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대신 씨앗에서 키운 꽃과 나무, 오랜만에 오른 산길
지난 주말, 문득 봄기운이 완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예전보다 따뜻하고, 공기 속에는 흙과 꽃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했다. 겨우내 집 안에서 잠자던 마음도, 어디론가 나가야 한다는 설렘에 살짝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가까운 화원을 찾았다.
화원에 들어서자, 이미 봄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벚꽃처럼 부드럽고 연한 분홍, 개나리처럼 밝고 노란색, 그리고 수선화와 팬지까지, 작은 화분 속에 담긴 꽃들은 마치 봄의 축소판 같았다. 남편과 나는 한참을 걸으며 꽃을 구경했다.
예전 같으면 마음에 드는 꽃 화분을 몇 개 샀을 테지만, 이제는 화원의 예쁜 꽃을 사들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꽃을 사는 즐거움보다, 씨앗을 발아시켜 뿌리가 나오고 새싹이 돋아 꽃이 피는 과정을 오롯이 즐기는 쪽이 더 좋다. 우리 집 창가의 제라늄은 씨앗에서 발아해 핑크빛 꽃을 사계절 내내 보여준다. 벵갈 고무나무는 줄기 물꽂이로 키웠고, 아보카도 역시 씨앗에서 발아한 녀석이라 애착이 더 간다.
화원에서는 예쁜 꽃들을 눈으로만 인사하고, 대신 분갈이용 흙만 구입했다. 봄은 분갈이의 계절이기도 하다. 겨우내 좁은 화분 속에 있던 식물들이 새로운 흙과 함께 숨을 트고, 다시 생기를 되찾는 시기다. 나 역시 분갈이 흙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뱅갈 고무나무와 아보카도를 위한 분갈이를 시작했다. 이 관엽식물들은 혼자서는 다루기 힘든 크기라 남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딱딱하게 굳은 흙과 화분 가득 찬 뿌리 때문에 잘 빠지지 않았다.
"얘야, 이제 큰 집으로 이사 가자. 너 많이 힘들었지? 좁은 집에서…"
남편은 뱅갈 고무나무를 들어 올리며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이제 마음껏 뻗어 봐. 햇빛도 충분히 받고."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흙을 나르고, 화분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손이 더러워지고, 웃고, 서로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은퇴 후 남편이 조금씩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고 돕는 모습도 반가웠다. 부부란 서로의 취미를 존중하는 관계에서 정이 더 커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음 날, 우리는 동네 산을 찾았다. 남편은 아킬레스 건염 때문에 약 2년 만에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겨울처럼 날카롭지 않고, 순한 봄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걸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바람도 좋고, 햇빛도 따뜻하네."
"그러게, 겨우내 숨죽였던 산이 이렇게 활기를 띠니까 기분이 새롭다."
산길은 아직 이른 봄이라 응달에는 언 땅이 남아 있었다. 나뭇잎 없는 앙상한 나무들이 따뜻한 봄바람에 몸을 맡긴 모습은 묘하게 아름다웠다. 양지바른 곳에는 새순이 조금씩 올라왔고, 매화 꽃망울도 하나둘 터지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녹은 언 땅이 미끄럽게 발목을 잡았다.
걷는 동안 남편과 나는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오르내렸다. 다리가 조금 피로하면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고,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매 순간, 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준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언 땅이 녹고 새순이 돋듯, 우리 삶도 계절 따라 변하고 새봄을 맞는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주말 하루,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꽃과 흙 그리고 산을 따라 걷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풍성해진다는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가치를 준다. 화원의 꽃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집에서는 나만의 봄을 가꾸며, 산에서 자연과 호흡한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생명, 부부가 함께 옮긴 흙, 산의 맑은 공기 속에서 느낀 봄의 기운은 그 어떤 사치스러운 풍경보다 소중했다.
이번 주말을 보내며 생각했다. 봄은 멀리 있지 않다. 작은 화분 하나, 씨앗 하나, 가까운 산길 한 바퀴가 우리 삶에 충분한 새봄을 가져다줄 수 있다. 자연과 부부가 함께하는 순간, 마음은 새롭게 돋아나는 꽃처럼 활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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