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팔순에 대한 소회

by 김남정

지난 2023년 음력 11월 16일은 아버지의 80회 생신이었다. 생년월일이 아닌 실제 나이로 계산한 팔순인 셈이다. 고령화 시대인 요즘은 예전처럼 팔순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팔십 회 아버지 생신을 기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집은 늘 크고 작은 집안 대소사엔 우리 4남매가 의기투합해 정성을 듬뿍 담아 음식을 만들었었다. 언제부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족모임 상차림에 대한 볼멘소리가 들렸다. 해서 적당한 음식점을 예약하고 아버지 형제분들을 초대해 간단한 점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양력 12월 16일 토요일 모두가 허락된 시간을 어렵게 잡았다. 그날 하필이면 눈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었던 날씨라 지방에서 오신 고모님과 사촌들에게 미안했다.


나름 어른들을 모신 자리라 구색을 갖춘 한정식으로 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 모두 와 주셨다. 우리는 준비한 플래카드도 걸고 2단 케이크도 준비하고 정성 담은 답례품도 준비했다. 거기에다 둘째 동생 내외는 큼직한 꽃바구니와 화려한 떡 케이크 그리고 일엽편주라는 귀한 술까지 대여섯 병 가져왔다. 인터넷에서 본 다른 집 팔순 풍경과 비슷했다. 가족행사마저도 점점 편리해지고 간소화되고 보여주기식 문화로 변화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한 상 가득 차려 놓은 음식은 눈으로 먹기에 딱 좋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 한 공기 술 한잔하고 헤어지는 자리가 어른들께 죄송했다. 씁쓸한 맘으로 각자 헤어졌다. 모두 내 마음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저녁은 괜스레 밥 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느릿느릿 저녁상을 차리는데





<황석영 님의 밥도둑>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겠다면서 '단식'의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막 거른 포도주와 검은 빵뿐이었던 젊은 예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천 점이나 그렸고, 지금도 성당에서는 희생양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제례의식이 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다. 순수한 처음의 식사를 회복하는 일은 자기 시대를 정화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 출발점이었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을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 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후안처럼 말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다. 지난 시대에 명절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흥청망청 모두 허드레 음식이 되었고,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이나 개화요리가 양요리의 대종이 되어 뒤섞여 있다.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산문) / 교우서가 출판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난 이 책 읽은 지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아버지 팔순 날 이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슴이 뜨끔했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 간에 인사로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대신한다. 이런 우리가 어쩌다 인터넷에서 맛집을 검색하고 맛있고 값비싼 음식만 선호하게 되었는지 씁쓸하다. 내년 2월은 엄마 팔순이다. 그날은 정성껏 집밥을 차려 드려야겠다.

자식으로서 작은 바람이다. 아버지 인생을 뒤돌아 보면 희열보단 좌절 치유되지 못한 아버지 나름의 상처의 편린들이 가슴에 박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80회 생신이며 한 해의 막달인 12월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당신의 '화'를 표현하기 위한 의성어로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길 바란다. 감정을 잘 보듬어 남은 생은 온화하게 사시길 빌어 본다. 희비가 교차하는 삶에 자괴 섞인 한숨은 필연이므로.


사람은 태어날 때 삼신할미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이 얼마인지 모른다. 때문에 우리 사 남매는 아버지 삶을 더 알차고 따스하게 온기로 채우시길 자식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감히 자식으로 바란다면 당신의 삶이 따뜻하길 그리고 평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팔순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