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대만 여행기

by Echae

창틈으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모국에서 묻혀 온 눈꼽을 눈길에 발자국이 묻히듯 털어냈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떴다.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눈부시게 푸르른 초목이 한없이 펼쳤다. 인간의 회색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섬의 녹색만이 정서를 싱그럽게 바꿔 놓았다. 귀가 먹먹해지고 나무들 속에 솟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했다. 기내 안내 방송이 이어지고, 잠시 후 나는 대만 땅이 주는 첫 진동을 온몸으로 받았다. 승강장을 나와 짐을 찾고 입국 절차를 마쳤다.


계속 걸어가면서 보니 공항 곳곳에 파란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쓰여 있는 번체 한자가 읽혔는데,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인 1955년에 문자 개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정자체)를 사용한다고 한다.


대만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공항 입구에서 외국산 동식물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까먹으려고 귤을 품에 지니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잠을 자느라 결국 먹지 못했다. 동식물 검사대 코앞에서 줄을 서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주머니에 묵직한 것이 있길래 꺼내 보았다가 혼비백산했다. 30,000 대만 달러라는 무시무시한 벌금을 본 나는 부랴부랴 줄에서 이탈해 귤을 까서 한 입 먹은 다음 커다랗고 굵은 글씨로 “動植物搬入(동식물 반입) 30000 TWD”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왔다. 못 먹은 귤이 아깝기도 했고 혹시 검역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잡념도 뒤늦게 따랐지만, 새로운 나라에 대한 미지(未知)로부터 오는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인간사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귤을 버린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공항 근처의 식당으로 향해, 국물 맛은 좋았지만, 면은 덜 익어 퍽퍽했던 우육면을 먹고, 바로 단수이(淡水) 구(區)의 홍마오청(紅毛城)으로 향했다. 홍마오청은 17세기, 대만 북부를 점령한 스페인이 세운 요새이다. 원래 이름이자 현재 사용 중인 영문 이름은 산 도밍고 요새(Fort San Domingo)인데, 나중에 네덜란드가 지배하게 되며 홍마오청으로 불리게 되었다. 홍마오청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홍모성이다. 紅毛(홍모, 붉은 머리)는 네덜란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홍모성의 건물들은 홍(紅)의 이름값을 하는지 대부분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었다. 붉은 건물들과 푸른 잔디의 대조는 심히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감상을 선사했다.


네덜란드의 지배 이후, 홍모성은 영국 영사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한 장소 안에 감옥, 포진(砲陣) 등 군사 요새 시설과,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을 닮은 호화로운 영국 영사관 건물이 함께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사관 건물 앞에는 여태까지 대만 섬을 침략한 나라들의 국기가 일렬로 세워져 있다. 각 기(旗)는 스페인, 네덜란드, 명나라의 정성공 장군, 청나라, 영국, 일본, 호주, 미국, 그리고 중화민국의 것이었다. 대만 땅이 이토록 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아 지배자가 바뀌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중화민국 또한 침략자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홍모성을 넘어 바로 뒤편의 진리대학(眞理大學)으로 향했다. 진리대학의 원형은 캐나다 선교사 마카이(Mackay, G. L.)의 옥스퍼드 우진학당(牛津學堂)이다. 대학에 온 김에 가이드님께서 대만의 고등교육 제도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한국과 달리, 대만에서는 대학에 입학하기는 쉬우나 준수한 학점으로 졸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무엇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나라의 지나치게 치열한 입시 경쟁과 비교하면 합리적인 교육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모성과 이곳 진리대학을 포함한 단수이 일대는 유명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한데, 가장 유명한 피아노 대결 장면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화로, 어렸을 때 본 영화에 관한 기억이 몇 없기에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당시 영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감동하여 울 뻔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 여정으로 단수이 옛 거리에 방문했다. 가장 처음 가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메추리알이었다. 한국의 재래시장 비슷한 기운이 풍기는 해변의 시장가에서 가장 많이 팔던 것 중 하나가 진공 압축 포장된 신기하게 생긴 새까만 메추리알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색의 포장이 있는 것을 보아 양념도 여러 가지 맛으로 되어 있는 듯했는데, 그리 먹고 싶게 생기지는 않았었다.


우리가 단수이 옛 거리를 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유명한 대만 카스텔라를 먹어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해산물 집, 이발소, 버블티 집, 기념품점 등을 지나 원조 대만 카스텔라 집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서 있던 곳 기준 양쪽 점포 모두 간판에 자기 가게가 원조라고 적어놓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어딜 가나 더러 있는 일이니, 맛만 있으면 원조가 무슨 상관인가? 나는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따뜻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노란 빛의 카스텔라 한 상자를 사들어 팔에 걸었다.

AD_4nXeBRy1lpLysw7V6b2g3XAJV-22EZAkRoGYuscmrvwbBXHejsq_cilfFSrbLwhxx4QhTA512Sk-zGdyg7WWyKm9lLBdjJwsOd_UEdtXEaruJoy9Il7gW01VuZ_55r3PSFmGoYcQiww?key=arhOqY1_wNMY78qp1hdezwSA

단체 카스텔라 구매가 끝나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 방향으로 우르르 흩어졌다. 우리는 둘러보고는 싶었지만 길을 잃을까 봐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구경하기로 했다. 같이 다니던 일행이 각자 관심 있는 가게에 줄을 서면서 하나둘씩 이탈했다. 종각에는 모두 무인 버블티 가게에서 색다른 음료를 뽑아 마셔보겠다고 줄줄이 줄을 서 나 혼자 남았다. 나는 긴 줄을 서기 싫어 다른 음료 가게를 찾아보았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관광버스가 주차된 곳 바로 앞에 젊은 현지인들이 자주 왔다 가는 과일 주스 포장마차를 찾았다. 고민 끝에 내 앞에 사람이 선택한 수박 주스를 샀다. 커다란 컵에 수박 주스만 꽉 채워 주셔서 다 마시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무인 버블티 가게에서 돌아온 친구들도 막대한 음료 양에 지쳤는지 서로에게 자기 것을 마저 마셔 주길 권하며 양이 많다고 감탄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 마시지 못한 음료를 버스 의자에 꽂아 놓고 까르푸로 장을 보러 갔다. 앞서 수학여행 여정을 안내한 가정 통신문만 본 나는 까르푸가 뭔지 그 독특한 이름에 궁금증이 컸다. 도착해서 보니 ‘carrefour’라는 대형 마트 상표를 대만 식으로 읽은 것이었는데, 한국에 빗대어 보면 이마트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까르푸에 들어가면서 본 간판에는 이곳은 24시간 운영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요즘 편의점도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점이다.


마트 안에는 벌써 핼러윈을 맞이하여 호박과 귀신 소품들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스펀지로 된 큰 낫 장난감을 보고, 서로에게 휘둘러 누구를 어떻게 한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의 잡담을 하였다. 그래도 떡국을 16개나 먹고서 충동구매를 하여 남의 나라 대형 마트에서 단체로 장난감 대낫을 들고 활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핼러윈 코너를 빠져나와 군것질거리를 둘러보았다. 숙소에서 밤에 먹을 것과 집에 가져갈 것을 사려고 유심히 물건들을 톺아보았다. 다들 많이 산 물건으로는 즉석식 버블티, 누가 크래커, 고추기름 뜨는 대만식 컵라면, 기타 대만산 사탕, 과자 등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누가 크래커와 컵라면을 샀다.

AD_4nXfjWeALwLVme3UwMsVIYDoLgG9mZg2X7HRwuyihnxxQBLwKFzTRB5XAjs5OLIFmoy0klNg3EdcHwjOptAZqI-4UKXkLXpDUDZ0nmaBj9b2-16YWefVxjaSnnRXIp53k4wZVlkCI8g?key=arhOqY1_wNMY78qp1hdezwSA

친구들은 다들 대만산 상품을 샀는데, 물론 여행 와서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수입 물품은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에 그 이유가 있다. 까르푸 마트에도 한국 물건들이 많았으니 이를 예로 들어보자면, 신라면 큰 컵 하나에 89 대만 달러(한화 약 2700원), 빼빼로 한 상자에 110 대만 달러(한화 약 4700원) 상당이었다. 가이드님께서 대부분의 수입품 생산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하여 대만과 단교했기 때문에 관세가 높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후 여정에서도 계속 느낀 것이지만, 비쌀 것 같은 물건은 터무니없이 싸고, 쌀 것 같은 물건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는 수교 문제뿐 아니라, 대만, 특히 우리가 간 타이베이 지역이 서울과는 달리 바닷가인 까닭이기도 한 것 같다.


식료품 코너를 나와서 가전제품 코너에 구경을 갔다. 대만 현지 브랜드와 함께, LG, 삼성 등 한국 가전도 많이 보였다. 세탁기, TV 옆에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또한 판매하고 있었다. 평소 IT에 관심이 있던 터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노트북 진열대로 다가갔다. 하지만 든 생각은 뜬금없게도 공항에서 귤을 버리기 잘했다는 확신뿐이었다. 왜냐하면 보급형 정도의 성능으로 보이는 노트북 가격이 24900 대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대만 화폐 개념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큰 충격을 받아 환율을 확인하고 나만의 계산법을 만들게 되었다. 잘못하면 노트북값보다 비싼 돈을 벌금으로 물게 될 뻔했던 것이다! 친구들은 1 대만 달러가 40원 정도라고 했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50원에 가까웠기 때문에 모든 금액에 50을 곱하기 시작했고, 큰돈일수록 실제 값보다 계산한 값이 더 불어난다는 것을 간과한 연고로 나의 대만에서의 구두쇠 같은 행보가 시작됐다. 결국 여행이 끝났을 때 바꾼 돈을 다 쓰지 못하였다.


물가 체험 프로그램의 의도에 걸맞게 나는 대만 물가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까르푸를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계산대 구석에 어떤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내 한문이 짧아 다 해석하진 못했지만 대충 어떤 정책이 시행된다는 내용인듯했다. 여기서, 시행 시작 기간에 ‘自 112年’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어떤 종류의 기년법(紀年法)일 것이라는 생각에 휴대폰 계산기를 켜 2024에서 빼 보니 1912가 나왔다. 다시 1912에 112를 더하고 1을 빼면 2023이 나온다. 그러므로 해당 정책은 2023년부터 시행한 정책이다. 여기서, 1912년은 중화민국이 건국된 연도이므로, 대만도 우리나라의 단기처럼 건국 연도를 기원으로 하는 독자적 기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숙소에 가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이는 민국기년(民國紀年)이라는 기년법으로, 북한의 ‘주체년호’, 일본의 ‘다이쇼 연호’와 숫자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안 것이 기뻐 내가 알아낸 사실을 몇몇 친구들에게 공유하였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특별한 관심을 두거나 흥미로움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까르푸를 나와 저녁으로는 몽골리안 BBQ 뷔페식당을 갔다. 그곳이 평소 경험해 보았던 뷔페식당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시그니처 메뉴인 것으로 보이는 고기 요리가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채소와 고기, 양념을 그릇에 넣어서 큰 선반에 내면 요리사분들이 직화에 조리해 주셨다. 뷔페에서 먹은 음식 중에는 그것이 가장 맛이 좋았다. 질기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은 고기의 식감에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양념이 일품이었다. 채소는 고기의 텁텁함과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이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요리사분들이 계시는 조리 선반 앞까지 줄을 따라가며 재료를 골라 넣어야 했다. 이때, 또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재료가 든 선반 위에 어떤 안내문이 있었는데, 맨 마지막 줄에 “謝謝!”라고 되어 있었다. 이 요상한 사례할 사(謝) 자(字)의 연속에 이게 뭘까 잠깐 고민한 끝에, 이것이 중국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잘 알려진 “谢谢(xièxiè[씨에씨에], 감사합니다)”임을 깨달았다. 내가 중국어를 너무 어릴 때 배웠던 터라 그때는 속자(俗字)에서 말씀 언 변(言)의 간소화된 모양이 ‘讠’임을 몰랐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谢’가 ‘謝’의 간자(簡字)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나의 놀라울 정도로 열악한 연상 능력을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 식당이 내가 경험해 본 뷔페식당과 다른 점 두 번째는 바로 음료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콜라, 사이다, 과일 탄산음료는 기본이요, 대만에서 나는 것으로 보이는 각종 열대과일 주스와 여러 가지 맛의 슬러시, 스무디, 무(無)알코올주(!), 버블티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독특한 음료들이 있었기에 조금씩 모두 마셔보았다. 망고 스무디는 원래 알고 있던 달콤한 망고 맛이 났다. 열대 과일 주스들은 과일즙이라기에는 그윽한 맛이 나서 별로였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주스가 아니라 차였다. 초콜릿 스무디는 무려 허쉬(Hershey’s) 상표를 달고 있었는데, 뷔페에서 초콜릿 맛 스무디를 맛보게 되는 것이 신기해서 약간 기대를 품고 마셔보았다. 하지만 스무디에서 팥 아이스크림과 참으로 완벽히 똑같은 맛이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무알코올주는 처음에 내가 내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무언가 찔리는 부분이 있어 받지 않았지만 결국 친구가 가져온 것을 맛보게 되었다. 시큼한 손소독제의 기운이 확 올라왔다. 전하는 소문에 따르면 우리 반의 모 학생이 결국 무알코올주를 퍼마시고 알딸딸한 취기가 올라옴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취두부가 있었다. 뷔페에 오기 전 가이드님께서는 취두부가 만들어지는 역한 과정을 설명해 주시고, 의외로 맛이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젊은 사람들도 많이 먹는다고 알려 주셨다. 하지만 냄새를 맡자마자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저 너머로 사라졌다. 청국장을 하수구에 삭힌 듯, 계란과 고기를 함께 썩히는 듯,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심연 저 너머에서 코를 묵직하게 찌르는 그 느낌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취두부가 한국의 청국장 같은 느낌이라고 하던데, 냄새는 청국장보다 훨씬 지독했다. 그런데, 취두부를 의외로 잘 먹는 친구가 있었다! 그에게 취두부를 잔뜩 먹이고 입바람을 쏘아 다른 친구들에게 독한 구취를 뿜고 다니는 장난을 하며 식당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하며 놀려고 했으나 너무 피곤해 일단 자다가 다시 깨서 놀기로 했다. 하지만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고 말았으며, 결국 12시 30분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2일 차 아침 가장 먼저 간 곳은 신주(新竹)시에 위치한 우리 학교의 자매결연 학교, 신죽고등학교(國立新竹高級中學)이다. 신죽고는 수·과학영재반이 예부터 있던 고등학교로, 1986년 노벨상 수상자 리위안저(李遠哲)의 모교이기도 하다. 따스한 아침햇살 아래 우리 관광버스가 교정으로 들어가니,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신죽고 학생들이 태극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대만의 국기), 그리고 우리들 이름이 적힌 하트 모양 표지판을 흔들며 우리를 격렬히 환영해 주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대만의 교련 교육 문화에 관해 설명해 주시며 환영이 성대할 것이니 우리도 그만큼 갖추고 가야 한다고 예고는 하셨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갈히 늘어선 학생들 앞으로 신죽고 선생님들께서 서 계셨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샛길을 통해 강당으로 향했는데, 그때까지 신죽고 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모두 나와서 서 있는 것도 미안한데 한 명 한 명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계속 환호로 반겨 주는 것이 고마운 것을 넘어 사뭇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최대한 보답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그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지나갔다.


신죽고의 광대(廣大)한 교정에는 더운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정말 몸에 힘을 빼면 그대로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어떤 친구들은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갔다. 이렇게 강한 바람은 살면서 몇 번 겪어본 적이 없었고, 바람이 미지근한 것도 은근히 몸에 맞는 느낌이 재밌어서 바람이 계속 불기를 바랐다. 나중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을 괜히 찾아갔다가 신죽고에서 배부한 기념품이 든 종이봉투가 저 멀리 날아가서 주워 오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강당에서 양교(兩校) 교장 선생님 연설과 중앙고등학교 소개 발표 등이 있었다. 모든 연설과 발표 등의 절차가 끝나자, 신죽고 학생들과 함께 신죽고에서 제공해 준 도시락을 까먹었다. 백미와 청경채, 양념한 고기 등이 들어 있었던 도시락은 여태까지 대만에 와서 먹은 음식 중 몽골리안 BBQ 식당의 것 다음으로 맛있었다. 이 사견(私見)에 대부분 친구는 동의하지 못했다. 또, 대만이 원조(元祖)로 유명한 버블티도 제공받았는데, 한국에서 몇 번 마셔본 버블티와는 다르게 맛이 상큼한 부분이 있었다. 타국의 방문객들이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라주신 것 같아 고마웠다.


밥을 먹고 우리는 5명씩 나누어 여러 교실에 배정되었다. 우리가 간 교실에서 만나본 신죽고 학생들은 자못 개구지고 활발했다. 교실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낯선 방문객을 두고 학생들이 난장판을 만드는 듯하자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하셨지만, 나는 새롭게 느껴보는 활발한 기운에 젖어 마냥 행복했다. 신죽고 학생들과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버블티 등 대만의 각종 문화와 명물에 대한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의 설명도 들었다. 그다음 교정 한구석에서 한국의 제기와 비슷한 깃털 달린 전통 장난감(毽子라고 한다)을 차고 놀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해산했다. 친구들은 서로의 SNS 계정을 공유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아직도 신죽고 학생들의 때 묻지 않은 발랄함과 함께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중함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배웅을 나온 신죽고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들의 생기(生氣)를 마음에 깊이 담았다.


다음 행선지는 내가 특별히 고대했던 예류 지질 공원(野柳地質公園)이었다. 수학여행 가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며 밑동이 가늘고 위쪽은 뭉툭한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과, 깎아지른 절벽 아래 휘몰아치는 파도를 찍은 사진을 보았다. 이곳은 대만의 방대한 자연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비슷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보았을 때, 그곳의 경치는 옐로스톤과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상을 주었다. 해수(海水)의 풍화 침식(風化浸蝕)으로 만들어진, 막대기 위에 접시와 쟁반을 올려놓은 듯한 크고 작은 바위들이 황톳빛 지반 위에 해안가를 따라 끝없이 수놓였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웅장했다. 지반은 석회로 되어 있는지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도 진흙 기가 별로 없었다. 덕분에 바위틈 구석구석을 부담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해서 여왕 머리 바위(野柳女王頭石)만 보고 오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우리는 가이드님의 안내를 따라 새까맣고 뾰족한 암반과 나무다리를 건너 여왕 머리 바위 쪽으로 향했다. 바로 아래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는 참으로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중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규모의 하얗고 세찬 파도가 거친 천연의 방파제에 부딪혀 튀어 오르며 흩뿌리는 것이 정말로 은산(銀山)이 꺾여 내리는 듯, 백설(白雪)이 날리는 듯하다는 생각이 곧바로 시가(詩歌)의 구절과 함께 떠올랐다.

가는 길에 우리 눈앞으로 솟아오른 누런 낭떠러지들이 두세 개 늘어선 것이 보였다. 낭떠러지들에는 겹겹이 조금씩 서로 다른 색의 층이 져 있었는데, 표지판에는 “여왕의 서재”라고 적혀있었다. 그 커다란 돌덩이의 위상을 충분히 감상하고 표지판을 읽어보니 그 발상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좌우지간 여왕 머리 바위라는 이곳의 정체성과 이 신비한 자연의 구조를 누런 종이의 색과 엮어 생각하여 책더미라고 표현한 사람은 실로 문학의 대가가 아닐 수 없다.

AD_4nXdmaO1QEm1p-MY2xA6Q-ZIGG2tHlcLJz2RGvKR0wnIThj6fQThAmof887XazDzB7w71vaKj9Of80L9seGtvilwytHdnlQlUF3gH7BR6hkixSmIkkjQz8p2CbZ76tdretLoF_iAiRg?key=arhOqY1_wNMY78qp1hdezwSA

요란하지만 신기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 더 걷자, 대망의 여왕 머리 바위가 나왔다. 우리 일행도 사진을 찍기 위해 이미 긴 줄 뒤에 들어가 섰다.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바닷소리, 새 소리 등을 들으며 기다린 끝에 우리에게도 사진을 찍을 기회가 왔다. 여왕 머리 바위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곳의 여느 다른 돌들과 다른 점이 없었지만, 오묘하게 특정한 각에서 보면 여왕 얼굴의 윤곽이 보인다. 여왕은 공원의 한켠에서 자신의 왕국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아직도 고래는 여왕을 위해 수면 아래에서 성난 듯 춤을 추고 있었다. 평평한 언덕에 솟아오른 여왕의 두상 뒤로 파도가 또 한 번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도 기세등등한 여왕도 10년 뒤면 침식으로 인해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예류에서 해산물 정식을 먹고, 101 타워로 이동하니 금세 날이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101타워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의 시내 중심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로비 층에는 여러 명품 판매점이 있었다. 줄을 서서 내부가 세련되게 생긴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잠시 후 무서운 속도로 위쪽으로 튀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이 심히 가중(加重)되는 기분에 살짝 어지러운 듯했다. 귀가 먹먹해져 왔고, 나는 하품을 하듯이 귀인두관(耳管)을 열어 귀를 뚫었다. 올라가면서 받는 이상한 느낌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있자니, 순식간에 실내 전망대가 위치한 89층에 도착했다.


AD_4nXdCuXFPLYq_5aGsGLHTt77j8pxJfiIln-gphl2iwdDqe3Snh_c6oZ_j5T1qatDrqdHKDi0YmS8WSxU4QK2ETDs-pa8jpNIFgCNu8hnguaqKHwDrfw0oQojpwxOB3Wlwa3r6BsvQ2g?key=arhOqY1_wNMY78qp1hdezwSA

건물은 가운데에 내진 설계를 위한 거대한 무게추를 두고 있고, 그 주위로 빙 둘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위치한 구조였다. 우리는 실내 전망대 사방을 돌아다니며 타이베이 시내의 야경을 눈과 카메라에 쓸어 담았다. 우리는 다양한 빛깔로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빛들을 등지고, 벌처럼 생긴 101 타워의 마스코트와 함께 사진도 찍고, 고소 공포증이 있는 친구를 놀랍도록 두꺼운 유리창 쪽으로 슬금슬금 미는 장난도 했다. 88층에는 대망의 내진 무게추가 있었는데, 이를 ‘윈드 댐퍼(wind damper)’라고 부른다고 한다. 벌과 닮은 마스코트도 이 무게추의 모양을 본뜬 것이었다. 무게추는 정말로 거대했다. 지진이 나면 이 무게추가 흔들리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기울어 진폭을 최대한 줄인다고 한다. 수학여행을 오기 전 사전 교육에서 실제로 지진이 난 상황에 대만 관광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게추가 흔들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이 기억이 떠오르자 지금 잠깐 지진이 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진이 잦은 대만에 우리가 여행을 간 동안 한 번도 지진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이어 들었다.

AD_4nXf0sKM9UbYFHdClGwIUJrYN3HWGpNRiuBRbdbdqfdaV-oFI2QfVddCcduhrgcdlj64a-1r3kSnzb83W9-BuNlR1BqP4O31BYO8RBXx7jFfBSOjt1_oNQwftjYEVut-o2bMu_OgpPA?key=arhOqY1_wNMY78qp1hdezwSA

또 다른 행선지는 고궁 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이었다. 이곳에는 장제스(蔣介石, 장개석) 총통이 중공에게 밀려 대만 섬으로 들어올 때 가져온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유물이 너무 방대하여 한 번에 박물관에 모두 전시를 못 하고, 몇 년 주기로 교대하며 전시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어떤 유물은 인생에 몇 번밖에 못 본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박물관에는 옛 중국의 여러 나라의 왕실 물품들, 불상, 도자기 등이 주로 전시돼 있었다. 옥으로 된 동파육 모양의 조각인 육형석(肉刑石)도 있었는데 정말 실물같이 생긴 것이, 돼지 껍질의 땀구멍도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취옥백채(翠玉白菜)였다. 윗부분은 청색이고 아랫부분은 흰색인 특이한 옥으로 만든 배추이며, 배춧잎에 앉아 있는 여치까지 아주 세밀하게 조각되었다. 옛 중국에는 이러한 옥 조각 유물이 매우 많다고 가이드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수없이 많고, 섬세하며, 발상도 기발한 유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AD_4nXcSnG3jCDt4Pt78rT4WUbcmv2VhuHiroQpCM6FGA0jYSGCTG_CRv062GytkhyCQM1HcnzxyupLNvzsdzhJsDlxU_4mY6jhy1jzGPbyrIS32Nq5hPqJan_DY9PCM18JO2wJaZ_kLqQ?key=arhOqY1_wNMY78qp1hdezwSA

마지막 날 아침 중정기념관(國立中正紀念堂)으로 향했다. ‘중정(中正)’은 장개석의 본명(本名)으로, 대만에서는 장개석을 장중정(蔣中正)으로 교육한다고 한다. 내부는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간단히 보았다. 나는 그의 생애, 그의 가족, 그가 생전 탔던 자동차 등의 전시를 인상 깊게 보았다. 한 구석에는 그의 집무실이 실감 나게 복원되어 있었다. 그의 의자에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 같은 그의 인형(人形)이 앉아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채워 넣은 그의 표정은 사색에 잠긴 채 한없이 비장하면서도 슬펐다. 중정기념관의 건물은 중국 본토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장개석의 본토 수복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국의 민주 통일을 눈앞에 두고 공산당에게 밀려 작은 섬으로 밀려 내려온 그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후대의 정세(情勢)에 대해서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 보니 조금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AD_4nXdXc8Tv8-owyNcjWGgiY200YuWCYntmSxWahSleGQrbF5gIwNoDQYubj3GnyLmkwcq6LA6-70HNrJQTlfx7TeEnNW2NUVGyzNb-yKuclfUGhVbCJwrg_wVsZLV85dEIEL3jAoSv?key=arhOqY1_wNMY78qp1hdezwSA

다음으로는 고풍스러운 경관이 인상적이었던 지우펀(九份) 옛 거리로 갔다. 이곳은 아름다운 거리 풍경과 함께, 걸작으로 평가되는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만 해당 작품의 제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어쨌든 실제로 매우 흡사하게 생기기도 했고, 지우펀의 유명세에 크게 이바지한 부분이며, 여행 중 유일하게 일본인 관광객 행렬을 본 곳이기도 하므로 유념하여 나쁠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가이드님께서 미리 설명해 주신지라,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달동네 한구석에 있을 것만 같은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라가 꼬불꼬불한 길을 걸었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대만에서 제대로 된 비를 맞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고 우산에 튄 빗물도 옷을 푹 적실만큼 비가 많이 내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가로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펑리수, 누가 크래커, 망고 젤리, 버블티, 차, 지파이 등 대만 특산 식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모두 팔았다. 상인들은 모두 친절하셨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분도 계셨다. 모든 상인들께서 우리가 지나가는 족족 살갑게 인사해 주시고 시식을 권하셔서 나중에는 가게들을 그냥 보고 지나가기 미안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의 활력 있는 분위기는 즐거웠다. 그런데, 거리를 걷다 보니 익숙한 악취가 났다. 바로 취두부였다! 시장가 한 부분에 취두부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맛이 있기는 한가 본지 사람들이 더욱 몰려 재빨리 빠져나가는데 큰 난항을 겪었다. 나에게 취두부의 악취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시장가를 나오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토스팟’이 나왔다. 동시에 우리를 덮어주던 나무와 지붕이 사라져 빗줄기가 훨씬 강하게 우산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같이 다니던 친구들 중 몇은 사진을 찍고 센과 치히로 기념품을 사겠다고 이탈했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는 이곳이 “진또배기”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며 빗줄기로부터 황급히 도망쳤다. 포토스팟의 건물은 지우펀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에, 조금 아쉽기는 했다.


실컷 맞은 비를 말리는 시간도 잠시, 우리 버스는 다시 스펀(十分)에 도착했다. 스펀은 폭포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는 천등(天燈)을 날리러 간 것이었다. 계속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사람들은 사뭇 즐겁게 소원을 적은 천등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천등 점포 구석에서 네 면에 각자의 소원을 붓으로 적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천등도 비닐 재질로 되어 있었던 탓에 먹이 마르기도 전에 글씨가 흘러내렸지만, 소원이라는 것은 나에게, 또 하늘에게 전달이 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 신을 비롯한 모든 한자 문화권의 신들이 내 소원을 읽을 수 있도록 한자로 간결하고도 소중한 소원을 썼다.

幸福 (행복)

平安 (평안)

学成 (학성)

일행 모두가 소원을 다 적고 직원 분의 도움을 받아 날릴 준비를 하려는 그때, 옆에서 교장 선생님과 소원을 적으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야, 얘들아. 이름을 적어야지, 안 그러면 누구 소원인지 어떻게 알 거야.”

우리는 아차 싶어서 재빨리 각 면에 우리 이름을 휘갈겼다. 마침내 날릴 준비가 정말로 끝났고, 우리는 빗물에 빛나는 자갈이 깔린 철길 위에서 천등에 불을 붙였다. 직원 분들의 안내에 따라 천등을 높이 들어 놓으며 대만에서의 마지막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천등은 순식간에 잿빛의 하늘 저 너머로 멀어졌다. 천등에 붙은 불은 우리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 의지적으로 빗물을 뚫고 나아갔다. 우리는 오랫동안이나, 천등이 하늘에 수놓은 수많은 점 중 하나가 될 때까지 위를 쳐다보았다.


천등 날리기가 끝난 후, 천등점(天燈店) 천막에서 원래 지우펀에서 먹어야 했다던 땅콩 월병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비를 피했다. 밖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괜스레 마음 까지 감상에 젖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낭만을 깬 갑작스럽고 괴짜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 바로 환경 문제였다. 저 수많은 천등이 마침내 불이 꺼져 떨어지면 어떻게 처리할까? 폴리 비닐 재질이라 쉽게 분해되지도 않을 텐데? 하지만 정말로 그 엄청난 양의 천등이 그냥 버려졌다면 이미 천등 날리기는 금지되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체험을 해볼 수 있던 것은 필(必)히 처리 절차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숙소에 돌아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다. 괜한 걱정이었다. 천등은 따로 수거하여 천등점에 되파는 구조라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스펀을 떠나 금품차루(金品茶樓)라는 음식점에 가서 특이하게 숟가락에 국물부터 터트려 마시는 방식으로 먹는 딤섬을 맛본 후, 화산(華山) 1914로 향했다. 이곳은 대만의 일제 강점기 시기 최대의 양조장이었다고 한다. 가서 보니 역사는 그리 강조되지 않는 듯하고,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았다. 화산 1914에는 신죽고 선생님께서도 설명해 주신 유명한 원조 버블티 가게, 춘수당(春水堂)이 있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원조 집이라면 가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이곳은 지점이고, 본점은 타이중(臺中)에 있다고 했다. 친구들 몇과 부랴부랴 가게를 들어가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순수 버블티(珍珠奶茶)를 주문했다. 값이 상당히 비쌌으나, 어차피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돈을 모두 써야 했기에 기쁘게 지불했다. 맛은 보장된 것이지만 서술을 해보자면, 홍차의 쌉싸름한 맛과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합쳐져 상당히 깊게 맴돌았다. 또, 한국과 다르게 버블티 안의 펄(알맹이)이 정말 많아서, 알맹이 아껴 마시겠다고 빨대로 위쪽만 훑다가는 나중에는 국물도 없이 빨대로 알맹이만 푝푝 빨아먹게 된다. 나는 춘수당에 정신이 다 팔렸었지만, 나무 공예 가게, 과학 괴짜들을 위한 가게, 옷 가게 등등 볼거리가 다양했다. 마침내 화산 1914를 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며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물론 밤이 저물었다는 것은 문학적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는 진이 쪽 빠질 때까지 놀다가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다음 날 오전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라 기상 시간이 여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한 것이었다. 공항으로 가며 나는 타이베이의 마지막 풍경을 최대한 마음에 간직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다시금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가 쓰인 표지판이 온 곳에 붙어있는 공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세수간(洗手間, 대만에서는 화장실을 세수간이라고 부르더라)에 갈 때도 아쉬워서 그 명칭을 곱씹었다.


면세점에서 대만의 차와 기타 기발한 기념품을 실컷 구경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고까우면서도 한국, 그리고 집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우리 비행기는 우리가 며칠 전 착륙했던 타오위안(桃園) 공항의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높은 하늘에 솟아 떴다. 이 여행은 완벽한 푸른 빛의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끝을 맺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다시금 달리기 시작하면, 이 여행에서 얻어가는 원기(元氣)는 내가 탄 비행기가 창공(蒼空)을 가르는 양력(揚力)을 받는 것처럼 나에게 큰 거름과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