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모든 인간 생애의 진정한 목적이다. The true object of all human life is play.
한국인들이 대안이란 말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고풍스럽다. 토론이나 강연에서 ‘대안은 있는가’, ‘대안이 뭔가’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묻고 답하는 모습은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같은 책사가 장수에게 전략과 비책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안이란 출중한 한 사람이 짜내는 것이 아니다.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면 누구나 대안을 생산하고 실천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는 한 학급의 학생들을 키순서 대로 번호 매기는 키번호가 있다. 그나마 학생 이름의 가나다 순이나 생일 순으로 매기는 번호는 행정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키번호는 한 학급 단위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고, 학교의 학생 전체가 운동장에 정렬해 섰을 때 필요하다. 한 학교의 학생들 전체가 운동장에서 어떤 행사를 할 때 각 반마다 키순서 대로 서야 할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연단에 서서 내려보는 분들의 미학적 안목에는 반듯한 것만이 스펙타클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21세기 세계화 창의경제 시대임에도 한국의 초등학교는 과거 독재시대의 동원체제와 전시(展示)체제의 성격을 유지한다.
일단 키번호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단에 선 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주로 애국조회나 운동회 같은 행사에서 쓰이게 된다. 운동회에서 학생들의 키번호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이 행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초등학교에서 대략 한 달 이상이나 수업을 단축하거나하는 편법으로 가을 운동회를 준비한다. 학력신장을 숭상하는 학교에서 무려 한 달 이상의 시간을 전교적인 차원에서 매달리는 운동회 준비라는 게 대부분은 매스게임이나 부채춤 류의 집체활동이다. 매스게임이나 부채춤이라는 것들은 준비하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인 배려나 안배에서 생겨났다기 보다는 스펙타클을 위한 것이고 특히나 연단에서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21세기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데 이런 구시대적인 습속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없어지는 편이 좋다. 그 대신에 운동회 준비하기 위해 수업을 단축하는 풍습은 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길이길이 남기는 것이 마땅하다. 운동회의 본질은 스펙터클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바꾸는 작업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자유로운 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회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요즘은 바둑 같은 게임도 두뇌스포츠라고 하니까 교육적 성과가 인정되는 고누나 블로커스 등의 보드게임도 운동회 종목에 포함시키면 된다.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대안 1순위를 자유놀이운동회로 삼은 이유는 ‘놀이의 삼간’을 위해 사회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을 그대로 이용하며, 시간 역시 학교의 수업 시간을 이용한다. 학급의 담임 교사가 놀이 선배로 역할을 맡게 된다. 필요한 건 단 하나 교육청이나 교과부에서 자유놀이운동회를 위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초등학교에 배부한 다음 실시 여부와 개선 사항을 조사하면 된다. 관료적인 루트를 통해 행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보든 가장 현실적이고 손쉬운 대안이다.
오래 전부터 반별 대항을 위해 교사의 통제 속에 이루어지는 운동회가 아닌 전래놀이를 위주로 하여 자유롭고 신명나는 분위기의 운동회를 설계해온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례를 모으고 실행한 분들의 조언을 구해 <자유놀이운동회 매뉴얼>을 펴낼 만 하다. 지금 이대로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초등학생들은 6년간 자신의 발달 단계와 균형점에 맞는 다양한 놀이를 누릴 수 있다. 더불어 현재의 놀이생태계에 다른 가능성의 싹이 돋아 날 것이다.
놀이이론가의 입장에서 보아 선진국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근대화가 일찍 이루어진 나라들은 어린이들의 전통적인 놀이생태계가 일찍부터 교란되어 아동들의 놀이생태계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이리더라는 직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나라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영국 등 북유럽의 강소국이 대다수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놀이터에 플레이리더를 고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공익근무요원을 놀이터에 파견 근무하는 방안도 생각할 거리는 되겠지만 정규직이 아닌 이상 제대로 자신의 일을 파악하고 해나가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럼 정규직 플레이리더를 당장 고용해서 놀이터에서 근무하도록 하면 어떨까? 놀이생태계의 시간축을 교란시킨 수험산업과 외래종놀이의 문제가 현재 그대로라면 분명 플레이리더들은 혼자 놀이터를 지키고 있기 십상이다. 플레이리더는 분명 놀이터에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현재로서는 학교 말고는 별다른 장소가 없는 상황이니 학교로 정규직 플레이리더가 근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 학교가 아니어도 직업으로서의 플레이리더가 있어야 놀이 운동의 주체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대안도 가능성도 계속 생성될 수 있다.
우·불우(遇·不遇)를 빨리 발음하면 우부루가 된다. 우(遇)는 ‘만나다·뜻이 합치하다·때를 만나다’라는 뜻을 가진다. 불우는 흔히 쓰이는 불우이웃이나 불우청소년이라는 표현의 그 불우이다. 우부루는 여러 가지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우불우 캠프에서 함께 할 친구들은 보육시설 청소년과 탈북 청소년, 조손 가정, 다문화 청소년, 소년소녀 가장 등의 흔히 불우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방학마다 모여서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일차적인 내용은 합동 놀이연수캠프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캠프활동에 적극적인 친구들에게는 계속적인 연수와 훈련을 제공한다. 내용은 음악, 미술, 연극, 오페라, 전래놀이, 놀잇감 만들기, 외국의 놀이, 풍물 등등 무궁무진하다. 이 캠프는 단지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체험학습의 기회를 시혜적으로 주는 의미가 아니다. 플레이리더의 소질 있는 우수한 학생부터 국가 인정 플레이리더로 임용하면 된다.
임용 후에는 보육시설에 입주하여 동생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거나 초등학교에서 놀이체육 교사 겸 방과후 놀이클럽 지도자로 활동하는 등 플레이리더로써 자신의 자리를 찾아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주체를 세울 수 있는 점도 중요하지만, 잘 놀기만 해도 그것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젊은 세대들에게 열어준다면 그것만으로 큰 의미와 지향점이 될 터이다.
전래놀이는 놀이의 고전이다. 고전은 그 생명력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과거 우리 민족이 농경민족이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놀이는 농경민족의 생활감정이 담겨 있다. 생활감정이란 일종의 문화적 고리이다. 어떤 놀이든 이 고리에 걸리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전자매체 놀이라고 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다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대의 도시생활에 익숙하고 첨단기기에 둘러싸여 자라난 아이들의 생활감정에 맞는 무언가가 있는 전래놀이도 분명 존재한다. 어떤 놀이들이 요즘 아이들의 생활감정에도 맞는지 전문가들이 추려낸 다음에 이들 놀이를 스포츠화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듯 하다.
스포츠화하기 쉬운 전래놀이로 예를 들면 진놀이나 오징어놀이, 왔다리갔다리 등이 있다. 교육청에서 학교대항 지역별 대회를 개최한다든가 하면 요즘 같이 상장에 목마르고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내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세태에 분명 적지 않은 반향이 있을 듯 하다. 현재 기업을 경영하는 세대들은 그나마 아동기에 놀이생태계의 다형성을 마음껏 누리면서 성장했다. 이들이 대회에 협찬을 하거나 대회를 주최할 수 있지 않을까?
캠퍼스는 라틴어로 들판이나 놀이터를 의미한다. 초등학교에서 놀이터나 축구골대가 공부에 방해된다는 판단을 누군가가 내리고 차츰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저 학교 관리자들의 판단력이란 것이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이미 수도권 및 대도시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학교밖’에서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놀이생태계의 최적화 가능성을 모든 측면에서 탐색해야 한다. 일단 초등학교를 놀이터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민사회에서 기울여야 한다. 예컨데 놀토나 방과후 보육교실에 놀이 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전 준비로 성인의 개입이 없이도 아이들끼리 향유할 수 있으며 아이들이 아이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놀이를 최우선으로 우리 전래놀이와 외국의 놀이 서적을 참고하여 선정한다. 연중 계절에 따른 실내/실외 상황, 그리고 1/2학년, 3/4학 년, 5/6학년 등 발달 단계와 남녀의 성별 등을 고려해서 하나의 발달단계 당 연간 40종 정도로 총 3개 발달단계를 기준으로 120종 이상의 놀이를 선정한다. 이 정도의 작업은 앞서 체육대회를 자유놀이 운동회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공교육 시스템에 큰 투자나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전에 입안되었다가 유야무야된 교육정책 중에 되살릴 필요가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방 없는 날’이다. 가방 없이 등교하여 학업에 대한 부담 없이 하루 동안 자유롭게 학교에 있다가 하교하자는 개념으로 입안되었는데 실제로 잘 진행이 된 사례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이런 날을 아예 ‘가방 없는 요일’로 확대하면 좋겠다. 월요일 정도를 ‘놀요일’로 하여 먼저 출석을 확인한 후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원하는 학생들과 그저 우왕좌왕하길 원하는 학생들을 구분하면 된다. 방학이나 공휴일을 제외하면 연간 30일 정도가 된다.
놀이 활동가들이 교육대학 등의 공식적 채널을 통해서 교사들과 만날 경로를 만드는 작업이 시급하다. 각 지역의 교대에서 놀이 활동가들을 연구 교수나 연수 교수로 임용하여 여러 강좌를 준비한다. 그런 다음 교대생들은 놀이체육을 정식 교과목으로 배우도록 하고, 초등학교 교사들이 의무적으로 받는 1급 정교사 연수에서 놀이에 관련된 교육을 대폭 강화한다. 그래야 교사들이 학습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놀이를 인식하는 안타까운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초등학교 교사 집단이 선도적인 플레이리더로써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교사들 중에서 이 역할이 부담스럽다면 초등학교에 놀이체육 교과전담교사를 임용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 내 놀이터를 좀더 놀이친화적 공간으로 만들고 기왕이면 모험 놀이터나 통합 놀이터 개념을 도입한다. 놀이터에 대한 논의는 이후 별도의 챕터에서 다루기로 한다.
미국처럼 국립 놀이 연구 기관이나 센터를 설립한다. 이곳에서 총서를 발간하고 기타 자료를 배포하며 국립 놀이 연구소를 창설하여 제반 과학의 성과를 활용하고 축적한다. 시범적인 놀이시설로써 구내 놀이터(놀이마당)를 운영하면서 연구 관찰하고 그 안에 동식물을 기르고 키우는 노작 교육 시설을 마련하고 연수 및 교육시설을 갖추어 각급학교의 놀이 연수자들이 회합할 수 있도록 한다. 참고로 미국립 놀이연구소는 역시 미국인들답게 연구의 성과를 개인과 교육의 레벨을 넘어 ‘기업과 조직 혁신’에 적용한다. 이들의 연구성과가 대부분의 학교와 기업에 적용된다면 흔히들 말로만 떠드는 자발성이나 창의성에 대한 중요한 결과를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2007년 12월 영국정부는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자라나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놀이분야만 해도 2008년에서 2010년까지 3년 동안 225백만 파운드, 즉 4,5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대략 1년에 1,500억 원을 놀이터 개보수와 플레이리더의 교육과 고용에 쓰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선진국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런 사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려 10년 정도의 시간 을 두고 영국의 무수한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수많은 단체를 만들어 여러 행사와 회의를 개최하고 저변을 확대하여 상원과 하원에서 로비하고 한 후에야 맺힌 결실이 바로 위와 같은 프로젝트다. 물론 20세기 중후반 동안 꾸준히 놀이 관련 분야의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깊이와 폭을 늘려왔기에 이만한 일이 가능했다.
선가의 도는 글월로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불입문자不立文字’라고 하는 것은 놀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문자는 놀이를 전하기에 최악의 수단이다. 글자에 놀이를 붙들어 매는 작업은 매우 고된데다가 놀이맥락이 증발하기 일쑤이다. 실제로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 그 놀이의 규칙을 익히고 놀이맥락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불과 수십년 단위의 전자매체의 놀이와 놀잇감도 개인이나 공공의 박물관에서 유물이나 한 시대의 기념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보다 몇 백년에서 몇 만년은 더 오래된 우리 민족의 놀이나 인류 보편의 놀이를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남겨서 아카이브를 만들어 후세에게 전하는 것이 후손으로써 그리고 미래 세대의 선조로써 맡아야 할 책임이다.
놀이 아카이브는 필자의 마지막 대안이다. 이 정도의 작업을 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될 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시도교육청이나 국립박물과 규모의 조직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회사에서 약간의 결의만 하면 가능한 수준이다. 애니메이터와 디렉터 몇 명이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면서 몇 년간 작업하면 놀이 아카이브로써 남길 영상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이 확실한 지 갈수록 문제도 많아지고 그에 대한 해법도 일반인들이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환원주의라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게 다 아무개 대통령 때문이다’라든가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다’라든가 하는 식으로 단 하나의 원인을 찾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바로 환원주의이다.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으로 엑스값 하나만 찾으면 된다는 1차방정식스러운 사고방식을 말한다. 과거에 비해 점점 많아지는 듯한 게다가 복잡하기까지한 문제에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현대인들은 명쾌하고 단선적인 해결방식을 원한다. 어느 나라나 대체로 뇌구조가 가장 단순한 정치인들이 쉽게 공직에 선출되는 경향은 이를 증명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말이 있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옴의 신전 앞에 복잡한 매듭으로 매여진 전차를 단칼에 잘랐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서양의 속담인데,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고 알렉산더의 성격과 연관되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 속의 알렉산더 처럼 난마와 같이 어지러운 문제를 단칼에 자르려 한다.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만 하면 현재 아동들과 10대들의 여러 문제가 자동으로 풀리지는 않는다. 더구나 현재의 상황에서 몇 사람의 노력으로 단기간에 어린이들의 놀이생태계가 다형성을 찾게 될 리도 없다. 그저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복잡한 문제임이 확실하고 더군다나 보기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므로 더더욱 조심스럽게 여러 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