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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Aug 09. 2020

나는, 쓰는 사람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깜깜한 어두움 속을 걷는 일은 참 어렵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두운 숲길에 홀로 떨어졌을 때의 막막함을 느끼게 한다. 크나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데 한 치 앞도 안 보여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암담함이다. 깜깜할수록 작은 불씨 하나의 위력은 크다. 나라는 존재를 드러나게 해주는 등불, '쓰기'를 통해 나는 나를 알아갔다.


'나' 주제로 그동안 쓴 글들을 읽어 내려가니 내가 가진 형태와 색깔이 차츰차츰 드러났다.


자연을 좋아하고, 지금에 집중하며, 성장해나가고,
부단히 시도하면서 완벽주의를 극복해가며,
예측 불가능을 수용하면서,
 마음자리 한 뼘 더 내어 이웃을 포용하는 사람


문장 하나로 나를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써왔기에 어렴풋이 보였다. 쓰면서 나다움이 드러났다. 차 길이 나타났다.  '쓰기'라는 등불을 들고 있다면, 어둠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막연함에서는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쓰는 사람, 그것이 나였다.






#1. 일 년의 쓰기


유령처럼 숨어있던 블로그에 글을 써보자 결심한 건 2019년 4월. 1년이 조금 넘었다. 나 같은 게 쓴다는 것이 부끄러워 못 썼고,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고 비웃을 것 같아 못 썼고, 인터넷 세상에 사생활이 공개될까 봐  못 썼다.


라이프 코칭을 받으며 나라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니 재미있게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일기장에 '케니'라는 이름을 붙이고 꾸준히 썼던 어릴 적 내가 보였고. 서울 사는 친구랑 3여 년을 편지를 주고받았던 십 대 때의 나도 만났다. 싸이월드, 티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등이 유행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쓰고 싶어 창구를 옮겨 다니며 기록했던 청년기의 나도 있었다.


고향집에서 발견한 6학년 때의 일기장. 꾸준히 썼던 내가 있었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창조성 회복 프로젝트 책'을 읽어나가며, '너는 못 쓰잖아!'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내부 검열자를 살살 달래면서 쓰기 시작했다. 일기도 쓰고, 책 읽고 느낀 것도 쓰고, 정보를 나누는 글도 쓰며, 못 써도 잘 써도 그냥 쓰면서, 일주일에 3번, 1년을 꼬박 썼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표면상으론 28명이었던 블로그 이웃이 1,000여 명이 되었다는 것, 내면으론 거침없이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몇몇 지인들에게만 공유했던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용감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공개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따뜻한 지지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애정하는 여행작가 오소희 님께서 스스로 가치를 둔 행위를 적어도 1년은 꾸준히 해보면 무언가 결실이 보인다고 조언해 주셨는데, 1년 동안 자라난 나의 쓰기 열매는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손가락이기도 했다. 그 손가락은 성냥개비가 촛불이 되고, 촛불이 등불이 되고, 등불이 전등이 되게 하는 시간의 결과였다. 엉덩이 깔고 앉아 손가락 움직이면 처음 의도와는 다른 신비로운 방향으로 숨어있던 세상이 지면 위에 드러났다. 내가 쓰는 걸까, 손가락이 쓰는 걸까, 아님 엉덩이?




#2. 하루의 쓰기


사실 이번 주는 바쁜데 두드러진 성과는 없었다. 왜 이리 분주할까 돌아보니 새로운 직장에 제대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는 현실! '적응기'라 불리는 자연스러운 부자연스러움의 시간이었다. 날짜가 흐르면 해결될 터지만, 나는 쓰는 존재 아닌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종이를 펼쳐 하루를 시작하는 내 마음을 쭉 써 내려갔다. 한 문장만 계속 튀어나오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욕도 편하게 내뱉으며 마음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쓰기의 마지막에는 한층 커진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신기한 현상이 늘 기다린다. 역할에 매몰되어 있으면 숨이 차오른다. 더 잘하려고 애쓰는 숨과 더 못 해서 아쉬운 숨. 그런데 '보다 큰 나 자신'이 지금 상황은 나의 수많은 역할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해주니 편안한 숨이 내쉬어진다. 평온한 분위기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내 삶의 가치와 그 가치에서 뻗어 나오는 오늘 하루 할 일을 적어 내려 간다. 겨우 20분의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인생의 'key time'이다.


찌뿌둥하면 쓴다. 쓰다 보면 산꼭대기에서, 때론 우주에서 개미 같은 인간사를 내려다보게 되고 상황은 대충 정돈된다. 이런 걸 '성찰'이라 부르겠지. 그렇게 쓴 글은 다시 읽어도 내가 썼나 싶을 만큼 새롭다. 하루라도 쓰기를 게을리하면 길을 알려주는 불빛이 가물거린다. 그래서 쓰게 된다.





쓰다 보니 더 잘 쓰고 싶다. 누군가 이미 써놓은 책을 읽는다. 호기심을 가지고 읽으면 내가 구하던 메시지를 보물 찾기처럼 딱 찾는다. 재미있는 순간이다. 제대로 쓰고 싶어서 글쓰기 강좌를 신청하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써보고 내 글을 평가받는 일이 즐거웠다. 글동무가 생겨 좋았다. 끊임없이 쓰는 자, 등불을 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보이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리라 믿는다.


당신에게도 그 등불을 권해본다. 하루 세 줄이라도 쓰다 보면 작은 불씨가 삶을 오롯이 밝혀주는 횃불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이 닿는다면 이 한 손가락 움직여 댓글로 땔감 팍팍 넣어줄 테니 말이다. 주변에 많은 글동무가 생기면 좋겠다. 세상이 좀 더 환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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