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꼬마로의 과거 회상
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연말이 되면 잔치가 있었다. 이른바 재롱잔치. 요즘에도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7살 겨울로 돌아가 그때 재롱잔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라떼'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훕.
때는 1991년 겨울, 5일 장이 열리는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 유치원에서는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친구들은 엄마의 손길에 머리와 얼굴 분장을 어느 정도 마친 상태에서 유치원으로 속속 들어왔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이는 아마 미용실을 하는 집 아이였을 것이다. 머리에 꽂는 하얀 인조 꽃-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을 원 없이 꽂았고, 올림머리의 모든 기술이 총동원되었으며, 스프레이 향기가 짙게 스며들어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머리에 생화 장미와 안개꽃을 장식한 친구였다. 유난히 흰 피부를 가졌던 그 친구가 등장했을 때 나는 한 동안 그 아이를 바라봤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집이 정육점을 했고, 언제 가는 그 소녀의 아버지가 운전하는 스쿠터 뒤에 탔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엄마의 마음과 선생님들의 분주함 속에서 관객과 출연진 스텝이 모두 준비가 되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우리는 연습했던 대로 음악에 맞춰 공연을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는 엄마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거나 크게 웃어 보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갑자기 몸이 굳어져 울음을 터트리고 무대에서 선생님 손에 끌려 내려가는 친구도 있었다. 또 그중에 이 공연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생겨난 친구도 있었다. 바로 건방진 꼬마, 나 자신이었다.
분명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안무를 연습하고 다른 친구들의 연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웠다. 특히 가사에 '무적의 향토예비군'이 들어가는 남자아이들의 공연이 흥미로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총을 들고 추게 할 군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잔치 며칠 전 유치원에 무대가 세워지고 거기 설 생각을 할 때는 약간 두근거림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무대 위에 섰을 때, 내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 앞에 미소를 보이며 서야 했을 때, 나는 매우 불쾌했다. 나는 웃고 싶지 않았고 재롱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공연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나는 더욱 고개를 숙이고 공연에만 집중했다. 나중에 어른들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부끄러움이라 불렀다.
요즘 들어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억지웃음을 지으며 타인 앞에 서야 했던 어린 꼬마'가 지금도 어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무대에서 웃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방지고 귀여운 꼬마가 단지 부끄럼 많은 아이로 기억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래와 조금 다른 동심도 있다는 것을 나는 스스로도 늦게 알게 되었지만, 또 다른 건방진 꼬마의 곁에는 그 다름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