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네트워킹, 많을수록 좋을까요?

명함 수집을 멈추고 '관계'를 경작해야 하는 이유

by 심재후

창업가들에게 성공의 필수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네트워킹(Networking)'이 최상위권에 자리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명함을 돌려라." 이것은 창업 생태계에서 거의 헌법처럼 통용되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때 창업가였던 사람으로서 저는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많을수록 좋을까?" 만약 우리가 선의로 만든 수많은 네트워킹 행사와 지원 시스템이 오히려 창업가들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Resource Inequality)를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올해 김지영 박사와 제가 발표한 시뮬레이션 연구(Kimjeon & Shim, 2025)를 근거로 합니다[1]. 창업가들이 자원을 획득하는 과정을 컴퓨터로 모의 실험(ABMS)해 본 결과, 우리의 통념을 뒤흔드는 진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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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트워킹의 역설: 기회가 너무 많아도 독이 된다

연구팀은 '네트워킹 용이성(Ease of Networking, E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리콘밸리처럼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개방적 환경'과, 인맥 없이는 만나기 힘든 '폐쇄적 환경'을 비교한 것이죠.

결과는 놀랍게도 'U자형 곡선'을 그렸습니다. 네트워킹 기회가 너무 적을 때 불평등이 높은 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기회가 너무 넘쳐날 때(EoN이 매우 높을 때)에도 불평등이 다시 높아졌습니다. 불평등이 가장 낮은 지점은 기회가 적당히 제한된 중간 지점(Sweet Spot)이었습니다.

왜일까요? 기회가 너무 많아지면 모든 창업가가 수많은 투자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깊이 있는 신뢰 관계를 쌓을 시간이 부족해지고, 결국 투자는 개인의 역량이 아닌 '순전한 운(Brute Luck)'에 의해 결정되는 무작위 게임(Random Game)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즉, 너무 쉬운 연결은 오히려 노력의 가치를 희석시킵니다.


2. 대규모 행사 vs 소규모 프로그램

창업 지원 기관들은 종종 수백 명이 모이는 '네트워킹 파티'나 '대규모 데모데이'를 엽니다. 과연 이것이 효과적일까요? 시뮬레이션 결과, TechCrunch Disrupt와 같은 대규모 단기 이벤트는 대부분의 경우 자원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얕고 넓은 만남(Casual Contact)만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처럼 소수의 인원이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 장기 네트워킹 프로그램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명함의 개수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입니다. 그러니 창업가 여러분, 대규모 컨퍼런스에 가신다면 무작정 명함을 모으기보다 사전에 꼭 만나야 할 소수의 핵심 인물을 정하고, 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전략이 훨씬 유리합니다.


3. 가장 '공정한' 지원이 가장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네트워킹에 취약한 사람(지방 소재, 학연 지연 부족 등)"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정적 타겟팅(Static Targeting)'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고정된 약점을 가진 사람만 계속 지원하면, 동일한 사람들이 혜택을 독점하게 되어 전체 생태계의 불평등은 오히려 커집니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적 타겟팅(Dynamic Targeting)'이었습니다. "최근 1년간 투자를 못 받은 사람"처럼, 현재의 상황(Status)을 기준으로 지원했을 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고 중복 지원이 방지되었습니다. 선의(Good will)로 설계된 정책이라도 그 구조에 따라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입니다.


맺으며: 수집가가 될 것인가, 농부 될 것인가

이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네트워킹 기회의 양(Quantity)이 아니라 네트워킹 기회의 구조(Structure)가 성공과 불평등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단순한 믿음은 이제 버려야 할 때입니다. 다음번에 네트워킹 행사에 나가실 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연락처를 '수집(Collecting)'하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를 '경작(Cultivating)'하고 있는가?"


[1] Kimjeon, J., & Shim, J. (2025). Entrepreneurial Networking and Resource Inequality: The Unexpected Impact of Institutional Support. Academy of Management Perspectives, https://journals.aom.org/doi/abs/10.5465/amp.2023.0374

(* 네트워킹 전략이나 창업 생태계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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