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관계, 돈의 포트폴리오
많은 분들이 창업의 필수 요소를 '돈', 즉 재무적 자본(Financial Capital)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무실을 구하고, 서버를 열고, 마케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수많은 경영학 연구와 제가 목격한 현장의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진실은 하나입니다. 창업은 돈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돈은 자동차의 연료일 뿐, 차를 움직이는 엔진도,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재무적 자본 외에도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두 가지 핵심 자본이 반드시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자본이 무엇이며, 이들이 어떻게 맞물려 창업이라는 복잡한 기계를 움직이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창업자와 팀 그 자체, 바로 인적 자본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Gary Becker)가 정립한 이 개념은 개인의 지식, 기술, 건강, 경험 등 생산성을 높이는 모든 요소를 뜻합니다[1].
쉽게 말해 "이 팀은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자본입니다. 똑같은 아이디어라도 누가 실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지 차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핵심 개발자의 코딩 역량
특정 산업(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
빠르게 가설을 검증하고 배우는 학습 능력
이 모든 것이 창업팀의 자산입니다.
인적 자본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학력과 경력입니다. "창업에 학벌이 무슨 소용이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연구들은 이 요소들이 꽤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학력입니다. 이는 단순한 '간판'이 아닙니다. 스펜스(Spence)의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에 따르면, 학력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자나 파트너에게 창업가의 '성실성'과 '학습 능력'을 보여주는 신뢰의 신호(Signal)로 작용합니다[2].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력입니다. 쉐인(Shane)의 연구에 따르면, 창업 기회는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사전 지식(Prior Knowledge)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입니다[3].
산업 경험: 고객이 진짜 불편해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직무 경험: 제품을 만들고 파는 현실적인 감각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연구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학력 그 자체보다는 사업과의 관련성(Relevance)이 중요하다"라고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췄어도(인적 자본),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사회적 자본입니다. 이는 창업자가 가진 관계망, 신뢰, 평판을 의미합니다.
믿고 투자해 줄 엔젤 투자자
첫 고객이 되어줄 지인
공동 창업자를 소개해 줄 선배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비용이 낮아지고, 기회를 잡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특히 그라노베터(Granovetter)의 유명한 연구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처럼, 창업의 결정적인 기회는 친한 친구보다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에게서 올 수도 있습니다[4].
사회적 자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는 것입니다. 성공한 창업가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합니다.
목적 있는 네트워킹: 무작정 명함을 돌리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단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의합니다.
Give-first(먼저 주기): 실리콘밸리의 격언처럼, 도움을 받기 전에 먼저 정보나 인사이트를 제공하여 부채감(신뢰)을 심어줍니다.
생각의 발신: 블로그나 SNS에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올리는 행위는 전문성(인적 자본)을 드러내어 새로운 연결(사회적 자본)을 부르는 가장 좋은 신호탄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무적 자본입니다. 현금과 자금 조달 능력을 말합니다. 이 자본의 본질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할 시간'을 벌어주는 데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Runway)
몇 번의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가?
재무적 자본은 창업가에게 심리적 여유와 선택권을 제공하는 '산소통'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자본은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입니다.
인적 자본이 강하면 매력적인 팀이 되어 투자(재무)와 사람(사회)이 모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면 고급 인재(인적)와 투자자(재무)를 소개받기 쉽습니다.
재무적 자본이 넉넉하면 좋은 사람을 채용(인적)하고 네트워크를 구축(사회)할 시간이 생깁니다.
창업의 성패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사람)',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관계)',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돈)'의 정교한 조합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창업을 위해 돈만 찾고 있지는 않나요? 그 이전에 나 자신의 실력을 갖추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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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Becker, G. S. (1964). Human Capital: A Theoretical and Empirical Analysis, with Special Reference to Education.
[2] Spence, M. (1973). Job Market Signaling.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3] Shane, S. (2000). Prior Knowledge and the Discovery of Entrepreneurial Opportunities. Organization Science.
[4] Granovetter, M. S. (1973). The Strength of Weak Tie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