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를 두고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별일 아닐 것”이라는 안이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제3차 오일쇼크가 왔다”는 성급함이다. 2026년 3월 현재, 우리 경제는 그 두 극단 사이의 위태로운 문턱에 서 있다. 1970년대식 전면적 오일쇼크가 현실화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분명한 위기의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이번 충격이 며칠간의 공포를 넘어 수주, 수개월의 공급 차질로 고착된다면 위기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영역이 된다.
이번 사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본질적 이유는 유가 상승 그 자체보다 ‘공급의 불안정성’에 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중동 충격으로 하루 1,100만 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했다고 진단하며 추가 비축유 방출을 검토 중이다. 우리 외교부가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안전을 이란에 직접 요청할 만큼 상황은 엄중하다. 이는 시장이 단순히 ‘비싼 기름’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물량이 제때 도착할 수 있느냐를 우려하는 실물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이러한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원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LG화학 여수 에틸렌 설비 일부가 멈춰 섰다. 충격은 주유소 가격표보다 먼저 정유·석유화학·해운·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의 원가 구조를 흔든다. 오일쇼크는 소비자가 체감하기 전, 산업 현장에서 먼저 시작되는 법이다.
물론 1970년대식 국가적 패닉으로 곧장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에겐 과거와 다른 ‘완충장치’가 있다. 한국은 IEA 회원국 간의 공조 체제 안에 있으며, 한국석유공사는 2024년 말 기준 9,949만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즉, 무방비 상태로 국제유가 그래프만 바라보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비축유, 대체 조달, 정책 대응이라는 겹겹의 방어선이 외부 충격을 내부에서 흡수하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방어선은 영구적이지 않다.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줄 뿐 위기의 본질을 제거하지 못한다. 일본 정유업계가 미주산 원유로 눈을 돌리고, 우리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재도입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은 시장이 이미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방증이다. 대체 수입선 확보가 절실하지만, 치솟는 운임과 보험료, 뒤엉킨 항로는 결국 가격 충격을 물량 충격으로, 다시 산업 전체의 차질로 전이시킬 위험을 품고 있다.
결국 관건은 ‘시간’이다. 호르무즈 통항 차질이 단기에 진정되고 공급망 복구가 빨라진다면 이번 위기는 관리 가능한 수준의 에너지 충격으로 남을 것이다. 반대로 공급 불안이 고착화되어 산업용 원료를 넘어 전력, 운송, 식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밀어 올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순간 우리는 ‘쇼크가 올 것인가’를 묻는 단계를 지나,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계산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제3차 오일쇼크의 한복판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추상적 위험으로 치부할 시점도 이미 지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근거 없는 공포도 아니다. 공급선 다변화, 비축유의 전략적 운용, 산업 원료 우선순위 조정 등 현실적인 대응책을 냉정하게 집행하는 일이다. 위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우리의 대비만큼은 이미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