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이유와 다시 쓰는 마음
브런치북 《길 위에서 나를 발견하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왜 계속 쓰고 있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멈추면 불안해질까 봐서일까.
아니면 멈춰도 괜찮지만, 그저 쓰는 시간이 좋아서일까.
아마 둘 다 맞을 것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이유를 모르고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습니다. 걷다가 걷는 이유가 생각나고 나서야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왜 하느냐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 즉 주도적 역할을 맡는 데에 대한 확신이나 감정, 바람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주는 그냥 지나가 볼까?’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이 폴폴 피어오릅니다. 붙잡지 않으면 사라질 것처럼, 그러나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이끄는 작은 불씨처럼.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나는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유를 다시 떠올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글을 쓰면서 이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흩어진 생각을 정리하고,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에 문장을 건네는 시간. 세상의 속도와 잠시 떨어져, 오롯이 나의 리듬으로 숨 쉬는 시간입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질문을 오래 붙드는 사람인지,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자기 결정>에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조금 단호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표현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글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공예, 사진, 춤, 요리, 마당 가꾸기.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내는 행위는 모두 자기 인식의 원천이 됩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돌아보며 우리는 ‘아, 내가 이런 사람이기도 하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그 통로가 글이었을 뿐입니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될 때마다 나는 작은 확인을 합니다.
오늘 한 페이지를 남겼다는 감각.
적고 보니, 쓰는 시간은 내 생각들의 모음집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길 위에서의 풍경도, 흔들리던 밤도, 설명하지 못했던 마음도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쓰는 시간만큼이나, 다시 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지나간 나를 마주하는 일. 그때의 불안과 설렘, 다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나는 이미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걷다가 걷는 이유를 다시 떠올리고, 그래서 또 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사람으로.
그래서 오늘도 씁니다.
잘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왜 걷고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의 기대에 닿기를 바라면서도, 결국은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기 위해서.
<길 위에서 나를 발견하다>는 30화로 끝났지만, 나를 발견하는 일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길은 이어지고 있고, 이유는 계속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글벗님들 덕분에, 나는 내 걸음의 의미를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멈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유를 떠올린 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또 한 줄을 써 내려갈 것입니다.(202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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