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을까
둘째 아이를 임신한 뒤,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었다.
몸이 빠르게 무거워지면서 예전처럼 집안일을 해내기 어려워졌고, 그 무렵부터 그는 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입덧이 심한 날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에 힘이 없어 일어나 앉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는 그런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침대 옆에 바짝 무릎을 꿇고 앉아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며 내가 깨어 있는지 확인하듯 바라보았다.
그때 ‘강남스타일’이 유행했다.
침대 옆 작은 좌식 책상 위에 컴퓨터를 올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면 아이는 넋을 잃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틀어 달라고 내게 다가왔다.
침대에서 내려가는 것조차 힘겨웠던 나는 컴퓨터를 아예 침대 위로 옮겨 두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손만 뻗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남편은 늘 새벽에 들어와 아침이 되기 전 집을 나갔다. 어느 날, 현관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니 마음이 저릿했다. 낮에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아이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는 침대에 앉아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며칠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을까. 밥만 챙겨주면 돼. 노래만 틀어주면 괜찮을 거야.”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부탁해. 나도 며칠만 쉬고 싶어. 너무 힘들어.”
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꼭 이런 얘기를 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울음을 쏟아냈다.
잠시 후 현관 벨이 울렸다.
아무도 문을 열지 않자 벨소리가 몇 번 더 이어졌다. 남편이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이웃에 사는 히잡을 쓴 아랍 여성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부인이 많이 흥분한 것 같던데요.”
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울었던 탓에 목이 잠겨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문 앞에서 낮게 오갔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혼자 운 거예요. 별일 아니에요.”
이웃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문이 닫힌 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 안에는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고, 새벽 공기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며칠 후 집 청소를 하던 중, 생리 때처럼 아래로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란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팬티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피가 묻어 있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곧바로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서둘러 병원에 가라고 했다.
임신 중 출혈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며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내가 망설이자 남편에게 전화를 바꿔보라고 했다. 그날은 휴일이어서 남편은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를 깨워 수화기를 건넸다.
“오늘은 휴일이니까, 내일 갈게요.”
엄마의 설명을 듣던 그는 그렇게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사람아, 지금 당장 가야지. 애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남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그의 차를 타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무언가 심각한 기운을 느꼈는지 아이도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병원 접수대에서 상황을 설명하자 곧바로 진료가 이루어졌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출혈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분간 절대 안정을 하셔야 합니다. 최소 일주일은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
“집에서 안정이 어렵다면 입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입원하시겠습니까?”
“집에 가겠습니다.”
“병원에 있고 싶어요.”
남편과 내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입덧이 심해 제대로 식사한 날이 많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가 굶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살배기 아이를 누가 돌볼지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먼저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3인실로 입원하시고, 자리가 나면 2인실로 옮겨드리겠습니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1인실이 비어 있다면 1인실에 입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일하러 가야 해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제 아내가 병원에서 아이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1인실은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안 됩니다.”
남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짧게 숨을 고른 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내가 병실에서 아이를 돌볼 수 없다면 1인실을 사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나는 혼자 병실로 향했다.
작별 인사도 없이 돌아서 걸어가는데, 그때까지 그림자처럼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 하고 불렀다. 남편이 아이를 붙잡자,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자,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태어난 날부터 단 한 순간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으니, 아이는 당분간 이어질 엄마의 부재를 예민하게 직감했을 것이다.
병실 앞에 서서 한 번 뒤돌아보았지만, 아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