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이 오피스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던 월요일 아침, 별안간 목요일부터 락다운이 시작된다는 사내 메일이 왔습니다. 식료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은 제한적으로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운영되며 레스토랑과 카페를 포함한 그 외의 가게들은 모두 영업이 중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모두 중지되고 대중 교통은 물론 개인 교통 또한 제한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려 40일이나 지난 일인데,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락다운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뉴스만 틀면 자극적인 보도가 넘쳐흐르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촘촘하게 메꿔진 화장터에 불길이 타오르고 재가 마르지 않는 장면, 곰팡이 균으로 눈 두덩이가 검게 변해가는 환자들, 산소를 얻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사람들, 장총을 들고 순찰을 도는 군경찰들.
백신을 맞으러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분들을 화장하는 파슈파티 사원을 지나쳤습니다. 방역을 위해 개인 보호 장비를 겹겹이 착용한 직원들이 산더미같은 장작을 나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상실과 고통 이외에도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만연한 빈곤으로 말미암은 문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합니다.
네팔은 전 인구의 66%가 농업에 종사하는 나라입니다. 운송을 위한 연료나 농사를 위해 필요한 화학 비료의 대부분은 인도에서 들어오는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코로나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된 지금, 내년의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씨앗, 농기구, 비료의 유통부터 서서히 막히기 시작합니다. 때문에 이 역병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수개월 후나 내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네팔에서 5세 이하 어린이의 53%, 6개월에서 23개월 사이의 아이들의 69%는 빈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결핍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 또한 이러한 영양 불균형 상태에 일조합니다. 영양 불균형 상태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코로나 감염에 취약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또한, 소규모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은 강화된 락다운 조치 하에서 마을에서 내려와 시장에서 제때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줄어든 소득은 이들의 구매력에도 영향을 미쳐 더더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저에게는 아마도 좋아하는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되거나,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불편한 정도가 누군가에게는 당장에 밥을 굶어야 하는 절박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잠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이들은 올해 학교에 한달도 채 나가지 못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지만 수업을 듣기 위한 기기 자체가 없거나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는 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훨씬 많을겁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교육 공백과 격차가 수년 뒤 어떠한 영향으로 다가올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 힘든 계절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가까운 곳에서 함께 견딜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언젠가 이 순간을 돌아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새벽부터 5월에 걸맞지 않는 찬바람과 비가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계절성 폭우의 영향으로 내일까지 쭉 비가 내린다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며 바람을 가르니 뼈가 시릴 정도로 춥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초가웅 마을 주민 300명이 한 달 동안 먹을 식량을 사러 가는 날입니다. 사실 넉넉하게 2톤어치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사회 초년생의 얄팍한 통장이 허락해주지를 않았습니다. 쌀을 1톤치 사보는 건 처음이라 어느 정도 규모일지 가늠이 잘 안됩니다. 식량 지원을 업으로 하는 단체에서 일한다고는 하나 입사 1년도 안된 햇병아리다보니 아직 배급 현장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받아본 쌀 1톤은 제 생각보다 훨씬 부피가 컸습니다. 설탕과 소금 각각 1 킬로그램, 식용유 1리터, 렌틸 콩 1킬로그램, 콩고기 1팩을 마저 넣고나니 이걸 어떻게 다 옮기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비 때문에 거의 무너져내리다시피 한 산길을 뚫고 트럭을 몰고 싶어하는 기사는 한 명도 없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예약해 둔 트럭 한 대가 급하게 취소되고 새로운 운전 기사를 구하는데 꼬박 세시간이 걸렸습니다. 돌고돌아 어렵사리 마을에 도착하니 몇몇 주민분들은 이미 옹기종기 모여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준비해 온 마스크를 나눠드리고 있자니 어머님들이 따뜻한 차를 내밉니다. 배급을 마치고 마시겠다고 해도 추우니까 몸 식는다며 당장에 마시라고 하십니다. 달달한 찌아를 홀짝이고 있자니 아이가 다가와 작은 민트 사탕을 하나를 손에 꼭 쥐어줍니다. 이 작은 사탕이 뭐라고, 발끝까지 싹 젖어 오들오들 떨며 고생하던 시간들이 그세 옅어지며 하라면 한 번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 쌀들이 아이들 입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슬며시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이 렌틸 콩은 아마도 다진 마늘과 양파, 강황 가루와 각종 향신료와 어우러져 담백한 맛이 일품인 네팔식 백반 달밧이 될겁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불평을 늘어놓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식탁을 채울 수 있다니 저도 참 괜찮은 직업을 고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