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는 어려운 것이 맞는가. 왜 어려운 것인가.
[요약] 바쁘신데 산업안전보건 증진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1) 산업안전 신고는 기관이나 특정인의 '공익침해행위'에 대한 '공익신고'에 해당합니다. 공익신고는 내부자가 할 수 있는 내부신고와,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외부 신고가 있습니다.
2) 공익신고는 신고하려는 기관의 사이트에 접속하셔서 '공익신고' 메뉴를 통해 절차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신고 시 '피신고자' 이름과 부서가 필요합니다. 외부 신고를 통해 기관을 신고하려면 어떻게 기재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4) 행안부에서 운영하는 안전신문고라는 앱/웹이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쉽게 신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신고자 보호법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아, 보호나 포상 대상은 아닙니다.
웹 사이트 : https://www.safetyreport.go.kr/#main
지난 9월 8일,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이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관련 기관에 신고하려 했다. 그러나, 산업안전 관련 신고 접수처를 찾다가 체력이 다해 포기 직전에 이르렀다.
https://brunch.co.kr/@ecleesia/33
먼저 떠오른 고용노동부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사이트에서 산업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온라인 신고 절차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 화나기도 했고, 이 메뉴 저 메뉴 찾다 보니 힘이 빠지기도 했다.
*새벽 시간이라 전화신고는 불가능하였다.
(야근 후 지친 상태이긴 했지만) 연구와 조사를 업으로 하는 나도 이렇게 찾기 어려우면, 일반인들에게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접근성(accessibility)'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산업안전 신고’ 에만 꽂혀서 확증 편향을 다소 했던 것 같다. 조금 뒤에서 바라보니 ‘공익신고’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그리고 공정한 경쟁' 등, 공익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파급력이 커지자 공익신고의 개념과 효과가 분명해졌다.
단연코 가장 큰 효과는 불특정 다수를 감시자로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 비용으로 공익을 보호하고 사회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익신고행위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가 공감하였다. 이에 2001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 (이하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정, 2015년 공익신고자 보호 범위 확대, 보상금 제도 도입, 2017년 보상제도 안내 의무화, 2018년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 강화 등의 과정을 거치며, 공익신고제도는 '신고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공익신고제도를 다룬 정책연구들을 살펴보면, 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1)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2)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포상(보상)금 제도, 3) 공익신고 체계 및 접근성 개선이 제시된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공익신고자 보호와 포상금 제도에 대한 개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보호도 해주고 포상금도 주니 공익신고 수는 증가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전문신고자(일명 파파라치)들의 신고 남용으로 인해 허수가 한 때 있었지만, 양질의 신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권익위 자체의 평가다.
하지만, 보상금 지급 제도가 완전히 수정되기 전인 2015년의 공익신고 건수(5,771건)가 5년이 지난 2020년의 공익신고 건수(5,546건) 보다 많다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상금이라는 동기부여가 없이 공익신고를 하기에는 어떤 어려움이나 장벽이 있는 것이 아닐까.
국내 공익신고의 사례가 다양해지면서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법적 보호하에 있는 공익신고 대상 법률이 284개로 늘어났지만, 일반 국민들이 이를 쉽게 알 방법이 없고 '민간기업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고발행위'와 같은 주요한 내부신고 대상은 법률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익침해신고를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현행 법을 살펴보면, 공익신고 접수기관은 공익침해가 발생한 기관, 단체, 기업의 대표와 조사권한을 가진 행정∙감독기관, 수사기관, 국회의원, 권익위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와 같은 일반 시민(외부인)들이 신고를 하여 보호까지 받으려면, 행정∙감독기관이 어디인지 찾아보거나 국회의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권익위에 신고를 접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신고를 결심한 당일, 브런치에 글을 기재해 놓고 잠이 안 와 결국에는 서울교통공사 사이트를 다시 뒤져보았다. '공익신고'라는 개념을 헤집고 나니 서울교통공사 사이트 메뉴바 안에 '공익신고'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멍청).
일종 규모 이상의 다른 공공기관도 몇개 들어가 보니, 보통 ‘공익신고’ 메뉴가 있었고 절차가 나와있었다. 만약, 신고하려는 기관에 해당 안내가 없으면, 권익위로 넘어가야 한다.
신고 전, 일단 내가 신고하려는 내용이 법률이 정한 공익신고에 해당하는가를 다시 확인했다. 이것을 아려면, 공익신고자 보호법 별칙을 봐야한다.
내가 발견한 '공익침해' 현장은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률(공익신고자 보호법 제2조 제1호 관련)상 194번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항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확인했다. 비슷한 신고 사례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 본인인증을 하고 신고자 명에 내 이름과 번호를 당당히 넣었다. 그리고 피신고자의 이름과 연락처, 부서를 적으라길래 커서를 당당히 옮겼다. 그리고 5초간 멍하게 있었다. 귄익위에서의 공익신고도 마찬가지였다.
피신고자 이름을 알아야 신고할 수 있나? 모든 공익신고가 그러한가? 나는 공익신고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했나? 그냥 성명에 '모름'을 적고 부서는 안전관리과로 써서 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잠깐 누웠는데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처음 질문인 '일반 시민으로서, 산업안전 신고를 하여 산업안전보건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다.
별 기대는 없었지만, 먼저 언론에 신고해 놓기로 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콘텐츠로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던 경향신문이 먼저 떠올랐다.
경향신문은 일반인 제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웹앱의 형식으로 제보란을 만들어 놓았다. UX차원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쉽게 제보할 수 있었다. 다만, 이에 대한 피드백이 필수는 아니라서 나의 제보에 대해 어떠한 조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러 번의 경험을 회고한 결과, 이 제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역시, 피드백이 오늘까지도 없다. 그들의 시간은 정말 돈이니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난 신고자 보호도 포상금이 필요 없고 그냥 내가 본 상황과 불편함을 담당자가 알고, 다음엔 안 그러면 되는 건데. 그냥 현황을 알리고 싶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신고 방법'이 필요했다.
평소 리서칭 작업 시 기본인 구글링을 먼저 하지 않은 것이 일종의 패착이었다(멍청멍청). 구글에 '산업안전 신고'라는 키워드를 넣고 서칭 하자 '안전신문고'가 가장 상단에 나타났다.
안전신문고는 행안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로,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7가지 주요 대상과 기타 항목을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는 툴을 만들어 두었다.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미입력시 처리기관의 신고이력 관리, 진행사항 통보, 처리 등 업무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대상이 아니고 신고 내용의 효력이 '공익신고' 보다는 약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료된다.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신고를 완료하고 나니 곧바로 접수 번호와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접수한 민원은 안전신문고를 통해 서울특별시 금천구로 갔다가, 결국 처음에 신고를 접수하려 했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옮겨졌다가 다음날 고용노동부에 이관되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공허함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이럴 거면 애초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에 공익신고까지는 아니어도, 간편하게 제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놓았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5분 뒤, 2014년 공익신고 접수 현황 데이터를 보면서 '와, 나같이 간편하게만 신고하려는 사람만 있으면 행정소요가 커지긴 하겠구나'라는 고찰도 하게 됐다.
10분 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다시 보며, '행정소요가 두려워 담당인력 늘리는 것을 고민한다? 그건 말이 안 되지.' 하며 확실하지 않은 추측에 대해 억울해하기 시작했다.
20분 뒤, '아니 근데 나 정도면 꽤 노력해서 신고한 것 아닌가?!!!!!'
그리고, 산업안전에 대한 경각심. '공익신고'에 대한 개념과 현황, 절차를 공부한 시간. 서울교통공사 사이트에서 '공익신고' 버튼을 찾기까지의 여정. 피신고자의 이름을 몰라 느낀 당혹감. 안전신문고를 알기 위한 구글링. 기타 등등.
적어도 이러한 노력과 배경이 있어야, 내가 발견한 부주의를 담당자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지혜롭지 못했던 것인가.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아래 톡을 받고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산업안전에 경각심을 가지고 공익을 지키는 불특정 다수가 되고 싶으신 분들은, 안전신문고 앱을 까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1. 조태준 외 3명(2014), 기업 및 국민의 공익신고 인식제고에 관한 연구, 국민권익위원회 공익심사정책과
2. [제구실 못하는 공익신고제] 까다로운 '제보자 요건'··· 소신발언 막는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Z9031WT07
3. 2020 국민권익백서 평가와 통계, 국민권익위원회 https://ncp.clean.go.kr/ncp/stat/stStatsP006.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