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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석 Feb 07. 2023

세관 감시정 남현우호

- 내가 본 전설, 밀수꾼들의 호랑이 세관원 남현우 -

 

 SF 영화사에서 가장 의미 깊은 중요한 장면은 무엇일까? 2004년 영국 BBC 방 송은 이 같은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 9000이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을 꼽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이영화가 없었다면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나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F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할은 목성탐사 우주선 디스커버리 1호를 통제하는 인공지능 컴퓨터다. 인간과 대화하고 게임을 할 수 있으며 독자적인 사고와 감정도 갖고 있다. 할은 우주비행 중 데이 브와 프랭크가 우주비행 임무와 목적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자신도 불신한다는 것을  알아 채자 그들을 우주선 밖으로 내쫓으려 한다.  할은 고장 나지도 않은 안테나 수리를 핑계로 데이브를 우주선 밖으로 유인하고는  에어 록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를 눈치챈 데이브가 가까스로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자 할은 화해를 요청하지만 데이브는 이를 거절하고 할의 메모리 터미널을 정지 시 킨다. 


 할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상태에서 데이브에게 멈춰달라고, 두렵다고 말한다. 할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도 갖고 있는 기계 수준을 초월한 인공지능  컴퓨터였다.  어저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다. 1968년 개봉작이니 반세기 전에 만 들어진 오래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은 우주선 승무원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것을 그들이 대화하는 입모양으로 알아채고는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인간의 위기의식을 오래전에 벌써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지금도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이 인류에게 파라다이스가 될지 재 앙이 될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몇 년 전 타계한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 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면 인류문명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가 늦기 전에 AI를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 역시 인공지능을 경계하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를 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 이 승무원의 입모양을 보고 대화내용을 알아채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한 사 람이 머리를 스치듯 떠올랐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첫 직장으로 부 산세관에 발령받은 1974년쯤 인 것 같다.  첫 근무부서가 심리과였는데 선박수색  나가면 선원들은 우리를 심리분실 써치 (수색) 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불린 것 은 1970년 관세청이 개청 되면서 지방심리분실이 관세청 소속으로 개편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 심리분실은 세관과는 별도 조직으로 재무부 관세국 직속의  서울, 부산, 인천 등에 설치된 밀수단속 전담 수사기관이었다. 그때 과장님으로 좀 독특 한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인공이다. 나는 1과 소속이었고 그는 2 과장이었다. 항상 잠바 차림에 줄담배를 피우며 무뚝뚝한 인상이었다. 우리  신참들에게는 잘 대해 주었지만 선임 직원이나 밀수꾼들에게는 호랑이 같은 무서운 존 재였다. 


 풍문으로는 켈로부대 출신이라 했다. ‘켈로’는 ‘KLO(Korea Liaison Office ·주 한 첩보 연락처)’의 약자로 주로 북한군이나 중공군으로 위장하여 첩보 수집 등의 임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9년 6월 주한 미극동 사령부 정보참모부 산하 특수 부대로 창설돼 ‘동키부대’, ‘울프 팩부대’ 로도 불렸다. 6·25 전쟁 당시 많은 활약을 했고  큰 희생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그들의 활약상이 잘 그려져  있다. 그는 그때의 무공으로 후에 미국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다.  


 * 그분이 세관에 들어온 것이 휴전 후인 1953년이니 내가 초임 발령받았을 때인  74년도 당시는 이미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세관원이었다. 그분 근무당시인 1950 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해상 특공대 밀수’ 소위 ‘특공대 밀수’가 성행했던  시대다. 대마도 이즈하라 항을 기지로 부산, 마산, 통영, 여수등 남해안 일대를 오가며  조직적인 밀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이즈하라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밀수 총책이 은거하는 밀수 거점으로 일본 정부는 ‘변칙 무역’이란 이름으로 암암리에 이들의  밀수를 묵인하고 비호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그들의 선박에 일본의 세관·해운국·검역소 등의 용지와 공인(公印) 등을 비치해 놓고 선원수첩, 선박 증 서, 출입항 관계 서류 등을 버젓이 발급할 정도로 대담했다. 10톤 남짓의 낮은 선체를 가진 이들 특공 밀수선은 소형 목선에 탱크 엔진이나 그레이마린[GM] 엔진을 장착해 30노트 이상의 속도를 냈다. 당시 10노트 정도인 세관 감시선이 밀수선을 잡으려 면 밀수선 엔진이 과열되는 요행이라도 일어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만 해도 부유식 목재 갑판이 설치된 부산항에는 이 작은 밀수선들이 종횡무진 그 밑을  돌아다니고 덩치 큰 세관 감시선은 발만 동동 구르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때의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분은 특유의 집념과 사명감으로 온갖 불의와 유혹을 물 리치고 특공대 밀수근절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후 70년대에 들어서 대일 활선어등 에 의한 밀수가 다시 성행하자 초대 남해안 밀수감시선단장을 맡아 해상밀수 근절에  큰 족적을 남기기고 했다.  그 당시 그분이 조회 때 초임인 우리 신참들에게 하시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 다. 정박 중인 외항선 선원들을 망원경으로 잘 관찰하면 그들의 입모양으로 대화 내용 이 밀수와 연관된 말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얻은 정보로 그 배를 집중  수색해 밀수품을 적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집에서 TV 소리를 죽여 놓고 화 면만 켜놓은 상태로 사람의 입모양을 보며 무슨 대화 내용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다고도 했다. 그때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런 특별한 수사기법을 활용해서인 지 실제로 그는 많은 해상 밀수검거실적을 올렸다. 


 16.12.22일 창원세관에서 세관  감시정 명명 및 취항식 있었다. 남해안 해상밀수단속등 공적을 기려 그분의 이름을 딴  세관 감시정 남현우호(경남 329) 명명 및 취항식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당시 부산세관 심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부산 친구에게 그분의  안부를 물었다.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 대답이다. 그는 갔지만 세관 감시정 남현우호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 남현우호는 고속 감시정으로 총톤수 30t, 최고 속력 33노트로 운항할 수 있는 워 터제트를 장착했으며 고성능 레이더, 야간 관측경,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등을 갖춘  첨단 감시정이다.


 * 참고문헌 「이용득의 관문 백물」『부산 파이낸셜 뉴스』, 2012. 12. 2~201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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