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을까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아이를 자신의 누나 집에 맡겼다.
차 안에서 아이는 아무말 없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작은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오갔을지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길어야 이삼일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누이는 내가 퇴원할 때까지 아이를 맡아주겠다고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도대체 언제 아이를 데리러 올 거냐”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이를 맡아주지 않을까 걱정해 내가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듯했다.
아이가 눈치라도 볼까 봐,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느낀 나는 퇴원한 다음 날 아이를 데리러 시누이 집을 찾았다.
아이는 고작 며칠 만에 놀랄 만큼 훌쩍 자라 있었다.
나를 보자 입을 삐쭉거리며 망설이다가, 사촌 언니들에게 달려가 안기고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이야기는 도통 하지 않고, 어른들 앞에서 매일 싸이춤을 추며 재롱을 부리고, 사촌 언니들의 말도 잘 따르며 즐겁게 지낸다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린 마음속에는, 엄마가 자신을 버린 건지, 다시 데리러 올 건지 알 수 없는 불안과 기다림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남편과 시어머니가 차려 준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 엄마를 놓치지 않을까, 자신을 놔두고 가버릴까 불안해하는 듯했다.
남편이 먼저 밥을 다 먹고, 내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물으며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어머니는 조용히 밥상을 치웠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팽팽한 긴장감이 내 마음속에도 스며들었다.
나는 아직 밥을 다 비우지 못했지만,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한 말을 했다가 다툼의 빌미라도 될까 봐,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릇이라도 나르는 걸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았지만, 면박이라도 당할까 봐 마음 한 켠이 무겁게 움츠러들었다.
남편은 밥을 먹자마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눈치였다.
시누이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고, 시누이 부부는 남편을 마중하러 나갔다.
거실에는 시부모님과 아이, 그리고 나만 남았다.
"아이를 네가 안고 가라."
시아버지는 시누이 집에 온 이후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병원에서 며칠을 누워만 있다가 퇴원한 다음날, 당분간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는 주의도 받았는데 아이를 안으라고 하니 망설여졌다.
내가 주저하자 시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왜 말을 안 듣냐. 아이를 안고 가라니까."
시아버지는 내가 왜 입원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단순히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으니 안고 가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나는 도움을 구하듯 시어머니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시아버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무게가 뱃속의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되었지만, 그 순간 더 이상 누구와도 다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지쳐 있었고, 모든 것이 버거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몇 차례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는 신파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결혼 전부터 “우리 아가, 우리 아가” 하며 살갑게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옛일이 어떻든, 사람 마음이 돌아서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서운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거니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아이 태어날 때까지만 기다려줘. 그 이후에 다시 얘기하자."
남편은 말없이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잠에 빠졌다. 고단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