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coln Memorial Shrine
2015년 1월 3일
로버트 왓천(Robert Watchorn)은 11세 때부터 탄광에서 일해야 했던 잉글랜드 알프레튼(Alfreton)의 노동계급으로 1858년에 태어났다. 18시간의 교대 근무로 하루 27센트를 벌던 그는 1880년 미국으로 이주해 펜실베이니아 탄광에서 일했다.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을 열심히 정진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롤모델로 삼았다.
그는 광부들을 위한 야학을 조직하고 노동운동에 참여하여 광산노조(United Mine Workers Union)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 로버트 패티슨(Robert Pattison)이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맡고 있던 1891년에는 공장및광산감독관(Inspector of Factories and Mines)이 되어 아동 노동을 종식시키도 했다. 같은 해 오하이오에서 앨마 제시카 심슨(Alma Jessica Simpson)과 결혼한 왓천은 로버트 주니어(Robert Jr.)와 에머리 에워트(Emory Ewart) 두 아들을 두었다.
패티슨 주지사의 추천으로 1905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뉴욕시 엘리스섬(Ellis Island)의 이민국장으로 임명된 그는 이민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했으나 1909년 대통령이 된 태프트가 이런 태도를 문제 삼아 그를 해고했다. 왓천은 유니온 오일(Union Oil Company)의 재무 책임을 맡았다가 왓천 석유가스회사(Watchorn Oil and Gas Company)를 세워 재력이 생기자 링컨과 관련된 책, 공예품, 원고들을 모았고, 캘리포니아 레드랜즈(Redlands)에 별장을 짓고, 교회에 기부했으며, 레드랜즈대학교(University of Redlands)에 왓천홀을 지었다. 고향 알프레튼에는 주택을 세우고 공원을 만들었다.
왓천의 아들 로버트 주니어는 생후 13개월 만에 죽었고, 에머리 에워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전투 중 비상 탈출 후 얻은 패혈증으로 25세가 되던 1925년 세상을 떠났다. 왓천은 레드랜즈에 링컨 기념관을 세워 아들을 추모하기로 했고, 1932년 팔각 기념관을 만들었다. 1937년에는 분수대와 링컨 연설문의 인용구를 새긴 석회암 벽이 추가되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그리고 정의로운 신 아래에서는 그 자유를 오래 유지할 수도 없다." 그리고 1998년에는 백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아 팔각 기념관 양쪽에 날개를 달았다.
링컨 기념관 앞의 A. K. 스마일리 공공도서관(A. K. Smiley Public Library)은 자선가인 앨버트 스마일리(Albert K. Smiley)가 1898년에 지어 기증한 것으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가 기증한 캘리포니아 원주민 및 지역 역사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976년 국가 사적지로, 1990년 캘리포니아 역사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