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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데스크톱이 죽었다!

핸드폰 침수, 그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by 진심발자욱

토요일 저녁, 아이폰 13 미니가 '샤워실 침수'라는 사건을 겪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게 이번 주 최대 재앙일거라고 생각했다. 그것 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있을까 싶었다.


음악을 들으며 샤워하겠다는 생각에 늘 그랬듯 샤워실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갔다. 거치대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아이폰 13 미니는 보기 좋게 물이 저벅한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들어 올렸지만 이미 한 번의 침수를 경험한 적이 있던 터라, 이번엔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았다.


샤워는 포기하고, 수건으로 잘 닦았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충전 케이블을 꽂는 순간 '충전단자에 물기가 감지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뿔싸...


부랴부랴 전원을 끄고, 습기제거제와 함께 밀봉된 케이스에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넣어 밤새 재웠다. (이건 핸드폰을 침수 핸드폰 살리기라는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이다. 절대 드라이기로 말리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일요일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원을 켰다. 혹시나 영원히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안고서.

다행히 전원은 켜졌지만 배터리가 문제였다. 잔량 표시 숫자는 거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충전 케이블에 꽂았지만 숫자는 널뛰기를 해댔다.

'이제 드디어 너를 보내줘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여러 고민 끝에 언제 생존을 포기하게 될지 모르는 핸드폰을 교체하기로 했고 그다음 주자를 새벽배송이라는 시스템을 갖춘 쿠팡에서 받아보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새 아이폰이 도착했다. 눈을 뜨자마자 교체 작업을 시작했는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출근도 늦어졌다.

겨우 사무실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이미 오후 두 시. 이제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 했는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데스크톱으로 옮기기 위해 나는 <윈도 연결>이라는 앱을 사용한다. 그런데 교체 후 앱이 새 기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블루투스를 껐다 켜면 되겠지.'

빨리 일을 처리하겠다는 욕심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블루투스'를 호기롭게 꺼버렸다.


순간 깨달았다.


내 데스크톱과 함께 하는 마우스와 키보드는 모두가 순수하게 블루투스 전용이라는 사실을.


맙소사.

나는 아무것도 조작되지 않는 데스크톱과 마주하게 되었다.

커서도, 키보드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침수보다 더 끔찍한 진짜 사고는 바로 이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핸드폰으로 이 상황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블루투스 OFF 된 데스크톱, 복구방법?'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방법 없습니다. 유선 마우스를 사세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요즘 누가 유선 마우스를 쓰겠는가. 이미 저세상 물건 아닌가.


결국 출근한 지 두 시간 만에 강제 퇴근을 당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으로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꼭 유선마우스만 생각했을까?'


사실 USB 마우스만 있어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왜 그 순간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옛날 사람이어서?


오늘 아침, USB 마우스를 들고 와서 죽어버린 데스크톱에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리고 그 USB 마우스를 사무실 책상 한편에 잘 보관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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