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비즈니스의 본령

소비자 마음 속에 더 좋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

by 이주현

동영상--TV, 영화, 유튜브, 숏츠 등,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모든 'Motion Picture'--콘텐츠는 소비자의 콘텐츠 경험에 있어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레거시 방송 프로그램이나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예전만 못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유통 방식의 문제일 뿐 콘텐츠의 '형태'로 볼 때 동영상은 여전히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포맷이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전통적으로 값비싼 IP를 만들어내는 창작∙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였다. 경쟁사보다 재미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소비자의 눈을 붙잡아두고 이로부터 광고, 티켓 등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TV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TV로, 혹은 영상에서 뮤지컬로 다양하게 확장시키는 것이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더 좋은 IP를 직접 만들어내거나 확보하는 것이 이 비즈니스에서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이를 가장 잘 하는 곳은 콘텐츠 제작사들이었다. (좋은 콘텐츠를 구입하는 데에도 콘텐츠의 품질을 판별할 ‘눈’이 필요하므로.) 또한, 이들 콘텐츠를 상영하기 위한 스크린이나 채널을 수직 통합으로 함께 보유하는 것이 성공의 첩경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TV와 극장의 쇠퇴에 이은 OTT의 인기, 그리고 전통적인 콘텐츠 기업이 아닌 통신사, 디지털 플랫폼 등이 콘텐츠 비즈니스로 진출하는 현실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디즈니, HBO, CJ ENM/JTBC 같은 방송사, 영화 스튜디오는 자신만의 OTT를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 SKT, KT 등 통신사들도 단독 혹은 공동으로 OTT를 만들고 자신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아마존, 쿠팡 같은 커머스 기업도 OTT를 만들고 오리지널 콘텐츠에 더해 저렴한 구독료로 사용자를 끌고 있다. SM, 하이브 등 출중한 K팝스타(= IP)를 보유한 곳들은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어 팬들에게 서비스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의 디지털 플랫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게임 업체들도 합류할 것이다. 영상이라는 포맷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은 사례가 많지 않지만 전통적인 '인쇄 매체'였던 신문사, 잡지사들도 이 길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결국 ‘영상’이라는 포맷으로 거의 모든 콘텐츠 비즈니스가 수렴되는 것이다.


방송사가 편성한 일정에 맞춰 소비자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현상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TV ‘채널’에 대한 의존도는 시청자는 물론 방송사 입장에서도 떨어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TV 채널이라는 존재 가치'에 대한 도전이 거세질 것이다. 거의 모든 전통 신문사들이 오프라인용 기사 외에 온라인용 기사 콘텐츠를 추가로 만들어 제공하듯, 방송사들 역시 자사 채널에 방영할 콘텐츠 외에 온라인용/OTT용 콘텐츠를 추가로 만들어 공급하게 될 것이다. 즉, 방송사든 영화사든 영상 콘텐츠 비즈니스의 기본은 더 많은 콘텐츠, 더 좋은 콘텐츠의 확보와 소비자를 위한 맞춤형 큐레이션이 될 것이다. 확보한 IP의 영향력 규모가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콘텐츠 기업들은 '양질의 IP'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프로세스, 알고리즘을 수립하게 될 것이다. 잠재력을 가진 원석 같은 스토리는 비록 원석의 품질이 좋지 않더라도 일단 확보한 후 자사의 전문가들을 통해 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웹소설 → 웹툰 → 드라마/영화라는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뮤지컬, 연극은 물론 보통 사람들의 블로그, 유튜브, 노래, 게임, 역사 등 좋은 서사와 대중의 흥미를 폭발시킬 수 있는 요소만 갖춘다면 무엇이든 원석이 될 수 있다.


2021년 바이트댄스의 문톤 인수, 네이버의 왓패드 인수, KT의 '스튜디오 지니' 신설, 'NC 유니버스' 출시, 카카오엠과 카카오페이지의 합병, 2022년 아마존의 MGM 인수, 브이라이브와 위버스 통합 등은 모두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모으는 데 목적이 있다. 마치 2010년대 초 소셜미디어의 '묻지마 사용자 증대'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2020년대의 움직임은 사람들의 실제 시청 시간을 늘린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시청 시간을 늘려야 티켓(구독료)과 광고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접근은 과거의 방식이다. 오늘과 내일의 비즈니스 모델은 콘텐츠를 앞세워 불러모은 소비자들을 상대로 콘텐츠는 물론 그 외 더 많은 것을 판매하고, 더 많은 것을 사용자들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다. 콘텐츠와 연계된 제품을 직접 판매할 수도 있고, OTT 플랫폼으로부터 게임 등 다른 활동으로 소비자들을 연결시킬 수도 있으며, 소비자의 값진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메신저/채팅, 그룹 화상 채팅을 통해 콘텐츠를 ‘함께 시청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사용자들로 하여금 서로 콘텐츠를 추천하게 함으로써 서비스의 사용시간을 늘릴 수도 있다. 사람들이 콘텐츠 앞에 모여있는 한 이들에게 팔 수 있는 서비스와 기능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 콘텐츠 비즈니스의 근간은 IP이다. 결국 콘텐츠 비즈니스는 ‘IP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이다. 과거의 IP가 영화, 음악, 만화, 책 등 ‘스토리’에 뿌리를 두고 해당 콘텐츠가 종영하면 그만인 폐쇄적 IP였다면, 이제는 하나의 스토리로부터 수많은 IP가 파생되고 있다. 캐릭터의 과거와 미래, 출연배우, 아티스트, 프리퀄과 시퀄을 만들어내는 IP 브랜드 파워, 아티스트와 스토리의 세계관 등 잘 만들어진 하나의 스토리는 오랫동안 자기복제, 확장이 가능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심지어 글로벌 OTT의 대중화는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쉽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같은 IP의 가치를 가장 높여줄 수 있는 콘텐츠 포맷이 영상이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근간은 IP이지만, 수익을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소비자 데이터가 될 것이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의 검색엔진과 포털, 아마존과 쿠팡 등의 커머스 플랫폼이 가진 소비자 데이터는 그 양이 방대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켜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동영상 콘텐츠와 스마트폰, 스마트스피커의 결합은 검색, 쇼핑이 잡아내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콘텐츠로부터 확보한 IP와 데이터의 결합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지평을 지금보다 몇 단계 넓게 확장시킬 것이다. 따라서, 콘텐츠 비즈니스는 ‘IP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 하는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콘텐츠 업은 소비자의 마음 속에 더 좋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Creating a better place in the audience's heart')이라고 가르친다. 때로는 팬터지, 때로는 현실도피, 때로는 자각, 때로는 새로운 결심 등, 보는 사람이 콘텐츠를 보는 순간에, 그리고 보고난 후에 더 좋은 마음, 편안한 마음, 슬픔의 정화(카타르시스), 굳은 결심 등을 갖게 하는 것이 콘텐츠의 의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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