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살까, 말까.
증권 앱을 켜고 매수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5분을 버텼다. 결국 누르지 못했다. 7만 원대인데 비싼 건지 싼 건지도 모르겠고, 내일 떨어지면 어쩌나 싶고, 한 주에 7만 원이면 점심값 열흘 치인데 그걸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앱을 끄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 있었다.
주식이 무서웠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아는데, 그만큼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직장 선배가 "유망하다길래" 들어간 종목에서 200만 원을 날린 이야기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개별 종목을 고른다는 건, 수천 개 기업 중 잘될 놈 하나를 콕 찍는 행위다. 솔직히 나한테는 도박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다 ETF라는 단어를 만났다.
ETF를 처음 알게 된 건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었다. 재테크 영상을 몇 개 보다 보니 "ETF로 시작하세요"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상장지수펀드. 여러 주식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은 상품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감이 안 왔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했다.
내가 과일 가게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사과를 한 종류만 사면, 그 사과가 맛없으면 전부 손해다. 그런데 과일 도시락이 있다. 사과, 딸기, 포도, 망고가 조금씩 담겨 있다. 사과가 별로여도 딸기와 포도가 맛있으면 전체적으로는 괜찮다. ETF가 바로 그 과일 도시락이다. 삼성전자 하나를 콕 찍어 사는 게 아니라, 한국 대표 기업 수십 개가 담긴 바구니를 통째로 사는 거다.
이 비유를 떠올린 순간 마음이 좀 놓였다. 한 종목이 망해도 나머지가 버텨준다. 수천 개 기업 중 하나를 고르는 도박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방향에 베팅하는 것이니까.
더 마음에 든 건 가격이었다. 국내 ETF 중에는 한 주에 만 원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삼성전자 한 주 살 돈이면 ETF를 여러 주 살 수 있다. 게다가 운용 보수도 일반 펀드보다 훨씬 저렴했다. 어떤 건 연 0.01%짜리도 있었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공짜나 마찬가지 아닌가.
개념을 이해한 것과 실제로 돈을 넣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증권 앱에서 "ETF"를 검색하자 종목이 1,000개 넘게 쏟아져 나왔다. 이름도 외계어 같았다. KODEX, TIGER, ARIRANG, SOL. 뒤에 붙는 말도 제각각이었다. 미국S&P500, 2차전지, 반도체, 미국배당다우존스, 인도니프티50. 바구니가 너무 많으니 어떤 바구니를 들어야 할지 또 막막해졌다.
그때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처음이니까, 가장 크고 검증된 바구니부터 담자.
S&P 500.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500개가 담긴 지수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우리가 매일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들이 다 여기 들어 있다. 이 지수를 따라가는 ETF를 하나 골랐다. 한 주에 만 오천 원 정도. 커피 세 잔 값이었다.
매수 버튼을 눌렀다. 삼성전자 앞에서 5분을 버티던 그때와는 달랐다. 500개 기업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눌러줬다.
그날 산 건 딱 세 주. 4만 5천 원어치. 금액은 초라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달랐다. "나도 투자를 시작했구나"라는 감각이 분명하게 있었다.
처음 ETF를 사고 일주일 동안은 하루에 열 번쯤 앱을 열어봤다. 800원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두 번째 원칙을 세웠다. 매달 15일, 같은 금액을 넣고, 그 외에는 앱을 열지 않는다.
이걸 적립식 투자라고 한다. 영어로는 DCA, Dollar Cost Averaging. 시장이 비쌀 때는 적게 사고, 쌀 때는 많이 사게 되니 장기적으로 평균 매입 단가가 낮아진다. 핵심은 타이밍을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사야 하나 고민하는 대신, 시간을 투자한다는 생각. 이 발상의 전환이 나한테는 꽤 컸다.
매달 40만 원씩 넣기 시작했다. S&P 500 ETF에 70%, 국내 대표 지수 ETF에 30%. 이렇게 나눈 건 미국 시장의 성장성을 믿으면서도, 내가 사는 나라의 경제와도 함께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석 달이 지나자 변화가 느껴졌다. 금액 자체가 크게 불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미국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기사를 보면 내 ETF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엔비디아 실적 서프라이즈"라는 기사가 뜨면, 아 저 기업이 내 S&P 500 바구니 안에 들어 있지, 하고 연결이 됐다. 돈을 넣어봐야 공부가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시장이 하루 만에 3% 넘게 빠졌다. 금액으로 따지면 내 계좌에서 몇만 원이 사라진 것뿐이었는데, 심리적 충격은 그보다 훨씬 컸다. 머릿속에서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예전에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주식 시장은 참을성 없는 사람의 돈을 참을성 있는 사람에게 옮겨주는 장치다." 워런 버핏의 말이었다. 나는 참을성 있는 쪽에 서기로 했다. 앱을 닫았고, 다음 달 15일에 예정대로 40만 원을 넣었다. 오히려 싸게 살 수 있어서 좋은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실제로 두 달 후에 시장은 회복했고, 떨어졌을 때 산 주식이 가장 수익률이 좋았다.
그때 배운 게 하나 있다. ETF가 개별 주식보다 안전한 건 사실이지만, 마음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것. 결국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건 종목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ETF를 시작한 지 이제 반년쯤 됐다.
계좌 수익률은 아직 한 자릿수 퍼센트에 불과하다. 자랑할 만한 숫자는 아니다. 그런데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매달 15일이라는 루틴, 시장이 흔들려도 앱을 닫을 수 있는 담력, 그리고 경제 뉴스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는 감각.
삼성전자 매수 버튼 앞에서 5분을 버티다 도망쳤던 그날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500개 기업이 담긴 바구니가 있으니까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완벽한 타이밍은 없고, 꾸준한 시간만 있을 뿐이라고.
처음 산 세 주, 4만 5천 원어치의 ETF. 그 초라한 시작이 내가 돈과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큰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이었다. 그리고 투자에서 시작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ETF 기초부터 전략까지 정리해뒀어요 -> 경제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