그만큼 현장의 숨결이 생생하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이 아름답다'기보다 '저 장면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한영수의 리얼리즘은 삶을 꾸미지 않고 증언하는 방식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일 년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한다. 핸드폰 속 사진들은 어느새 나만의 디지털 저장소가 되어 있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쌓아둔 사진들이다.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사진마다 그날의 감정과 기억이 함께 따라온다. 사진마다 나의 시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내 사진들을 유심히 보았다. 물론 그의 사진과 내 사진을 나란히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은 어쩐지 닮아 있었다. 멋있게 찍으려다 멈춘 순간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해 찍은 장면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잘 나온 사진보다는, 그때의 공기와 마음이 함께 남아 있는 사진이라 더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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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찍는 것은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풍경이다. 반듯한 풍경보다 기울어진 골목, 화려한 장면보다 하루의 끝자락 같은 순간이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 누군가 방금 지나간 흔적, 사진 속에는 늘 '사람이 없지만 사람의 시간이 남아 있는 장면'이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사진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다기보다 그 순간에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완연한 봄보다는 계절이 막 넘어오는 시기를 더 오래 바라본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거리, 연둣빛이 막 번지기 시작한 나뭇가지, 아직은 빈자리가 많은 풍경, 그 시기에는 무엇이든 조금씩 드러난다. 색은 옅고, 변화는 느리다. 내 사진 속 봄도 그렇다. 활짝 핀 꽃보다는 피기 전의 나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길가, 조용히 밝아지는 오후의 빛. 그 장면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보게 된다. 나는 봄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구도, 자연스럽게 끌리는 색감과 피사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였다. 사진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나만의 스타일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닮아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증거 같은 것들. 사진을 찍는 나만의 스타일은 결국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닮아 있다. 나는 삶을 극적으로 만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 사진은 포토제닉 하기보다는 리얼리즘에 가깝다. 완성된 장면보다는 지나가는 순간, 정리된 풍경보다는 살아 있는 시간이 좋다.


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과 사진을 찍는 일은 닮아 있다. 둘 다 현재를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나간 시간을 미화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카메라를 드는 손과 펜을 잡는 손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사진을 정리하던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찍어온 사진들은 모두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찍어온 진들은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남긴 것이었다는 것을. 무엇에 멈추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인지. 길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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