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내가 만난 사람들

by 빛담

그가 내 몸집만 한 꽃다발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 날은 그가 인생 상담사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마지막으로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큰 꽃다발은 받아본 적이 없어요. 너무 고맙지만, 저는 이 꽃을 장식할 꽃병도, 감상할 여유도 없는 사람이에요. 여자 친구에게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꽃다발을 건네는 그에게 솔직히 말하자,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저는 여자친구가 없어요. 아시잖아요, 내가 게이인 걸.”


내가 처음 그의 직업상담사로 배정되었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고 젊은 층에서는 커밍아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상담사 일을 하면서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이 그처럼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적은 처음이었다.


“제 인생에서, 이런 수준 낮은 사람들과 같은 그룹에 속한 건 처음이에요.”


프로그램 참여 며칠 만에 그는, 파키스탄이나 이란과 같은 이슬람 국가 출신 참여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사람의 가치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같은 아이라도 부모에게 사랑받으면 귀한 아이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천한 아이가 되는 것처럼요. 같은 여자라도, 남편이 그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좋은 아내가 될 수도, 악처가 될 수도 있겠죠.”


나는 그에게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역 계단을 내려가다가 한 노부부를 보았다. 할머니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자, 앞서 내려가던 할아버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모자란 할망구가 눈이 삐었나. 너 때문에 나까지 넘어질 뻔했잖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안전이나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저속한 말을 쏟아냈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폭력이었다. 할머니는 체념하듯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원래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일까요? 만약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났다면요? 적어도 넘어지려는 그녀를 붙잡아주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남편을 만났다면요? 그녀는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겠죠. 분명 같은 사람인데요.”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무시하는 그들처럼 실업자예요. 그래서 이런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죠. 그들보다 당신이 낫다는 자만심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부모가 그들의 부모보다 더 부자라서인가요? 독일에서 태어나서인가요? 그들은 전쟁 국가에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거예요. 당신처럼 기회가 많은 삶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그의 계층 의식과 우월감이 전혀 근거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들의 말과 행동은 매우 저급해요. 교양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어요.”


그는 억울하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자신은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며, 판단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설명하려 했다. 말끝은 단정적이었지만, 시선은 잠시 흔들렸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다른가요? 욕설만 하지 않으면 교양 있게 말하면, 남을 무시하는 말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건가요? 그런 당신의 수준이 그들보다 더 나은가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한 말을 곱씹는 듯했고, 이후 다른 참여자들과도 한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프로그램 참여 한 달쯤 지나, 그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인생 상담사였고, 개인 사업자 등록 전부터 이 일로 수입을 올렸으며, 고객층은 전문직 게이부터 외로운 독거노인, 이혼을 고민하는 주부까지 다양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되, 충고나 간섭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깔끔하게 차려입고 커뮤니티를 찾거나 게이바, 고급 호텔 바에서 고객을 만나곤 했다. 그곳에서 의사 한 명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헤테로인 의사는 아내와의 불만족스러운 관계를 털어놓으며, 색다른 성적 경험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남이 끝나면, 의사는 상담치료임을 분명히 하고 상담료를 지불했다.


그가 설레는 눈빛으로 의사를 바라볼 때마다, 의사는 경고하듯 말했다.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아요.”


결국 그는 마음을 고백했지만, 의사는 담담하게 이별을 고했다.


“아쉽네요. 그동안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더 오래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는데.”


그러나 의사의 태도에서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몇 달 동안 핸드폰을 꺼 두고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먹을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사이 그의 고객들은 모두 떠나 있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 나는 처음 그가 커밍아웃하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를, 다시는 전처럼 아픈 사랑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3. 뜻밖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