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대 기업은 혁신을 멈추지 않는가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는 단순히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역동성과 변화를 깊이 파헤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경제 이론의 핵심은 바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와 이 파괴를 이끄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이다. 슘페터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는 정체되지 않으면 서도 새로운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혁명화하는 시스템이다.
슘페터에 따르면, 거대 기업이 혁신을 멈출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창조적 파괴라는 자본주의의 심장 박동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 방식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낡고 비효 율적인 구조와 기업들을 필연적으로 해체시키고, 그 자리에 더 높은 효율과 생산성을 가진 새로운 경제 구조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거대 기업이 아무리 큰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혁신이 등장하면 그들의 기존 수익 모델과 기술은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거대 기업은 파괴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파괴자가 되어야 하는 생존의 딜레마에 놓인다.
이러한 혁신의 주역은 초기에는 천재적인 개인 기업가 였다. 이들은 기존의 균형 상태를 깨고 혁신을 시도함 으로써 일시적인 초과 이윤을 얻었다. 그러나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혁신 주체가 개인 기업가에서 거대 기업의 조직화된 연구개발(R&D) 부서로 이동 한다고 보았다. 즉, 혁신이 영웅적인 개인의 직관에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팀워크의 결과로 바뀐 것이다. 거대 기업은 혁신을 위해 필요한 대규모 자본과 인력, 그리고 장기간의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며, 혁신을 계획하고 조직하는 능력을 갖춘다.
따라서 거대 기업의 혁신은 더 이상 ‘할지 말지’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만약 한거대 기업이 혁신을 멈추고 현재의 수익에 만족한다면, 외부의 신생 기업이나 경쟁 기업이 훨씬 더 효율적이거나 파괴적인 혁신을 들고나왔을 때 그 기업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난다. 이는 혁신을 멈춘 기업의 운명에 대한 슘페터의 준엄한 경고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노키아의 휴대전화 시장을 파괴하고, 아마존이 기존 유통 산업을 재편한 사례들은 거대 기업이라도 혁신을 게을리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거대 기업이 혁신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창조적 파괴의 위협 때문이다.
슘페터의 경제학은 그의 동시대 거장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과 대비할 때 더욱 그 가치가 명확해진 다. 케인스가 단기적인 경기 침체와 실업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의 수요 관리를 강조했다면, 슘페터는 장기적인 경제 발전과 질적인 구조 변화에 집중하며 기업가의 혁신을 핵심 동력으로 보았다. 즉 케인스는 ‘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졌 다면, 슘페터는 ‘새로운 자원과 방식을 창조하는 방법’ 에 주목한 셈이다.
슘페터는 이러한 거대 기업 주도의 혁신이 결국 자본주 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 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약화시킨다고 예측했다. 혁신이 관료화되고 합리화되면서 개인 기업가의 모험 정신이 사라지고, 지식인 계층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 주의를 지탱하는 문화와 제도가 무너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거대 기업들은 파괴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초과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숙명처럼 혁신에 매달리고 있다. 거대 기업이 혁신을 멈추지 않는 한, 창조적 파괴라는 자본주의의 엔진은 계속 해서 작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