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희망의 잔해

엄마의 잃어버린 희망에 관하여

by 빛담

"나는 네가 멋지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꿈속에서, 길을 걷다가, 때론 버스 안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연이어 펼쳐지는 영상.

남자 친구가 도망치듯 빠져나간 고시원 방에서 엄마와 나는 서로를 어색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믿기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처럼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그러나 곧 분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내게 달려들어 내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그녀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저항하지 못했다. 그녀가 내게 표출하는 슬픔과 분노가 내 존재를 통째로 집어삼켜 꼼짝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잠깐 숨을 고른 그녀는 상실감이 가득한 눈을 내리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네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그 말을 하며 엄마가 울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음울하고 서글픈 표정만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네가, 네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그때 나는 그녀가 가슴으로 우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엄마의 마지막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했고,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사법고시가 남긴 실패의 서글픈 여운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엄마는 그 날의 일을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잊은 듯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날의 기억은 뒤늦은 후회, 죄책감 등과 복잡하게 얽혀, 결코 지워낼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외국에 사는 남자와 교제를 시작했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내가 오로지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남의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려 했을 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

결혼도 하기 전에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남자에게 아내란, 집안일을 해 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며칠 전 엄마가 입을 것, 먹을 것 등을 사서 소포를 보냈다고 했다.

어제 작은 아이 병원 진료 때문에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 배달원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집 앞 우체통 입구에 배달원이 놓고 간 편지가 삐쭉이 나와 있었다.

편지에는 소포를 받으려면 100 유로의 관세를 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DHL Express에 전화로 문의해 보니, 소포 내용물의 가격의 15%를 관세로 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매번 정직하게 책정한 금액을 적어 보내기 때문에 그만큼 관세도 많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고마운 마음보다는 원망이 앞섰다.


"금액 좀 적게 써서 보내지. 왜 매번 큰돈을 물어주고 물건을 받아야 하는 건지."


받을 물건은 상관없고, 내야 하는 돈만 아까웠다.

엄마에게 전화해 금액 좀 적게 써서 보내라고 매번 말했는데도 왜 알아듣지 못하냐며 투정을 부렸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이었다.


"보내고 싶어도 이제 더 이상 못 보낼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돈을 주고 받아."


나를 달래려는 것이 명백한 부드러운 그녀의 언어에는 죽음의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억누르며,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알았어"라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얼른 끊었다.


왜 갑자기 오래전 고시원 방에서 엄마가 했던 그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네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나는 네가 멋지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르는 원망과 분노, 죄책감이 가슴속에서 휘몰아치며 격한 울음이 되어 쏟아졌다.


고시 합격보다 사랑이 더 중요했고, 그 사랑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사귀던 남자와 헤어질 수 없다는 나의 오만한 정의감은 결국 사랑을 부정당한 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그 남자는 내가 고시에 떨어지자마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내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남자는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 후 떠났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내가 떠나면 그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오만과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과 꿈, 순수는 너무 아팠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려웠다.

그러나 삶은 선택이라기보다, 당위에 가까웠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시간은 갔고 그렇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엄마가 보낸 소포를 받았다.

소포 박스를 열자, 정성스럽게 포장된 아이들과 내 옷, 신발, 먹을 것 등이 보였다.

외국에 사는 딸이 엄마가 보낸 소포를 뜯어보는 평범한 상황이어야 했지만, 내게는 가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포장지를 벗기고 내용물을 소파 위에 던져 놓았다. 정리할 기분도, 힘도 없었다.

그저 여기서,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고시 실패도, 사귀던 남자의 배신도 액땜이라고 믿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를 잊고 제대로 된 남자와 결혼하라고 신이 내게 베풀어주신 배려라고 믿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 믿음마저 부정당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내가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견뎌냈던 이유.

그리고 그 결혼마저 실패했을 때, 나는 내 불행이 신의 배려가 아니라 그저 이번 생에 받아야 하는 업보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신이 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내가 희망이라고 말하던 엄마가 이제 끝을 이야기한다.


"이제 네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날이 올까 봐…."


그녀는 담담히 죽음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그녀의 희망에 이제껏 한 번도 화답하지 못했는데. 나의 성공이 그녀의 희망이라고 말하던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나는 이제껏 나를 짓누르던 이 우울에서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면 나는 이제 무엇을 기억하며 숨 쉬고, 일하고,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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