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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티 Oct 13. 2022

나는 아이를 진심으로 믿는가

모험놀이터에 대한 단상 : 놀이는 신뢰다

안대로 아이의 눈을 가렸다. 세상이 캄캄해진 가운데 말소리도 내지 않고 엄마와 손을 맞잡은 채 주변을 탐색하는 놀이였다. 불안한 듯 더듬더듬 걷는 아이를 잘 인도하며 놀이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가 앉으면 아이도 따라 앉고 내가 서면 아이도 같이 섰다. 옆 사람과 부딪히거나 벽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아이를 이끌었다. 시각과 청각을 넘어온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시간. 부모의 리드가 익숙한 아이들은 큰 어려움 없이 주변을 탐색했다.


"자, 이제 안대를 바꾸세요"


아이는 안대를 벗고 내가 안대를 꼈다. 밝았던 대낮이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전환되었다. 아이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당당하게 손바닥을 내밀었고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았다.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까, 이상한 길로 인도하진 않을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짜로 잘 안내해줘야 해."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부모님들의 긴장한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어디가 모서리인지 어디가 벽인지 알 수 없어서 한 걸음씩 더듬더듬 걸었다. 나를 잘 따라와 준 아이와 다르게 나는 온전히 이 아이를 믿는가, 반문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믿어야 한다.' 주문을 걸며 터져 나오려는 잔소리를 꾹 참고 정성껏 안내해주는 아이 따라 공간을 느껴보았다. 단지 몇 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 몇십 분은 되는 것 같았다. 안대를 벗어도 된다는 안내에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엄마 믿고 따라와야 한다" 아이에게 참 많이 하는 말이다. 굳이 말로 강조하지 않더라도 양육의 밑바탕에는 그 마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부모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다양하니 옳은 사람이고, 미숙하고 어린아이는 성인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 아이가 부모를 믿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널 믿어'라고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부모가 아이의 존재를 온전히 믿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짧은 놀이의 순간, 깊은 질문이 훅 올라왔다.


나는 아이를 얼마나 믿었던가?




어릴 적 '도둑과 경찰'이라는 놀이를 했다. 마을 아이들 전체를 두 팀을 나눠서 한쪽은 도둑이 되어 숨거나 도망치고, 한 편은 경찰이 되어 찾거나 쫒아야 했다. 가위바위보로 편이 나눠지고 내 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했다. 마을 공터에서 시작된 놀이는 골목길로 퍼졌고 시골집 담벼락과 창고까지 확산되었다. 경찰이 되면 열심히 찾아다녔고, 도둑이 되면 혼신의 힘을 다해 숨었다.


같은 편 친구와 잘 감춰진 작은 창고 같은 곳에 숨었다. 우리를 찾으러 다니는 경찰 목소리가 골목길로 들렸고, 나는 친구와 손을 잡고 숨 죽인 채 가슴을 졸였다. 두근두근.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서로를 전적으로 믿었다. 놀이가 승리로 끝났는지 져서 억울해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서 떨리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지켜주던 장면은 생생히 떠오른다.


놀이를 하려면 믿어야 했다.

 




놀이의 흔적이 깊이 있게 남았다. 아이와 함께 한 안대 놀이는 깜깜한 두려움을 딛고 서로를 신뢰하도록 도와주었다. 전적으로 부모를 믿는 아이 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기도했다.


'나는 신께서 맡기신 귀한 보석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 보석은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잠시 보관하며 아름답게 돌보는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보석은 보석 그 자체로 빛납니다. 그 아름다운 보석의 존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온갖 두려움과 불신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 순간에도 밝게 빛나는 빛을 바라보겠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같이 놀아본 사람은 돈독해진다. 믿음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와 놀 수 있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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