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가녀장의 시대>와 세 세대의 책임
1월 한 달 동안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 참여했다. 매일 한 편씩 책을 읽고 짧게라도 기록(독서 인증)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권의 책이 내게 깊이 다가왔다. 바로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22년 10월)였다.
뒤표지 문구 "당신의 독서로 지역서점의 불빛을 지켜주세요"는 독서가 단순한 개인 행위를 넘어, 작은 사회적 연대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브런치 독서 챌린지 역시 매일의 기록을 통해 나 자신과 사회를 동시에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가부장'의 '부(父)'를 '녀(女)'로 바꾼 제목은 단번에 시선을 끈다. 생계를 책임지는 딸이 가족을 이끄는 이야기. 경쾌한 서사 속에 세 세대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권력의 성별을 뒤집는 풍자가 아니라, 책임이 어떻게 세대를 건너 전해 지는가를 보여준다.
반복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다
가녀장은 글쓰기로 가세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반복'이 있다.
"꾸준히 쓰지 않는 이상 말이다. 반복하지 않으면 재능도 빛을 잃을 뿐. 즐기면서 계속 쓰라. 그는 아이들에게 탁월함과 성실함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주입식으로 교육하며 수많은 십 대 작가들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P55)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다. 글쓰기는 즐거움과 책임의 결합이며, 가녀장은 이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성장시킨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 매일 기록하며 느꼈던 감각과도 닮아 있다. 반복은 지루하지만, 반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가녀장은 무작정 일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한 기준을 가진다.
"낮잠 출판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거절 메일을 쓰는 것이다. 그가 수락하는 일들은 다섯 가지의 주요 동기 중에서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다. 돈, 재미, 의미, 의무, 아름다움. 그는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안 하는 게 좋은 일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P87~88)
이 문장은 책임 있는 선택의 기준을 보여준다.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절할지를 명확히 아는 능력은 곧 자기 삶을 책임지는 힘과 맞닿는다. 반복과 책임, 글쓰기 습관과 연결하면, 가녀장은 삶의 중심을 스스로 잡는 사람임이 드러난다.
서로의 약점을 이어 살아가는 세대
이 책은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슬아는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은 담글 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은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의 도가 텄지만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P98)
이 장면은 단순한 '유머'로만 읽히지 않는다. 각 세대, 각 인물이 가진 능력과 취약함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묘사한다. 세 세대의 노동을 나란히 놓는다. 글쓰기 노동, 음식 노동, 생계 노동.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 기대며 버틴다. 가녀장의 책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가 버텨온 시간 위에 놓여 있다.
이 부분에서 복희 엄마 존자와 친정 엄마가 겹쳐 보였다. 친정 엄마도 매년 2월 장을 담그신다. 엄마를 도우며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과연 나는 엄마 도움 없이 장 담그기를 할 수 있을까?
가녀장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를 하고, 다시 고치며, 책임을 다한다.
"반복적으로 스티커를 붙이는 복희 옹이 철이 미란이에게 슬이가 고개 숙여 사과한다. 벌써 열 권째 책 출간인데 새삼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나 서점 납품 일정만은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 (P169)
이 장면은 책임과 반복의 무게를 보여준다. 실수를 하고, 다시 고치며, 일정에 맞춰 결과를 내야 하는 과정 속에서 가녀장은 성장한다.
이 장면은 슬아 할아버지의 양면테이프 사업과 겹쳐 보인다. 작은 사업을 이어가며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견뎌냈던 시간. 완벽해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속될 수 있었던 생계. 양면테이프를 붙이고 또 붙이며 버텨낸 세월과, 책에 스티커를 붙이며 마감에 맞추는 현재의 시간은 묘하게 닮아 있다.
세대는 다르지만 태도는 닮아 있다. 실수해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가족의 생존 방식이다.
삶을 문학이라 부르는 용기
가녀장은 자신의 글쓰기를 문학으로 정의하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문학을 하실 계획은 없나요?"
"이미 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정말 문학적인 그런 글이요."
"지금까지 제가 제가 쓴 것이 문학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탁월한 문학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문학이 아닐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기자님은 왜 제가 문학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P177)
이 대목은 유난히 또렷하게 남는다. '문학적인 글'이라는 외부 기준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태도. 삶을 기록해 온 시간을 스스로 문학이라 명명하는 담담한 자신감.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브런치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플랫폼에 쓰는 글은 종종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을 언어로 옮기고, 반복해서 쓰고, 독자와 만나는 그 과정이 문학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등단 여부나 장르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태도 아닐까. 가녀장의 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나는 이미 하고 있다"는 조용한 확신이다. 그 확신은 글을 쓰는 많은 사람에게 작은 용기를 준다. 문학은 멀리 있는 장르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며 쓰는 문장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가녀장의 시대, 책임의 시대
<가녀장의 시대>는 가부장제를 단순히 풍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당신 삶의 책임자인가. 반복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인가.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서 매일 읽고 기록하며 느낀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을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되는 감각이었다. 가녀장의 삶 역시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반복과 선택, 실수와 책임의 축적이다.
가녀장의 시대는 특별한 누군가의 시대가 아니다. 자기 삶을 책임지려 애쓰는 사람들의 시대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브런치독서챌린지 #이슬아 #가녀장의시대 #문학 #서평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9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