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농가를 덮친 ‘역대급 가위효과'
모두가 기름값을 본다.
호르무즈가 막혔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주유소 가격표가 바뀌고, 정부는 비축유 208일치를 말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있다.
지금 이 순간, 전남 고흥의 시설원예 농가는 하우스 보일러를 틀 때마다 시간당 경영비가 증발하고 있다. 경북 상주의 스마트팜 청년 농가는 매달 융자 상환금을 보내면서 비닐값 30% 인상 고지서를 함께 받았다. 충남 부여의 멜론 농가는 멀칭 비닐을 구하지 못해 파종 일정을 미루고 있다.
이 사람들의 위기는 뉴스에 잘 나오지 않는다.
한국 시설원예 농가의 경영비에서 난방비 비중은 30~50%다. 네덜란드나 일본 같은 시설원예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다. 평시에도 이미 기름값에 목줄이 잡혀 있는 구조다.
그 기름값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은 90% 이상 급감했고, 나프타 가격은 두 달 새 두 배로 뛰었다.
문제는 유가가 단지 주유소 가격만 올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비료, 비닐, 유류, 사료, 포장재. 농사의 기본 투입재 다섯 가지가 한꺼번에 뛴다.
요소 비료는 수입의 38.4%가 호르무즈를 거친다. 국제가격은 톤당 684달러를 돌파했고, 대체 물량은 품질이 떨어지는데도 더 비싸다.
멀칭 비닐은 나프타 원료값 급등으로 가격이 30~50% 올랐다.
사료는 환율, 해상운임, 유가의 삼중 압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나프타 가격 상승이 건드리는 건 비닐만이 아니다. 육묘용 트레이, 비료 포대, 관수용 호스, 축산용 사일리지 래핑 필름까지. 한국 농업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석유화학 공급망 안에 들어가 있다.
여기서 더 뼈아픈 대목이 있다.
2021년 요소수 대란 이후 우리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수입선을 다변화했다. 그런데 그 다변화의 방향 중 하나가 중동이었다. 그 결과 중동 요소 의존도는 43.7%까지 올라갔고, 그 물량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거친다.
한쪽 리스크를 피하려다 다른 리스크에 갇힌 셈이다.
이것이 다변화의 역설이다.
더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생산비가 올라도 농산물 값이 같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4월 기준, 오이 소매가격은 전년 대비 9.9% 하락했다. 애호박은 21.1%, 토마토는 8.1% 내렸다.
겉으로만 보면 “채소값이 싸졌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가격 하락은 공급이 많아서 생긴 하락이 아니다. 소비가 위축된 결과다. 경기 침체 속에서 장바구니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공급 과잉이라면 농가도 다음 시즌에 면적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살 사람이 없어서 가격이 내려가는 상황이라면 농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고통이 두 배가 된다.
투입비는 30~50% 오르는데, 내가 키운 채소 값은 오히려 떨어진다.
비용은 위에서 누르고, 가격은 아래에서 무너진다.
농가 소득이 양쪽에서 잘리는 전형적인 '가위 효과'다.
시설농가, 특히 융자를 받아 스마트팜에 투자한 농가들은 이 충격을 정면으로 맞는다. 원리금 상환에 직면할 청년농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스마트팜 온실 하나에는 수억에서 십수억 원이 들어간다. 정부 보조 50%, 자부담 20%, 융자 30%. 대개 5년 거치 10년 상환 구조다. 많은 농가가 시작부터 수억 원의 빚을 안고 들어간다. 이건 모든 상황이 좋을 때나 겨우 꾸려나갈 수 있다.
난방비 비중이 30~50%인 시설농가에게 유가 급등은 곧바로 경영비 15~25% 급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비료와 비닐값 상승이 겹친다. 매출은 줄고, 고정비는 폭증하고, 융자 상환금과 이자는 매달 빠져나간다.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순간, 버티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정부 보조금은 물론 필요하다. 면세유, 비료 추경, 비닐 지원 모두 출혈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본질은 보조금 규모가 아니라 원자재 수급 자체를 안정시킬 구조가 없다는 데 있다. 비료 비축이든, 수급 안정화 기금이든, 가격 급등 국면을 흡수할 장치가 너무 약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시차다.
지금 봄 파종에 쓰는 비료와 비닐은 지난해 하반기에 사둔 물량이다.
창고에 있는 비료는 아직 “어제의 가격”이다.
하지만 여름과 가을에 밭에 뿌릴 비료는 “오늘의 폭등가”로 다시 사야 한다.
즉, 농민은 미래의 비용을 오늘 먼저 지불하고, 그 결과를 내일의 불확실한 시장에 맡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마트에서 채소값이 싸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진짜 충격은 하반기에 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은 늘 같다.
고흥에서 보일러를 돌릴 때마다 돈이 증발하는 시설농가.
상주에서 융자 상환금과 비닐 고지서를 동시에 받은 청년 농가.
부여에서 비닐을 구하지 못해 파종을 미룬 멜론 농가.
모두가 유가를 본다.
하지만 아무도 이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
지금 봐야 한다.
데이터는 평균의 함정에 빠지기 쉽지만, 현장은 각자의 사정으로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