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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Mar 12. 2024

우당퉁탕 입학처장 다이어리 1화

프롤로그보다 먼저 쓰는 그날 밤 스토리

2월 29일, 그날 밤


정시 모집이 2월 26일 마무리되고 모집 단위별로 부족한 인원을 추려 합산해 보니 전체적으로 4N명의 추가 모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추가 모집이 필요한 학과(부)라 해서, 그 학과의 입학경쟁률이 미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정시 마감 직전 다른 대학 합격이나 재수 결정 등의 이유로 등록 포기자가 발생해 추가 모집이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4N명을 뽑기 위한 모집 공고를 내고 초조한 마음으로 마감을 기다렸다. 다행히 1,02N명의 수험생이 지원해 주어 20대 1을 훌쩍 넘겼을 뿐만 아니라, 충원에 주황색 불 정도 들어왔던 일부 과도 예상외로 지원자가 많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지원해 준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고맙고 예쁠 수가 없었다.


추가 모집의 최종 등록이 마감되는 29일 밤까지 소수의 합격자 발표와 환불 처리가 반복된다. 28일 최초 합격자, 4N명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이들 수험생 중 상당수는 등록을 해주었지만, 이미 등록한 학생 중 일부는 환불을 요구하고 이탈했다. 이탈자 수를 추려 1차 추가 합격자 발표를 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등록을 하고, 이미 등록한 수험생 중 일부는 또 이탈했다. 이런 상황이 29일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22학년도에는 신입생 충원율 100%를 달성했지만, 작년에는 한 명이 등록 최종 마감 직전에 이탈했었다. 사실 이렇게 이탈하는 수험생이 발생하면 막을 길이 없다. 시간을 두고 이탈하면, 추가 합격자를 발표해 새로운 등록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종료 직전 이탈하면, 최대한 이탈자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상당히 아쉬운 상황이다. 빨리 포기하면, 후순위 대기 수험생에게 우리 대학 입학의 기회를 줄 수 있지만, 종료 직전 이탈을 결정하면 대기자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게 된다. 물론 수험생마다 각자의 상황이 있으므로 절대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그냥 처장 마음이 좀 그럴 뿐이다.


하여튼 대입 실무를 정신없이 우당퉁탕 겪어내고 있는 새내기 입학처장으로서 심리적 마지노선은 이탈자 두 명 정도였다. 29일 저녁 6시에 최종 등록이 마감되면, 더 이상 추가 합격자 발표를 할 수 없다. 6시 이후, 밤 9시까지는 이탈자만 발생한다. 마감 5분 정도 남은 5시 55분까지 이탈자 없이 충원율 100%가 유지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세 시간의 사투


애써 태연한 척 처장실에서 쇼츠(shorts)를 엄지 손가락으로 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 6시, 전화가 울렸다.


"처장님..."


입학전형관리팀 사무실에서 오늘 일정을 총괄하는 부처장님의 목소리에 힘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5분 동안 이탈자가 적지 않게 발생했구나.'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난 아쉬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말했다. "네, 부처장님"


"59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이 이탈했어요. 한 명은 도저히 안 될 것 같고, 한 명은 설득 중인데 다른 학교 복수 합격이라....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는 부처장님의 공유가 있었다.


크게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재작년과 작년 각각 100% 충원율과 단 한 명의 이탈만 이끌어낸, 베테랑 부처장님 입장에서는 두 명의 이탈이 꽤 아팠던 모양이다. 또 아홉 시까지 추가 이탈이 발생할 여지도 있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우선 보고를 드려야 했기에 부총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총장님 역시 오늘 29일 밤이 정말 중요한 날임을 모르실리 없었다. 그런데 받자마자 "최처장, 어디야, 밥 먹었어?" 물으셨다.


"아, 저 처장실입니다."


"응? 아까 비서가 갔었는데, 없다고 하던데? 일단 빨리 **김밥으로 와. 뭐 시켜? 여기 김치볶음밥 좋아." 뇌는 딴생각 중이었고, 눈과 귀는 쇼츠에 박고 있느라 비서의 노크 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 네, 일단 내려갈게요." 바로 처장실을 나와 **김밥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부총장님, 기획처장님, 교무처장님, 총무처장님이 김치찌개, 만둣국, 김치볶음밥 등을 시켜 드시고 계셨다. 곧 나를 위한 김치볶음밥이 준비되었다. 부총장님 포함 처장님들 모두, 2월 29일의 의미를 모르실리 없었지만, 굳이 아무도 묻지 않으셨다. 김치볶음밥에 수저를 파묻고 한 술을 크게 떠 입에 가져가려다가 다시 놓고, 먼저 말을 꺼냈다.


"59분 지나면서 두 명이 빠져나갔네요." 일단 무척 아쉬운 척을 해야 했기에 힘을 잔뜩 빼고 말했다. 모두 드시던 수저를 놓으시고 본격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실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난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중 한 명은 재수할 테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불가능한 상황인 거 같고요, 한 명은 우리 대학과 ○○대학에 동시에 합격해서 이탈한 거라네요." ○○대학은 우리 대학보다 아주 근소하게 우위에 있다고 인식되는 대학이었다. 사실 두 명 이탈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부총장님과 처장님들은 요즘같은 시기에 신입생 등록률 99.8%는 매우 선방한 거라며 다독여주셨다. 그래도 난 김치볶음밥의 맛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와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까지 한 후, 본관으로 천천히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학교 정문을 지날 때 즈음 내 스마트워치 이메일 알림 메시지가 떴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저녁 8시가 훌쩍 지난 시각 이탈자가 더 발생한 것인가, 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환불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경험이 없으시니 입학처장실에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직원이 전원 대기 중인 입학처에 하셨으면 통화가 안 될 리가 없었다. 물론 우리는 농담처럼 29일 마지막 날 전화를 받지 말자라고 하지만 실제 그러면 큰 일 난다.


세 명 이탈이면 내 심리적 마지노선도 무너지는 것이기에 이걸 지금 걷고 있는 부총장님과 처장님들께 공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난 무리에서 일부러 뒤처져 걸으며, 사무실에서 사투 중인 부처장님께 전화를 했다.


"강○○, 이탈한 학생 둘 중 하나인가요? 갑자기 입학 포기하겠다고 제 이메일로 연락이 왔네요." 내가 상황을 공유하자, 부처장님이 확인해 보겠노라고 했다. 본관에 도착할 즈음, 전화가 왔다. 강○○은 원래 포기한다고 한 학생이 맞고, 나머지 한 명이 등록해서, 지금 현재 이탈자는 한 명뿐이라고.


이제 30분만 잘 버티면, 작년 정도는 되는 상황이니까, 희망이 생긴 상황인데 오히려 가슴은 더 요동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수험생 한 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제발 이대로 환불 불가 시간이 어서 어서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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