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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Mar 11. 2023

허울 좋은 유엔 직원의 밥벌이

유엔에 입사한지 어제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사무총장부터 인턴까지 계약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조직인만큼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단기 계약직이지만 나름대로 소소한 보람을 느끼며 차근차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인도적 지원 분야는 코로나로 인해 일이 배로 늘어난 업종 중에 하나입니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난 만큼 더 바쁘게 움직여야하는데 지금껏 누구도 겪어본적 없는 상황이다보니 그만큼 시행 착오도 많습니다. 쏟아지는 업무를 하나씩 쳐내고 눈물나게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다시 새로운 일들이 쏟아집니다. 



업무 시간은 주말이나 휴가없이 100일씩 연근을 해야하는 피스보트 시절보다야 당연히 훨씬 짧지만 동료들과 가벼운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작은 모니터 너머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한 것도 같습니다. 또 요즘 저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슬슬 정해진 계약 기간이 끝나가면서 재취업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업계에서는 프로젝트 기반으로 사람을 찾는 경우가 굉장히 흔한데 취업 시장에 막 진입한 저 같은 사회초년생은 2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따내는 것조차 상당히 어렵기에 거의 매년 새로운 포지션과 프로젝트를 찾아야합니다. 



당연히 매번 서류와 면접 전형을 다시금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경쟁 그 자체를 과정으로서 즐기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뎌내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계약을 따낼 때마다 그때마다 근무지가 바뀌는 불안정성은 덤입니다. 사실 투덜투덜대면서 이런 고민을 자주 털어놓는 편인데 지금껏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가장 인상적인 답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피스보트에서 일하던 시절 조금 이르게 일을 마치고 갑판에 나와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누고 있던 때 였습니다. 당장 내년 이맘때는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감도 안온다는 투정을 들은 친구가 잔잔하게 들리는 파도소리 사이로 씨익 웃으며 한 마디를 건냅니다.


'그러니까 재밌는거잖아. 

우리 앞에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도 하나의 묘미겠지요. 일단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니 가능한 즐겁게 받아드리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 일을 통해 수입을 얻고 밥을 먹고 사는 전지적 근로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계약이 없는 공백 기간이 길어지는 건 두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업계 사정을 몰랐던 것도 아니니 저도 먹고 살기 위해 지금까지 나름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통번역, 영상 촬영 및 편집, 디자인, 사업 모니터링, 리서치 등등 얇고 넓게 잡기술을 섭렵한 덕분에 계약이 비어있는 공백 기간에도 어찌저찌 밥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 시대에는 N잡이 대세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답시고 주말도 없이 빽빽하게 일을 받아놓고 빡세게 외주를 돌리다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계를 보면 가끔 쎄게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나는 그냥 일반 초밥과 특초밥 중에 고민없이 특초밥을 주문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 뿐인데. 또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싶은데. 아니 인도적 지원 일을 하면서 부자가 될 수는 없는걸까요? 그러면 안되는걸까요? 저는 큰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고, 강아지를 2마리는 키우고 싶고, 매일 매일 연어 특초밥을 시켜먹고 싶습니다. 



가끔 제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선한 일을 한다며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칭찬받을만큼 딱히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당한 사회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가능한 선택지 안에서 저 개인에게도 가장 괜찮은 옵션을 고른 것일 뿐, 결국 노동의 대가로 보수를 받는 한 명의 근로자라는 것에 변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지속가능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가는 요즘입니다. 


사회 생활이 다 그렇지 뭐


오늘은 제가 네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금 자세히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인도적 지원하면 직접 필드에 나가 활동하는 현장직만 떠올렸었지 사실 안 보이는 곳에서 끊임없는 삽질과 페이퍼 워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자연 재해나 분쟁을 비롯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식량을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그 중에서 저는 평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데,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물자가 전달되었는지, 전달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들이 배제되지는 않았는지, 유엔이 철수하고 나서도 수혜국 정부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정책 지원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기타 등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프로젝트의 개선을 위해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어찌보면 동료들이 필드에 나가 뼈 빠지게 고생하고 돌아온 다음에 이 부분은 이런 부분이 부족하니 이렇게 고쳐야 한다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엑셀 파일 안에 빼곡하게 적힌 데이터와 수치  사이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고충과 변수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일이 요상하게 꼬여 욕은 욕대로 오지게 먹고 업무 덤탱이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결국 오늘도 야근을 해야할 것 같지만 그게 또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사회 생활이 다 그렇지 뭐 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이 일을 못 놓는 이유는 아마도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삽질이 한없이 사소하고 작지만 그럼에도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쉴 수는 없나요?


정신없이 몰아치던 프로젝트도 거진 마무리되고 오랜만에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잘 쉬었다고 할 수 있는걸까요? 지금껏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서 최대의 효율을 낼 궁리만 해왔지 정작 제대로 된 휴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꼴딱꼴딱 밤을 새면서 공부해도 멀쩡하던 날은 이미 옛날옛적에 지나갔고, 조금만 무리를 해도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픈걸 보니 쉬긴 쉬어야겠는데 그저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자니 모처럼의 휴일이 아깝기만 합니다. 일년에 30일 가량 주어지는 유급 휴가도 어떻게 써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트레킹도 다니고 하던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지게 된 장기 휴가가 못내 어색합니다. 



쉬는 것도 계획을 세워서 쉬고 계획이 틀어지면 영 불안해하는 지랄 맞은 성격 어디 못버리고 결국 3주간의 휴가는 내내 밀린 대학원 수업을 듣고 시험을 준비하는데 써버렸습니다.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완연하게 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요. 이런 어정쩡함과 애매함이 오히려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정한 계획과 목표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날을 통째로 망친 것 같은,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불완전하게 소화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마 저는 언제나 현재를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내 앞에 놓인 작은 책상과 기숙사 안에서 이 하루만이 오직 내 삶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리기 어려웠던 것일지도요. 최선을 다해 지금 아름답고,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 삶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모든 명제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졸업 논문 주제도 정해진 상태여야하고, 대학원 졸업 이후 취업할 직장에도 합격해야 함은 물론 살이 너무 찌지 않도록 짬짬이 운동과 식단도 병행해야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그러진 상황은 행복한 오늘로 정의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행복이라는 것은 자로 칼같이 재서 만든 조각상처럼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상향이 아닌걸지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 앞에 주어진 작은 행복을 하나하나 주워 담으며 그 기쁨을 맘껏 누리고 영유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기도 합니다. 



완전함을 향한 제 고질적인 집착은 매일매일의 계획으로 이어지곤 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A4 용지를 3번 고이 접어 만든 8칸 안에 일주일 계획을 적고 공부 시간을 적어 넣곤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공부 시간이 업무 시간과 기타 자기 계발로 바뀌었을 뿐 이 아날로그적인 습관을 어찌저찌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백 개의 계획을 세우고 나름의 성취와 자잘한 실패를 반복한 지난 10년 동안 배운 유일한 교훈이 있다면 인생은 절대 내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합니다.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올해가 지나간 무렵의 나는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상상하며 목표를 정하고 차근차근 노력해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뜻대로 되는 일도, 전혀 그렇지 않은 일도 있지만 행복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그 행복을 해석하는 것도 나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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