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마음 in Jeju
제주는 생각보다 흐린 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타지에서 이주한 사람 중 일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은 이곳의 생활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볕을 보지 못하면 쉬이 우울해지는 그런 종류의 사람 말이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은 비와 눈이 내렸고 둘째 날은 매우 맑았으며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구름은 가볍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가 될 만큼 무겁지도 않아 보인다. 나는 이런 종류의 구름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쓸쓸한 날씨가 싫다.
집에서 오래 나가지 못하던 시절에 나는, 비가 오는 것이 반가웠다. 그 반가움의 기저엔 안심에서 비롯한 관조가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네. 비 오는 날은 억지로 집을 나서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지. 다행이다.'
비가 오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며,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날씨와 내일이면 다시 만날 따스한 햇살을 떠올리며 억지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도 괜찮은 그날이 나는 참 좋았다. 그런 날들의 기억이 하나 둘 모여서 비가 오는 날은 쌓아뒀던 뭔가가 해결되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두터운 구름 속 언뜻언뜻 비치는 햇살을 올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 자꾸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의 속도보다 내 걸음의 속도가 빨랐다. 내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서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느려진 걸음은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바쁘다. 이렇게 느려지다가 언젠가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면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길지 않게 바꿔가며 나는 다행히 적절한 시간에 비석거리에 도착했다. 이제 곧 101번 버스가 올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장소와 생각들을 마주하게 될까.
오늘의 걸음 +14603
달라진 점
날씨에 따라 기분이 요동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