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거 기획안 엎어지면 나 짤릴거 같아"
오랜만에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들어온 남편B씨가 말했다.
나.... A씨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처럼
"뭐 그래서 어쩌라고?"를 물어 T발롬의 명맥을 이을지.
그래도 이런날은
"너무 걱정하지마"란 말로 다독이는 아내의 면모를 보일지.
어느 드라마에서 저런 질문은 시간제한이 있는 문제라 했다.
고민하는 사이 제한 시간 3초는 지나버렸고,
이제 무슨 대답을 한들 그의 귀엔 내 말이 들어가지 않을 거다.
다행히 남편은 내 침묵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던 듯.
쇼파에 앉아 있는 나를 마주볼 수 있도록 식탁 의자를 돌렸다.
"난 있잖아. 내가 전문직인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은.."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고작 프리랜서 피디가 전문직인줄 알았다니.
고작 프리랜서 작가인 내 입장에서는 그의 생각에 동의 하기 어려웠다.
남편과 나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며 만나 결혼했다.
10년차 방송인으로 둘 다 몸값이 한참일때,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내 경력을 더 키워 나가기 어려웠고
남편은...
솔직히 모른척 했지만 그역시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 보다는 안정적이고
가정에 시간을 쓸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
그렇게 또 다시 10년이 흘렀고
이제는 떠밀릴 시간이 되어 버렸다.
"이거 그만 두면 드론을 배울까 해.
아님... 뭐 ..."
남편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삼키는 듯 했다.
그말이 뭔지 모르겠으나 알콜의 힘을 빌려 듣고 싶지는 않기에 그냥 내 물음을 닫았다.
"잠깐 쉬게 되면 뭐 어때?
내가 조금씩이지만 버니까 그동안 딴 일을 찾으면 되는거지."
그의 맘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려 던진 말이 도리어 폐부에 꽂힌건지.
남편은 기분이 얹찮을때 보이는 마른세수를 서너번 했다.
안다.
지금 내가 버는 액수로는
애들 학원비도
아파트 대출금도
이미 커져버린 우리의 소비 습관도
그 어느하나 시원하게 충족할 수 없다는 걸.
불과 지난 달만 해도 해외 여행을 다녀오고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또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 내가 우습다.
이렇게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르고 사는 것을.
그런데 남편 B야.
우리가 한치 앞도 모르고 살듯,
내일 또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잖아.
그냥 또 살아보자.
지금 떠밀려 가는 곳의 종착지가 어딜지는 아직 모르잖아.
그렇게 벌건 얼굴로 최악을 생각해야 하는 너의 가장의 무게.
자는 동안 만이라도 내려 놓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