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멋지다.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추천도서 목록에 있는 것만 보고 아무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한 책.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고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 양자역학은 꽤나 흥미를 가지고 있던 분야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책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일생동안 해온 생각이나 주변인물과의 대화를 모아놓은 것이다. 단순히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정치, 철학, 예술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 대한 석학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읽고 있자면, 단순히 그들이 과학자고 이과의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과학이 아니라, 인류가 밟고 설 땅을 넓히고 있는 것이었다.
현대물리학의 두 축이라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 둘은 단순히 과학 이론의 한 분야라고 하기엔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너무 크다. 특히 양자역학은 단순히 알쏭달쏭한 원자세계를 다루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로 설명 불가능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 담겨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 원자. 분명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을 쪼개어 들어갔을 뿐인데 기존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원자를 관측하며 발생한다. 과학자의 숙명은 그것을 최대한 현재 존재하는 언어로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언어가 그 현상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면 과학자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기존 질서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질서로는 설명 불가능하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기존에 없었던 방식으로 정의해 나갈 것인가. 이것이 아인슈타인과 보일의 싸움일 것이다.
원자는 분명 전체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원자 세계에서는 발생한다. 이 괴리는 과학자들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 베르너가 처한 정치적 상황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 전체의 특성은 개인 특성의 총합과는 전혀 다르다. 상식적인 개인들이 모여 비상식적인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독일의 나치가 그렇고, 그 시대를 휩쓸었던 전체주의가 그렇다.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양자세계의 특성과 거시세계의 특성이 이토록 다른가?' 즉, '과연 어느 순간부터 개인과 집단의 특성이 구분되는가?'
당시는 현대 물리학이 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반대하는 과학자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상대성이론의 논리적 결점을 찾아내려 연구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시위를 하며 정치적으로 아인슈타인을 부정한다. 베르너는 이를 보고 결과를 떠나 그들이 택한 수단이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옳다면, 부정한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성이론을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히틀러의 정책과 연결된다. 히틀러가 정말 옳았다면, 부당한 수단을 사용하며 '좋은 결과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고 합리화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옳은 일은 시간이 걸릴 뿐, 옳은 수단을 사용해서 성취된다라는 것.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의문이 든 것이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정당함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사회는 변화한다. 기존 질서는 반드시 새로운 질서로 대체된다. 기존 질서에서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변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선 대개 초기 소수일 때 과격한 방식을 동반하다 특정 임계점을 넘으면 정당한 수단을 통해 전체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자리 잡은 이들이 곧 '옮음'의 기준이 되는데 여기에 수단의 부정함이 낄 자리가 있을까? 학문적 영역에서의 수단의 공정함과 정치에서 수단의 공정함은 사뭇 다른 문제 아닐까.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지만 그게 불편하진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은 그 자체의 의미보다 전인미답의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학자들의 '열정'으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첨단 과학 지식만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연구가 갖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고찰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과연 문이과가 나뉜 한국에서 이런 고찰이 가능할까? 이렇게 과학자들이 철학적 토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당시의 특별한 시대상인가 아니면 문화차이일까? 베르너와 보일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내 철학적 사유들을 누군가와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