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앱을 켰는데 외계어가 보였다

by 경제한입

PER 8.7배. EPS 21,340원. 거래량 4,218만 주.

삼성전자 종목 화면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숫자들이었다. ETF를 사기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고, 3편에서 HBM이 뭔지까지 공부했으니 이제 좀 알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개별 종목 화면을 들여다보니 모르는 단어투성이었다. 시가총액은 그나마 들어봤는데, 호가, 미수금, 공매도, VI 발동. 한글인데 외국어 같았다.

그날 밤, 검색창에 "주식 용어 정리"를 쳤다. 블로그마다 100개, 200개씩 나열해놨는데 읽다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너무 많았다. 전부 외울 필요는 없고, 지금 내 수준에서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익히자. 그렇게 추린 게 50개 남짓이었다.

처음 잡은 건 시장의 뼈대를 이루는 단어들이었다.

코스피, 코스닥. 이건 알았다. 대기업은 코스피, 벤처·바이오는 코스닥. 그런데 나스닥과 뭐가 다른지는 제대로 몰랐다. 코스피는 한국 대기업 시장이고, 나스닥은 미국 기술주 시장이다. 내가 적립식으로 사고 있는 S&P 500 ETF의 기업 대부분이 나스닥에 상장돼 있었다. 그제야 내 돈이 어디에 가 있는지 지도가 그려졌다.

시가총액. 이건 3편에서 "삼성전자 시총 1,000조 원"이라고 썼을 때 대충 감만 잡았었다. 정확히는 주가에 전체 주식 수를 곱한 값이다. 쉽게 말하면 회사의 가격표. 주가가 높다고 비싼 회사가 아니다. 주가 10만 원인데 주식이 100개뿐인 회사보다, 주가 1만 원인데 주식이 1억 개인 회사가 더 크다. 이걸 모르면 "이 주식 한 주에 50만 원이나 해? 비싸다!"라고 착각하게 된다.

다음은 매수와 매도 주변의 단어들이었다.

호가라는 게 있다. 사고 싶은 가격, 팔고 싶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증권 앱에서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가 위아래로 나열된 화면을 본 적이 있을 텐데, 그게 호가창이다. 빨간색이 매도 호가(파는 쪽), 파란색이 매수 호가(사는 쪽).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거래가 체결된다. 처음 봤을 때는 주식 시장의 벼룩시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는 사람은 더 비싸게, 사는 사람은 더 싸게. 그 실랑이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지정가 주문과 시장가 주문의 차이도 처음에 헷갈렸다. 지정가는 "이 가격에 사겠다"고 줄을 서는 것이고, 시장가는 "지금 당장 사겠다"고 현재 가격에 바로 체결시키는 것이다. 급할 때는 시장가, 여유가 있으면 지정가. 나는 적립식이니까 대부분 시장가를 쓰는데, 목돈을 넣을 때는 지정가로 좀 더 싸게 사려고 노력한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가치 평가 지표였다.

PER, PBR, ROE, EPS. 알파벳 세 글자짜리 약어들이 쏟아지는데,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머릿속이 엉킴. 그래서 나는 이걸 건강검진에 비유해서 정리했다.

PER은 혈압이다. 이 주식이 비싼지 싼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숫자.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인데, 쉽게 말하면 "이 회사가 지금 벌어들이는 돈 대비 주가가 몇 배인가"다. PER 10이면 이 회사가 10년 동안 같은 이익을 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낮을수록 싸 보이지만, 낮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성장이 멈춰서 싼 경우도 있으니까.

PBR은 체중이다. 회사가 가진 순자산 대비 주가가 몇 배인지를 본다. PBR 1 이하면 회사를 당장 문 닫고 자산을 팔아도 지금 주가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 이론적으로는 저평가된 거다.

ROE는 체력이다. 자기 돈으로 얼마나 이익을 내는지. 같은 밑천을 가지고 10% 수익을 내는 회사와 3% 수익을 내는 회사 중 어디가 효율적인지는 뻔하다. ROE가 꾸준히 높은 회사는 돈 버는 체질이 좋다는 의미다.

이 세 가지만 기억해도 종목 화면이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회사의 건강 상태로 읽히기 시작한다.

2026년이라서 알아야 하는 단어도 있었다.

넥스트레이드(NXT). 한국 최초의 대체거래소다. 기존에는 한국거래소(KRX) 하나뿐이었는데, 2025년 3월에 NXT가 생기면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직장인인 나한테는 꽤 큰 변화였다.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몰래 앱을 열어야 했는데, 이제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도 거래가 된다. 물론 이게 "더 많이 매매하라"는 뜻은 아니다. 매달 15일 적립식이라는 원칙은 그대로 지키되, 급하게 뉴스가 터졌을 때 저녁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 다르다.

공매도도 이제는 알아야 하는 단어가 됐다. 없는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팔고, 나중에 싸게 사서 갚는 구조다. 쉽게 말하면 "떨어지면 돈을 버는 방법"이다. 이게 2023년에 금지됐다가 2025년 3월에 풀렸는데, 공매도가 많이 쌓인 종목은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대차거래 잔고가 141조 원으로 사상 최대라고 하니, 뉴스에서 이 단어가 보이면 긴장하게 된다.

용어를 50개 가까이 정리하고 나니 달라진 게 있다.

증권 앱의 종목 화면이 더 이상 외계어가 아니었다. PER을 보고 "아 이 회사 지금 좀 비싸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고, 거래량이 갑자기 튄 걸 보면 "뭔가 뉴스가 있구나"라고 감이 잡혔다. 뉴스 기사에 나오는 "밸류업 참여 기업", "배당소득 분리과세" 같은 말도 이제 맥락 안에서 읽힌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단어는 계속 튀어나온다. 선물·옵션, 신용거래, 엘리엇파동 같은 건 솔직히 아직 감이 안 온다. 하지만 1편에서 "재테크 뭐부터"를 검색하던 사람이, 이제는 PER과 공매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속도가 느려도 방향이 맞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투자는 결국 언어의 문제다. 시장이 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읽을 수 없다. 용어를 아는 것 자체가 수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용어를 모르면 손실을 피할 수도 없다.

증권 앱을 켜보자. 어제까지 외계어였던 그 숫자들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주식 용어 50개 전체 정리는 여기에 -> 경제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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