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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21. 2016

구글이 농업을 하면 엔씽처럼 하겠지

농업에서 꿈을 찾는 청년들 : (2) 엔씽 김혜연 대표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8월 3일 저녁, 신사동의 한 벤처보육센터에서 엔씽 김혜연 대표(32)를 만났다. 그는 이미 인지도가 높은 벤처기업인이다. 그를 인터뷰한 기사는 많다. 아기들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요정 이야기처럼 밝고 희망차다. 전문기자도 아닌 내가 굳이 하나 더 보탤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농업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IT 분야의 청년이 만들어 내는 농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기사에 비친 모습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2%가 있었다. 현실에 비추어 김혜연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다. 아인슈타인의 지적처럼 오늘의 문제를 만들어낸 인식으로 내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에서 IT를 바라보는 과학자'와 'IT에서 농업을 바라보는 벤처기업가'가 같이 한자리에 앉았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엔씽의 김혜연 대표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


"생산자 중심의 농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간 스마트팜용 센서를 만들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0배, 100배 생산성을 올리더라도 농민들이 돈을 벌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농업과는 다른 뭔가를 구상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농업이 '섬유산업'이라면 그가 꿈꾸는 농업은 '패션산업'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직물을 다루지만 그는 패션 디자이너이고 나는 섬유공장의 직공이었다. 우리는 과연 같은 농업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버(Uber)는 모든 사람들이 택시기사가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에어비앤비(Airbnb)는 모든 사람들이 호텔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엔씽은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농부, 선진국에서는 불과 1~2%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에서는 6%를 넘지 않는다. 매일 먹는 음식을 생각하면 좀 더 많을 것 같지만 농민이라는 직업도 점점 더 희귀한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곡물류는 생산지가 중심이고, 채소류는 소비지인 대도시 주변이 중심입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채소를 키우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수확을 해서 배송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는 도시농업을 말하는 듯했다. 도시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하고 또 판매하는 재배상자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빌딩의 옥상이나 지하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광경도 떠올랐다. 그러기엔 농산물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 도시의 비싼 임대료와 비싼 장치를 이용해서 값싼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선뜻 와 닿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예를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어비앤비의 농업용 버전도 떠올랐다. 집과 차는 가능한데 농장이라고 안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있었다.


스마트화분 플랜티



엔씽은 화분을 만드는 기업?


엔씽은 플랜티(Planty)라는 스마트 화분을 만들어서 유명해진 기업이다.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그램 2013'에서 '화분'과 'IT'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과 ‘스타트업’이란 용어마저 생소하던 시절에 그것을 농업에 적용했다. 세상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 알고 있었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걸 농업에 적용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아이디어에 반응했다. 창업 초기 상금 4000만 원과 투자금 3억 7000만 원으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또 정부 R&D 과제를 통해 1억 원을 받았고, KDB 산업은행으로부터 2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 최근에는 중국의  엠파워인베스트먼트에서 6억 원을 더 투자받았다. 그들은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일까?


엔씽이 처음 구상한 스마트 화분 플랜티는 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펀딩에 도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플랜티의 프로토타입 모델은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식물의 환경을 감지하고 원격에서 물을 주는 활동이 가능하다. 화분에는 온도, 토양수분, 조도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다.  2015년 4월 8일 시작한 킥스타터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5월 23일 10만 달러의 목표를 달성했다. 처음 약속한 10월 배송은 지키지 못했지만 2016년 5월까지 소비자들에게 플랜티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엔씽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써 첫발을 내디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플랜티 앱도 꾸준하게 업데이트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엔씽이 스마트 화분 회사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느 순간 화분 만드는 회사가 되었더라구요. 우리는 세상을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엔씽은 최근에는 아무 화분에나 사용할 수 있는 센서 타입의 제품, 플랜토(Planto)를 개발했다. 센서를 꽂으면 모든 화분을 스마트 화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제품이다. 화분뿐만 아니라 텃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플랜티 화분에 사용하던 센서와 통신 부분을 별도로 떼어내서 만든 제품이다. 뿐만 아니라 센서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허브도 개발했다. 이 허브는 200개의 센서를 연결할 수 있다.


그들이 연결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이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 그 모두를 연결시키는 것을 꿈꾼다. 그는 식물 저널링 앱인 '라이프(Life)'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농업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만든다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테슬라가 만드는 전기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면 연비가 더 좋아집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우리가 만드는 식물 저널링 소프트웨어도 계속 성능이 개선되어 갈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키우려고 생각하지 못한 식물도 키우게 될 겁니다. 똑같은 작물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사용자 데이터가 모아지면 각 사용자의 환경에 맞게 식물을 키우는 방법도 업데이트되는 거죠."


엔씽이 만든 두 개의 앱을 깔아 보았다. 먼저  "플랜티(Planty)"를 깔았다. 이 앱은 스마트 화분인 플랜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앱이다. 스마트폰으로 화분의 상태 - 온도, 습도, 조도 - 를 모니터링하고 물을 주는 활동을 원격으로 할 수 있다. 플랜티 화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 테스트할 수는 없었지만 플랜티를 편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식물을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Life-스마트 재배일지" 앱을 깔았다. 이 앱은 식물을 키우는 활동을 간단하게 아이콘을 선택하여 기록할 수 있게 만든 앱이다. 식물의 사진을 찍고 식물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김 대표는 2만 명 정도의 사용자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류의 저널링 소프트웨어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널링의 기본은 기록이다. 무슨 식물을 언제 심었고, 물을 주고, 병해충이 생겼는지를 기록한다. 그는 이렇게 모아진 데이터를 활용하려고  한다. 이를 그는 '레시피'라고 부르고 있다. 식물 재배를 하는데 필요한 데이터와 노하우의 모음집이다.


엔씽이 만든 두 가지, 플랜토와 라이프가 결합하면 어떤 '케미'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다. 옥상의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는 자신이 키우는 작물 및 재배환경과 가장 유사한 사용자의 재배일지를 다운로드한다. 아니면 여러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최적의 재배방법을 가져 올 수도 있다. 플랜토 센서를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기존의 자료와 비교하면서 재배환경을 조정한다. 데이터가 자동으로 축적되면 재배법에 대한 이력이 만들어지고, 소비자는 특정한 환경에서 자란 농산물을 구매한다. 앱의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더 많은 작물과 재배방법에 대한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과연 가능할까'라며 고개를 갸웃 거릴 때 김 대표는 더 치고 나간다.


"우리는 화성에서 농사를 지을 겁니다. 우주에다 농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물론 이런 게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7, 80%는 되는 것 같습니다."


10년 후에는 김 대표의 바람처럼 우주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재배일지가 뜰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면 언젠가는 일어난다. 일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상상이 부럽게 느껴졌다.


플랜토

엔씽이 바라보는 농업의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일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농촌으로 가는 것은 다른 문제죠. 왜 전업 농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미래에는 사람들이 서너 개의 직업을 가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버 기사도 하고, 호텔 주인도 합니다. 퇴근하면 텃밭이나 옥상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될 것입니다."


우버가 등장하기 전까지 택시기사가 되는 방법은 택시회사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에어비엔비가 등장하기 전까지 호텔업은 자본가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반면에 누구나 농부였던 시대에서 이젠 국민의 불과 5, 6%만 농부인 시대가 되었다. 그는 다시 모두가 농부인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모든 국민이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농업을 혁신하자고 하면서, 천 년도 더 된 방식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뭡니까? 옥상에서 채소를 키워 먹으면 저는 농부입니까? 시장에 내다 팔면 저는 농민입니까? 저는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농업이 내가 생각하는 농업과 같지는 않지만 그가 바라보는 농업이 우리가 맞이할 미래와 더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은 농민들이 하는 것이란 오래된 명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걸 느꼈다.


"도시의 노동자랑, 농촌의 노동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과거의 농민을 공감해 줄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듭니다. 지금 은퇴자는 농촌의 향수가 남아 있어 농촌으로 가지만, 지금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농촌을 이야기하면 '거기 왜 가?'라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과거의 농업을 고집한다고 농촌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청년들이 농업으로 들어오지 않으면서 우리 농촌은 점점 고령화되어 간다. 농촌 인구 구성을 보면 60대 이상이 60%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농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바람처럼 모두에게 친숙한 농업을 하루빨리 만드는 게 대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엔씽의 사무실

엔씽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


엔씽이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시대의 트렌드가 되는 키워드를 기가 막히게 조합해 냈다. 사물인터넷(IoT), 소프트웨어,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농업.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주장했듯이 농업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미래산업이다. 그들은 창업대회부터 정부의 R&D 지원까지 창조경제 열풍도 적절히 잘 활용했다. 농업을 미디어 산업으로 정의했듯이 그들 역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엔씽은 디바이스 제조업에서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전문가의 지적처럼 디바이스 매출을 높이고 플랫폼 사업에서 매출을 만들어 내는 게 관건이다. 이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는 그들이 꿈꾸는 디바이스와 서비스 플랫폼, 모바일 커머스를 연결하는 개인용 스마트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농민인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엔씽은 금년 6월부터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농원'에서 제공하는 온실에서 직접 딸기를 재배하는 일을 시작했다. 실제로 농장에서 데이터를 모아 '레시피'를 만들어 가는 기초를 다져가고 있다.


김 대표는 그를 도와주고 있는 창업지원시스템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농장이 필요할 때 농장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과 연결되었어요, 딸기 재배는 또 전문가가 와서 도와줍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창업에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군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대란 말이 그저 그런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끝으로 김 대표에게 미래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역시 젊은이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5년 후의 계획 그런 거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세상이 바뀌어 가는 데 어떻게 길을 정해 놓고 갈 수 있어요."


다사카 히로시는 <슈퍼제너럴리스트>에서 과거의 비즈니스가 등산가의 전략이라면, 요즘은 파도타기 선수의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등산가는 목표지점까지 분명히 거쳐가야 하는 코스가 있는 반면에, 파도타기는 선수는 그때그때 파도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요즘 같이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에 먼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 오히려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런 유연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 대표와의 토론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손에 잡히는 실체는 형체가 모호했다. 김 대표 스스로도 어떤 말을 하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그 말 때문에 남들에게 고정된 이미지로 남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는 결코 이 말속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파도의 크기와 방향에 따라 자세를 바꾸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느 스타트업들처럼 엔씽 역시 많은 시련을 거쳐 갈 것이다. 김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지금처럼 힘들 줄 알았으면 후배들에게 창업하란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는 말속에서 벤처기업가로서의 고뇌가 느껴졌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꿈꾸듯이 "모두가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어연번듯한 모습으로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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