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껴쓰기 /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20200702
2014년 홍콩에 갔을 때 침사추이에 있는 홍콩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선사시대 모습부터 한나라,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아편전쟁 패배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까지 홍콩의 아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시의 맨 마지막은 1997년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을 축하하는 영상으로 끝난다. 중국 시각에서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은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반환 이후의 역사는 박물관에 없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결국 '시간은 중국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을 수 있었던 것은 덩샤오핑이 내놓은 신의 한수 '일국양제'덕분이었다. 덩샤오핑은 50년간 '한 나라 두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세기의 묘책으로 사회주의로의 편입을 두려워한 홍콩 주민들과 시비를 걸고 싶은 서방 국각를 설득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중국과 150년 자본주의 홍콩 체제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과 홍콩의 신뢰 붕쾨는 201년 우산혁명으로 표면화됐고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로 폭발했다.
홍콩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송환법이 페기되는가 싶더니 중국 정부가 직접 홍콩보안법 제정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달 30일 중국 전인대 상무위워횐를 통과한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과 테러 활동 등 국가 안보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 처벌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우산혁명 주역인 조슈아 윙은 "세계가 그동안 알고 있던 홍콩의 종말을 의미한다. 새로운 공포의 시대로 접어들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예정대로라면 일국양제는 2047년 까지 보장돼야 한다. 아직 27년이나 남았지만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시진핑의 조급증은 일국양제를 무시하는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홍콩은 '양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중국은 오로지 '일국'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금융허브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헥시트 현실화는 '황금알은 낳는 거위' '동방의 진주'라는 명성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