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삶을 다시 붙드는 일

서평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읽고

by 김남정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 <사람을 사랑하는 일> (2025. 12. 09)은 유독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사랑을 받는 일도, 사랑에 성공한 일도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이라니, 능동적이고,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쓴 채수아 작가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사이자, 17년의 시집살이를 통과한 한 여성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참고, 버텨온 시간 위에서 사랑을 다시 정의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이 책이 내게로 온 이유도 아마 그 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IE003563936_STD.jpg ▲책표지 <사람을 사랑하는 일> ⓒ 모모북스


이 책의 사랑은 달콤하지 않다. 작가는 사랑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가족에 대한 사랑, 학생을 향한 사랑, 부부 사이의 사랑 그리고 자신을 회복해 가는 사랑까지. 작가는 사랑을 단일한 감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다치고, 오해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늘 상처가 따라붙는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고, 상처를 외면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사랑이 남긴 상처와 그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숨기지 않는다. 특히 결혼 이후 시작된 17년의 시집살이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소진시키는 시간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 사랑은 종종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고, 며느리라는 자리는 자신의 감정을 유예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멈춰 서는 지점은 고통의 나열이 아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오랜 시간 마음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진심 어린 사과'라는 말 앞에서 풀려나던 순간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미안하다"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 말이 결코 인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이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이해보다 먼저, 책임지는 말 한마디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조용히 증명한다.



이 경험은 교직에서 배운 사랑의 언어와도 맞닿아 있다. 교직에서의 사랑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작가는 경험으로 증명한다. 작가는 아이들을 통해 사랑이란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기다리는 일임을 배웠다고 말한다. 문제 행동 뒤에 숨은 외로움, 말보다 앞서는 침묵을 읽어내는 일.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이 자기 속도로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에 머무는 것. 교사로서의 시간은 작가에게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을 가르쳐 주었다. 교실은 작가에게 사랑을 연습하는 공간이었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작가는 오만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동시에, 진실하게 사과하고 화해하려는 용기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무너진 몸과 마음은 기적처럼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았지만, 사랑을 다시 선택하는 태도는 분명히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은 한 여인의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선다. 이 책은 연애담도, 가족 에세이도 아니다. 사랑을 통해 자기 삶을 다시 써 내려간 한 인간의 솔직한 이야기에 가깝다. 사랑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다시 꿰매는 힘 또한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증언한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고, 너무 빨리 관계를 단정한다. 이해받지 못하면 등을 돌리고, 상처받으면 관계를 끊어내는 일이 익숙한 시대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참고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침묵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대신 진심으로 말하고, 책임 있게 사과하며,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 때문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미뤄두고 살아온 사람에게, 그리고 관계를 쉽게 포기해 버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현실적인 위로가 된다. 사랑을 잘해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하며 살아온 시간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살아낸 사람의 글. 그 점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은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아주 현실적인 사랑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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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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