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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Jan 05. 2022

365

걸으면 뭐가 달라지나 - in jeju

  제주에 올 때마다 날씨가 맑기를 바라지만 혼자서 오는 제주는 늘 흐림이다. 날씨 요정의 이동에 맞춰 무거운 구름이 모여들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섬은 빛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깊은 색을 막 드러내는 중이었다. 오늘만은 맑음을 기대하지 않고 흐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자고 다짐한다.


365.

한라대와 제주대 아라캠퍼스를 이어주는 버스가 도착했다. 100미터 전방에서 다가오는 버스를 보며 짧은 순간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버스에 올랐다. 제주에서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크루아상 가게를 건너뛰고 종점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잠시 버스 노선에 대해 생각하다 오래전 티브이에서 본 폐교가 된 제주의 어느 대학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는 쓸쓸하고 공허했다. 공허는 채웠다가 비워진 공간이다. 채워지지 않은 것들은 느낄 수 없는 감각인 셈이다. 나는 우리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공허가 너무나 이상적이며 스스로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 중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세상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공허의 공간에 딱 맞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중에 나 같은 사람들은 그 공허의 공간을 마음 여기저기에 마구 만들어 보는 대상마다 '저건 내 공허에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공허해한다.


야옹 1.

식당에 초입 샌드위치 가게에서 용케 비를 피하며 앉아있던 아이는 다가가자 곧장 나에게 돌진해서 과거에 진 빚을 갚으란다. '지금 가진 게 없어, 미안해' 하며 돌아섰지만, 밥 먹는 내내 생각의 한 구석에서 야옹 소리가 난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기어이 빚을 갚으러 갔다. 마음이 놓였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고양이들의 피리 부는 아저씨였을까?



281.

제주 산간을 지나 남북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성판악 부근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제주에 온 후 두 번째로 진심 어린 웃음을 지었다. 버스의 창에 두 손을 붙이고 얼굴을 최대한 가까이 밀착해서 한라산의 설경을 눈에 담는다. 차창에는 성에가 끼고 앞이 흐려진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의 온도차에 의해 순간순간 자꾸만 흐려진다. 기쁨은 지속되지 않고 나는 수고스럽지만 아름다움을 쫒기 위해 성에를 닦아낸다. 문득 이 귀찮은 수고로움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껴안는다면 내 인생이 더 평온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중섭.

그는 간결한 선과 사심 없는 천진함으로 거기에 있었다.



야옹 2.

' 너 여기서 왜 비 맞고 있어'


'아 여기가 네 집이구나, 나도 여기서 잠시 살게 됐어. 내일 또 보자'


오늘의 걸음 +14203

달라진 점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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