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대멸종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하는 용어인 ‘캄브리아기’, ‘데본기’, ‘실루리아기’는 영국의 지방 명칭에서 유래했다. 영국 북서부(North West)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가 생물교과서에서 배웠던 익숙한 지명들을 마주친다. 지질학을 좋아했던 나는 그 지방이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럼 그 지질시대는 어떻게 구분했을까? 아마도 철학적인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 기대하겠지만 단순하다. 퇴적지층에서 특징적인 화석이 나타나는 시기로 나누었다. 지질시대가 달라졌다는 말은 특정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이 변했다는 뜻이고, 이는 주류 생물종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본기에 번성했던 삼엽충이 사라지면서 석탄기가 도래했고, 그 무렵 육지에서는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 오늘도 이 지구 상에서는 약 70종의 생물이 사라졌다.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자인 윌슨(E. O. Wilson) 교수에 따르면 매년 3만 종의 생물이 사라진다(1993). 물론 일부 생물학자들은 윌슨 교수의 묵시록마저도 너무 낮게 잡았다고 불평한다. 지금 종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과거 지구에서 있었던 5번의 대멸종에 버금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생물학자들은 우리는 이미 6번째의 대멸종을 경험하고 있으며, 종 다양성(biodiversity)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외친다.
생물종들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그 의미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대멸종에 대해 알아보자.
멸종이 한 종의 사멸을 의미한다면, 대멸종(mass extinction) 그 시대 우점 하던 생물 종 대부분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게 어떤 의미 일까?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외계인에 의한 침공 때문이던, 기후변화 때문이던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 세상을.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지 상상이 가는가.
생물 종은 새로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의 호들갑과는 달리 영원한 것은 없다. 과거의 대멸종은 급격한 기후변화와 같이 물리적인 상황의 변화에 의해 촉발되었다.
첫 번째 대멸종은 4억 4천만 년 전에 일어났다. 오르도비스기 말에 기온이 갑자기 기온이 하강하면서 해양생물의 27%에 해당하는 과(family)와 57%의 속이 사라졌다. 한 과에는 수천 종류의 속(genera)이 포함되어 있으니 얼마나 대규모의 멸종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육상에는 아직 생명이 살기 전 이었다.
두 번째 대멸종은 3억 7천만 년 전 데본기 말에 일어났다. 이 시기의 대멸종으로 약 19%의 과, 50%의 속, 70%에 해당하는 종이 사라졌다. 이때의 멸종 이벤트는 2천만 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지질학적 기록들은 그 시기의 연쇄적인 멸종 사건들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역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 번째 대멸종은 2억 5천1백만 년 전 페름기 말에 일어났다. 지구 역사상 가장 심각한 멸종으로 분류되는 이 시기는 지구를 구성하고 있던 지각판의 대이동과 맞물려 초래된 기후변화가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백악기 말에 있었던 것과 같은 운석의 충돌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때는 57%의 과와 83%의 속(genera)의 생물들이 사라졌다. 이 시기의 대멸종은 ‘위대한 죽음(great dying)’으로 불리기도 하며 진화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상에서는 포유류를 닮은 공룡이 멸종하였고, 척추동물의 개체군이 회복되는 데는 3천만 년 이상이 걸렸다. 그 틈새를 조룡류(組龍類)의 공룡들이 조상이 차지하였다. 이 시기는 특히 해양생물들에게는 힘든 시기였다.
네 번째 대멸종은 2억 5백만 년 전 트라이아이스기 말에 일어났다. 트라이아이스기 말엽에서 쥐라기 초엽에 일어난 대멸종에서는 대부분의 조룡류, 수궁류(獸弓類), 대형 양서류가 사라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공룡들은 생존경쟁이 완화되어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포유류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23%의 과와 48%의 속(genera)이 사라졌지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섯 번째 대멸종은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에 일어났다. 이때는 육상에서는 공룡들이 멸종하였고 바다에서는 암모나이트가 사라졌다. 이외에도 우리가 오늘날 화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종들이 함께 사라졌다. 포유류가 지구의 주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때의 대멸종은 운석의 충돌에 의한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일부 지질학자들은 인도의 데칸 트랩을 만들어낸 거대한 화산활동과 이에 따른 급격한 환경변화로 촉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기 동안에는 17%의 과(families), 50%의 속(genera), 75%의 종(species)이 사라졌다.
포유류가 역사의 무대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백악기 말의 대멸종이 덕분이다. 공룡들에게는 불의의 재앙이었지만, 오늘날 75억의 인구가 사는 풍요로운 지구가 만들어지는 시작이었다.
이와 같이 대규모 멸종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진화를 촉진한다. 환경에 적응하여 우점하고 있던 종들이 사라지면서 살아남은 생물들 간에 영역을 넓히기 위한 경쟁이 촉발된다. 이 과정에서 진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세상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생물이 빈 공간을 채운다. 과거의 대멸종은 모두 새로운 진화를 촉진하는 기재였다.
중생대가 끝나고 신생대(Cenozoic Era)에 이르러 포유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인류도 진화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종으로 발전해 갔다.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이 소행성의 충돌이나 화산활동, 기후변화 등 자연에 의한 것이었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생물종들의 멸종은 인간에 의한 것이다. 인간들은 지형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고 생물을 남용하고 급격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또한 대륙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외래종을 유입하여 기존의 생태계 평형을 교란한다.
2007년에 발표된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구환경 전망' 보고서는 우울한 미래를 보여 주고 있다. 늘어나는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수요를 충족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와 물을 사용해야 하고, 더 많은 땅을 경작해야 한다. 사람 1명이 환경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21.9ha의 땅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15.7ha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늘어난 인구는 농업과 산업, 어로 활동을 강화하여 환경부하를 가중하여 수많은 생물종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카리브해의 산호초는 무분별한 채취로 60% 이상이 사라졌고, 그 산호초를 서식 환경으로 하는 생물 역시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600만 ha의 열대 우림이 농지개발과 벌목으로 사라지면서 생물종 역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습지도 20세기 들어 절반가량 사라졌다.
세계 주요 강들은 댐에 의해 가로막혀 생물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서식 공간이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어류는 지난 20년 동안 30%가 감소하였고, 양서류는 30%, 포유류는 23%, 조류는 12%가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이전에 있었던 대멸종을 제외하면 100배나 빠르게 멸종이 진행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이르는 2050년경에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생태계로 되돌리는 것도 힘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와 함께 여섯 번째의 대멸종이 시작되는 시점에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환경운동가들과 생물학자들은 이전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다르게 6번째의 대멸종은 인간(Homo sapiens)이라는 한 종에 의해 일어난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여섯 번째의 급격한 대멸종도 과거와 같이 현재를 주도하고 있는 생물종이 다른 종으로 교체가 일어날 것이다.
몇 만 년 후에도 두발로 걷고 지능을 가진 종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지금과 같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로 불릴지는 의문이다. 그 종은 아마도 인디언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종족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