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저널29. 나는 이제 아버지의 보호자다
나는 아버지가 참 두려웠다. 무서웠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기준이나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허락하려 하지 않으셨고 그게 될 때까지 계속 다그치고 되도록 독려하는 그런 분이셨다. 어려서는 그래서 공부를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래서 열심히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버지의 말씀이 대부분 맞았고 표현이 좋지 않았을 뿐 부모이기에 자식에게 하는 아버지 나름의 애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성공도 해보고 싶었다. 내게 누군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버지라고 답하고 싶어 졌다.
그러던 아버지가 요즘 나에겐 낯선 사람으로 다가온다. 뇌경색과 우울증 그리고 폐암 절제 수술 이후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다. 아니 아이가 되셨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시간은 거꾸로 간다
요즘 아버지 주변에는 병으로 나약해진 아버지의 심리를 이용해서 위험할 수 있는 이상한 치료를 받도록 종용하는 다단계 브로커들이 즐비한 것 같다. 아버지는 매일 전화로 그런 치료를 받고 싶으니 어떤 치료인지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식인 나에게 먼저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매번 아버지가 받고 싶어 하는 치료는 같은 치료이고 그것을 종용하는 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같은 무리들이다. 그래서 매번 전화를 주실 때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치료를 받으시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지만 잊을만하면 또다시 전화를 주신다.
마치 처음 들어본 치료인 것 마냥 같은 이야기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신다. 왜 안되나고?
어제는 힘든 출장을 다녀오는 기차 속에서 전화를 받았다. 급기야 기차 속에서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를 드려도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시니 급기야 아버지에게 그런 치료를 종용하는 브로커 전화번호를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전의 아버지라면 이런 치료를 받겠다고 우기지도 않으셨겠지만 당당히 연락처를 주셨을 텐데 절대 주지 않으신다. 왜?
그 치료의 좋은 쪽만을 보시려고 하신다. 아무리 그런 치료로 인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아버지의 상태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치료는 하시면 안 된다고 하여도 듣고 싶지 않으신 듯하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말도 안 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우길 때와 같다. 그냥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그때 내 모습인 것만 같다. 이제 아버지가 아이가 되신 거다. 내 눈에는 절대 옳지 않은 것인데 그게 보이지 않으시는 거다. 이젠 내가 존경했던 현명하고 정확하고 합리적인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제 그야말로 '나이 들고 병들어 판단이 흐릿해져 가는 할아버지 한 분'이 되신 것이다. 나는 자식으로서 이젠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아버지를 보호해야 하는 정말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보호자'인 것이다.
점점 보호자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 시켜주고 주지시켜주는 상황에 울컥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어 맘이 아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도 나이가 들어 내 아들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게 될까 싶어 가슴이 철렁한다. 제발 내게는 시간이 거꾸로 가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