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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코타운 Aug 15. 2016

꼬마감자로 500억 원의 매출을 꿈꾼다.

농업에서 꿈을 찾는 청년들 : (1) 록야의 박영민 대표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향후 10년 안에 청년들이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농업이다’라고.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지만, 취업에 쏟는 열정의 일부만 농업을 이해하는 데 할애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강원도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기업 공간에서 만난 박영민 대표(33)는 자신감이 넘쳤다. 목소리에서는 젊은이의 힘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노고가 헛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록야(綠野)는 2011년 창업한 농업회사법인으로 감자를 유통해서 지난해 63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5년에는 <농식품창업콘테스트 - 나는 농부다>에서 우승한 벤처기업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감자 재배농가와 식품업계에서는 활기차고 일 잘하는 청춘들의 기업으로 이미 유명했다.


박영민 대표와 권민수 대표 (출처 : 오피스N)


꽃청춘, 농업에 뛰어들다


여느 벤처기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은 막막했다. 농업이라고는 우즈베크에서 씨감자 기술을 전수했던 경험이 전부였던 박영민 대표는 국내에 돌아와 백수가 되었다. 함께하는 권민수 대표 역시 다니던 농업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판로에 관심이 많았다. 제스프리, 썬키스트처럼 단일 작목으로 성공한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감자에 미래를 걸고 창업했다. 강원도에서 자란 것도 영향이 있었지만, 다른 작물은 잘 몰라도 감자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었죠.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정말 많은 일들을 상상하고 계획했습니다. 감자 종서 생산부터, 농가들과 연대, 감자 가공식품까지 우리가 만든 브랜드로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 감자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는 원대한 꿈을 꿨죠. 벼 육묘장에서 꼬마감자를 만들자는 계획도 그때 세웠습니다.”


10년쯤은 걸리겠지 했던 그들의 꿈은 불과 5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양구에서 종서를 생산하고, 제주부터 대관령까지 전국에 있는 감자 재배 농가들이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꼬마감자 아이디어는 5년 후에 창업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회사의 자산도 가지게 되었다. 원주에 곧 완공될 예정인 록야의 사옥이다. 여느 청춘들처럼 젊은 패기 하나로 출발한 그들은 황량한 대지 위에 그들의 꿈을 쌓았다.


창업한 후 처음 3년 동안 집에 월급을 가져간 게 일 년에 서너 달에 불과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두세 달은 농촌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농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십 년 정도면 농업에도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창업한 지 5년 만에 이 정도까지 왔으니 오히려 좀 당황스럽습니다.”


박대표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들을 이곳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졌다.


“남들은 동업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구를 때도, 거래업체나 농가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도 서로를 보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결기를 다졌죠.”


창업대회에서 우승


박영민 대표와 권민수 대표가 창업대회에 들고 나온 아이템은 ‘꼬마감자’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작은 감자구이나 감자조림처럼 한입에 먹기 좋은 감자 시장을 목표로 하는 사업모델이었다. 꼬마감자를 찾는 기업의 수요는 늘어났지만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들이 없어 항상 공급이 달리는 품목이었다.


두 사람은 ‘육묘장’에 주목했다. 육묘장은 벼의 모를 기르는 온실로 벼농사를 짓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는 시설이었다. 내부에는 여러층의 선반이 있어서 모판을 층층이 쌓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벼농사의 특성상 1년에 한 달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비어 있는 데, 여기에 재배 상자를 이용해서 감자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노지에서는 감자의 일부가 꼬마감자 크기로 생산되지만 토심이 얕은 재배 상자에서는 꼬마감자만 생산된다.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의 전환이었다. 큰 감자만 인정받던 시장에서 작은 것만을 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단번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이들의 창업이라면 으레 ICT나 빅데이터 같은 트렌디한 아이템이 들어가 줘야 할 것 같다는 편견도 함께 깨뜨렸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창업멘토인 씨엔티테크의 전화성 대표가 <스타트업 교과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그들은 시장의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했고, 그들만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1억 원의 상금은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다.


2015년 농식품창업콘테스트 <나는 농부다>에서 만난 박영민 대표(좌에서 3번째)


 따뜻한 마음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박대표는 우즈베크에서 씨감자 기술을 전수하는 일을 했다. 권 대표도 감자 회사에서 일을 했다. 둘 다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감자가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들은 현장부터 시작했다. 그때까지 감자 시장을 주름잡는 기득권은 대부분 60대였다. 반면에 그들은 젊었다. 현장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뛰어들 때는 대기업 구매 담당자를 편하게 하면 되겠다 싶었죠. 대기업 직원들은 문서작업에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서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현장에서의 대응도 당연히 빨랐죠. 우린 젊었으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패기 하나로 기존의 공고한 시장에 끼어들긴 쉽지는 않았다. 거래처를 찾아가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고, 농민들은 ‘애들이 뭘 하겠냐’며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때 그들은 ‘농민들이 돈을 벌게 하면 우리에게도 마음을 열겠지’라며 들판에서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마음 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을 열면 그만큼 따뜻한 분들이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감자 수확 현장에 농민들과 항상 함께 한다.


“만 평, 이만 평 하는 농가들은 돈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가들은 대개 천 평, 이천 평 정도 농사를 짓습니다. 이 농가들은 우리에게 물건을 다 넘기면 정말 돈이 안됩니다.”


그들은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우리는 농가와 계약할 때 재배면적의 70%만 합니다. 이게 우리의 성공 비결인데요, 왕특 크기의 감자는 시장 가격이 높아 수익이 좋습니다. 농민들이 그 크기의 감자는 전부 골라서 시장에 팔게 합니다. 시장에서 가격이 나오지 않는 작은 사이즈만 골라서 계약재배 물량으로 우리가 가져갑니다.”


청년 기업가는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농가의 이익을 우선했다. 전체 수확량 중 30% 정도는 크고 품질이 좋은 감자가 생산된다. 이 왕특 감자는 시장에서 킬로그램 당 천 원 정도를 받는다. 반면에 그 보다 작은 크기의 감자는 6-7백 원에 불과하다. 상인들은 전체를 가져간 후 큰 크기의 감자를 팔아서 수익을 남긴다. 그런데 그 수익을 농민들에게 넘긴 것이다.


“우리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농가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감자만 팔겠다고 한다면 기존의 중간상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했겠지만, 우리에겐 더 큰 꿈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업은 농사의 근간인 씨앗부터 시작한다. 양구에서 생산한 종서를 농가들에게 공급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들은 감자산업 가치사슬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우리는 농민들이 정말 농사를 편하게 짓게 하고 싶습니다. 농사에만 전념해서 좋은 감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좋은 농가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좋은 종자를 공급하고, 또 농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해서 싸게 공급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서 모든 자재를 공급 하기는 어렵지만 비닐과 같이 모든 농가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자재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있습니다. 농민들과 우리는 운명공동체라고 느낍니다.”


록야는 계약재배를 통해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농업서비스 업체로 진화하고 있다. 최종 수요처인 식품기업에게는 믿을 수 있는 품질과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하는 청년사업가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우리는 감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농민들은 감자만 재배하지 않습니다. 감자를 수확한 후에는 벼, 콩, 단무지용 무를 또 심습니다. 감자에서는 1년 치 농비를 뽑고, 후작물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자문합니다. 그런데 후작물이 판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우리가 도와드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을 돕다 보니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박대표는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자신과 같은 후발 주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이익을 극대화하여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시키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사업기반을 만드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는 듯했다. 젊으니깐 가능하다는 생각에 부러움도 들었다.



감자 수확 현장


농업이 청춘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농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방향을 틀었다. 젊은이답게 그가 바라보는 농업은 내가 서있는 농업과는 또 달랐다.


“국민들에게 농업은 떼쓰는 사람들, 고령화,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런 이미지가 남아 있는 데 젊은이들이 올까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뛰어들면 뉴스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들의 생각을 관심 있게 들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향후 10년 안에 흙수저 청춘들이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고. 취업에 쏟는 열정의 일부만 쏟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려면 농업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농업을 이끌고 가는 기업들은 농업 현장을 건드리지 않고 마케팅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놓치면 지구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젊은 사람들도 농업에 들어오면 유통만 하겠다고 합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하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판을 생각합니다.”


록야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유통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통을 알아갈수록 어설프게 준비해서 낄 수 있는 판이 아니란 걸 느꼈다.


“진짜 유통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 하는 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매출액에 취하다 보니 빈껍데기만 남더라고요. 처음 하는 사람들은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소비자들이 사주면 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박대표는 처음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몸서리쳤다. 수업료는 컸다. 처음 1년 동안 1억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유통은 원가관리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일반 산업이랑 농업이랑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는 걸 배웠습니다. 현장에서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 까먹고 가는 게 농산물 유통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난 7월 20일 강원도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그로어스(Grower's)의 첫 모임


농업과 스타트업의 만남


박대표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청년들에게 농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더 많은 스타트업이 농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그로어스(Grower’s)라는 커뮤니티 모임을 조직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모임은 모두 남이 만든 판이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는 그런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뛰어드는 데 꼭 성공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농업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질 것 같습니다. 길잡이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스타트업들에게 농업의 본질에 대해 보여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현장에서 구르며 체득한 것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로어스에서는 농민과 스타트업을 같은 비율로 섞어 놓았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마음을 여는 것,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그곳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


“우리 또래의 청춘들에게 농사지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농업에만 빠지지 말고 농업 전후방을 두루 살펴보고 무엇이 농업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박대표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농업이 있다. 배경과 배움이 다른 청년들에게 그들 나름대로 농업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농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타산업 분야에서 배운 지식이 결합하면 어떤 '케미'를 만들어 낼지 벌써 가슴 설레 인다. 그런 면에서 농업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농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기성세대들이 농업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나 역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록야의 임직원들 (출처 : 오피스 N)


꼬마감자에 승부를 걸다


“우리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마흔 살이 되면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 추세를 보면 그보다는 더 빨리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들의 포부가 그리 무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에 록야는 아산시 소재한 들녘경영체와 함께 벼 육묘장에서 꼬마감자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감자가공공장은 아산시에서 설치하고 운영은 록야가 맡게 된다. 록야는 땅과 시설에 돈이 묶이지 않아서 좋고, 지자체는 그 지역에서 생산한 감자를 판매할 수 있어서 좋다. 록야는 그들이 꿈꿔왔던 감자 전문 브랜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출범시키게 될 것이다.


이 사업모델이 성공한다면 록야와 함께 우리나라 감자 재배는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성공은 젊은이들에게 농업에 뛰어들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더욱 반갑다. 그들은 농업이 낙후되었다고 외면하지 않았다. 패기 빼고는 모든 게 부족했던 청년들에게 농업은 기회의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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