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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Feb 10. 2021

결국 나를 위한 자녀교육법 서평

자연출산 + 발도르프 육아. 육아서 추천



자연출산으로 아이를 맞이하고 발도르프 육아관으로 아이를 육아하는 엄마의 에세이라니, '내가 썼나?' 착각할 만큼 공통점이 많은 권희려 작가님의 <결국 나를 위한 자녀교육법> 읽었다. 자출가모 카페에서 출간 소식은 들었는데 게을러서 바로 주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서평단 모집하시기에 냉큼 지원했다. 요즘 한국슈타이너인지학센터에서 온라인 강의로 '일반 인간학' 듣는 중인데 작가님도 수강생   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나도', '맞아맞아', '진짜진짜' 하며 공감했다. 자연주의 육아, 발도르프 육아,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첫째를 키우며 살았기에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그런데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꿈별이를 만난  첫째 때의 육아 방식을  이상 고수할  없게 되었기에, 여전히 발도르프 육아를 하고 있는 저자가 부럽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책은 자연출산, 발도르프 육아만이 옳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엄마의 희생을 바탕으로 아이를 좋은 육아관으로  길러내라고 말하는 육아서도 아니다. 출산 방식도 육아관도 엄마가 치열하게 고민한 후에 내린 결정이고  모든 것은 결국 엄마인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털어놓는 행복한 고백이다.



 책이 '자연출산이 이렇게 좋아요, 발도르프 육아가 이렇게 좋아요, 미니멀라이프가 이렇게 좋아요!' 하는 책이었다면 나는 한때 내가 추구했던, 그러나  이상 실천할  없는 가치를 나열한 글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육아란, 교육이란 "본래 인간이 '자신을 교육하는 '"이라며 "엄마가 되고 나서 진짜로 키워야 하는 대상은 ' 자식' 아니라 바로 ' 자신'이었다"(73) 힘주어 말한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집안이 난장판이 되어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복을 발견했고,  행복은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엄마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  쓰는 엄마 볼에 뽀뽀를 날려준다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좋았다. " 방식이 옳아요!" 아니라,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서툴던 시기를 거쳐 차츰 깨달음을 얻어나간 여정이 솔직하게 적혀있다. "내가 이렇게 해보니  좋아요. 여러분도 나부터 찾고 나를  아끼면서 행복하게 육아하세요." 하며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다독이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말은 지겨울 만큼 회자되지만 상황에 따라, 화자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이용된다. 엄마가 순간의 쾌락을 취하기 위해 아이를 방치할 때도 쓰일  있는 말이고, 아이의 발달이나 기질에 관계없이 엄마 욕심대로 강요할 때도 쓰일  있는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결국 나를 위한' 그렇게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하고 진정으로 바로 서서 삶을  살아가려는 '' 만나는 , 그게  육아이며 교육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엄마표 한글, 엄마표 영어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다.     



나는 첫째 고래를 자연출산으로 만났고 돌이 되기  발도르프 교육을 알게 되어  책의 저자처럼  매력에  빠졌다. "적어도 아이들이 나의 무지로 인해 잘못되는 일은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33)으로 육아서를 읽고 강의를 찾아 들었다. 저자가 참가했다는 부모성장 국제특강에서 크로머 교수의 '영유아의 인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발도르프 교육' 강연(135) 나도 들었다. 고래  때쯤 "우연히 미니멀 카페에 입문을  계기까지 더해져 진짜 미니멀을 단행하기 시작"(248)  것마저 똑같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공부하고 발도르프 육아관에 맞춰 고래를 키우는  행복한 여정이었다. 제일 좋은 점은  주관이 확실히 생기면서  이상 난무하는 육아 조언에 흔들리지 않게  것이다. 발달에 자극을 줘야 한다든가, 또래를 빨리 만나서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든가, 한글, 영어 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든가 하는 엄마들을 끝없이 불안하게 하는 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있었다. '국민' 붙은 장난감 하나 없이 아이를 잘만 키울  있다고 믿었고, 정말 그렇게 키웠다. 미디어 노출 없이, 장난감 없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 속에서 놀게 하고, 내가 정성 들여 지은 자연식 밥상만 먹였다. 온몸이  감각기관인 아이에게 지나친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마트, 문화센터, 쇼핑몰, 식당, 키즈카페 전부 멀리했다. 평온했다.



그런데 둘째는 출산부터 달랐다. 저자처럼 나도 첫째를 자연출산 병원에서 만난  둘째는 가정 출산으로 만나기를 꿈꿨다. 그러나 십이지장 기형으로 태어나자마자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둘째 꿈별이를 위해 나는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자리가 있을  대학병원에서 유도 분만으로 아이를 만났다. 첫째를 낳고 백일 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는데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부신 대학병원 인큐베이터 속에 여러 의료 기기에 의존해서 겨우 숨을 쉬었다. 발도르프 교육을 몰랐더라면 플라스틱  안에, 일회용 호스와 주삿바늘에 연결되어, 엄마 품에도 안기지 못하고, 젖도 먹지 못한  홀로 누워서 회복해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자체로 감각기관이나 다름없이 주위 환경을 흡수한다는  오랜 발도르프 공부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니큐에 놓고 집으로 돌아와  시간마다 유축을 하는  피눈물 나는 일이었다.



결국 나를 위한 자녀교육법. 울림 사진


"부모가 사랑을 가지고 올바른 방식으로 키우고 배려하면 알아서 기고 걷고 하듯 알아서  크게 된다. 부모의 걱정과 불안, 불신의 고향에서  쓸데없는 개입은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다."(143) 나도 첫째를 그렇게 키웠다. 뒤집지 못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뒤집기 연습을 시키지 않았고,  준비가   아이 손목을 들고 세워서 걸으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아이의 속도대로 발달하도록 기다리면서 나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퇴원  둘째도 그렇게 키웠다. 그러나 둘째는 8개월이 넘도록 목을 가누지 못했다.  늘어져 누워만 있었고 초점도  맞추지 못했다.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첫째 때처럼 따뜻한 환경, 리듬 생활, 사랑만 주면 된다고 재활치료를 미뤘더니   돌이 되는 꿈별이는 아직 네발 기기도 하지 못한다. 의료진도, 주변 사람들도  엄마가 애를 방치해서 이렇게 느린 거라고 비난했다. 지금은  5 치료실에 다니지만 매일 집에서  개입을 하라고,  운동 시키라고 잔소리를 듣는다. 발도르프 교육을 몰랐더라면 니큐 퇴원하면서 바로 재활 대기를 걸었을 것이고 진작 국민 장난감을 사서 아이에게 자극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자연물을 주겠다고, 기계음을 들려주지 않겠다고, 품에 안고 수유만 했더니 작업 치료실에서 치료사가 장난감을 내밀자 꿈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날 치료실을 나와 바로 유아 용품점으로 가서 발달에 도움 된다는 장난감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울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첫째를  키운 육아관이 둘째에게 맞지 않다는  너무나  절망이었다. 인간에 대한 철학인 인지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발도르프 학교들이 대부분 통합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학습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다는 발도르프 도움수업 온라인 강의에서 다운증후군 아이의 학습에 대해 질문했더니, 그전까지 너무나 온화하고 평화롭게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이 매우 당황하며 의사와 상의하라고, 이건 치료가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실망했다. 내가 좋아하던 곳에서  떠밀려 나가야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치료실을  때마다, 아이에게 장난감으로 발달을 유도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언어 발화 연습을 시킬 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년간 갖고 있던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지식이 지금 꿈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시키는 나를 공격했다. 급기야는 '발도르프 꺼져!!'라고 외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가장 보통의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남편은  해외 발령이 났고  둘을 돌보면서, 둘째 치료를 다니면서, 혼자 살림을 하면서, 발도르프 육아를 하는  내게는 불가능했다. 다섯  고래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장난감을 사주기 시작했고, 이모 손에, 할머니 손에 맡겨서 키즈카페로 보냈다. 집에는 형형색색 노래가 나오는 국민 장난감이 가득 쌓였고 꿈별이는 배달 이유식을 먹었다. 편했다. 이렇게 편하게 육아할  있는 거였다니, 배신감이  정도였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부모가 걱정, 불안, 욕심으로 아이를 닦달하는  나쁜 만큼,  가지 육아 방식이 옳다고 대다수가 하고 있는 육아를 함부로 판단하고 폄하하는 것도 나쁘다는 사실을.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강남 엄마와, 산속에 있는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보내겠다고 이사까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살이면 사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는 것만큼, 아이에게 플라스틱 장난감은 나쁘다고 조언하는  역시 주제넘은 오지랖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집에는 커다란 TV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온 남편이 강력히 원했고, 나도 어차피 고래에게 주말마다 영상을 보여줄 바에는 작은 화면보다는  화면으로 멀리서 보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낳기 전의 나는 TV 중독자였기에 애들 재우고, 애들 없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뒤늦게 미디어를 접한 고래는 뽀로로부터 시작해서 폴리, 옥토넛을 거쳐 지금은 고고다이노를 좋아한다. 또래들의 관심사를 따라가는 만큼 장난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고래를 키울  품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업고 빨래하고 밥하던 나는 베이비룸을 사서 꿈별이를 가둬놓고 밥을 한다. 조금만 힘들면 퇴근한 남편한테 외식하자고 바람을 넣어서 쇼핑몰로, 마트로 나간다. 한겨울에 니큐 면회를 다니느라 산후조리 폭망, 매일 왕복  시간씩 치료실로 운전을 해서 오가고 종합병원 9개과에 진료를 다니느라  아픈  없는 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수가 없다.  



그럼 이제 발도르프 육아는 포기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발도르프 공부를 하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독일에 있는 교수님의 '일반 인간학' 강의를 집에서 편히 들을  있어서 신이 나고, 어떻게 치료시간을 조정해서 인지학센터에 이야기 수업을 들으러 가볼까 궁리한다. 매일  잠자리에서 고래에게 엄선해서 고른 동화를 읽어준다. 영상은 주말에만 보기로 단단히 약속을 했고, 주말에도 남편과 고래를 억지로 내보내 동네  바퀴라도 돌고 오라고 닦달하며 들숨과 날숨을 조절한다. 어쩔  없이 사운드북, 알록달록 장난감에 익숙해져야 하는 꿈별이지만, 원목 블록과 내가 만든 달팽이 , 인형도 같이 준다. 김희동 선생님의 동요, 유요를 불러주고 라이어나 글로켄슈필도 종종 연주해 준다.  마디로 발도르프 육아는 현실과 타협한  진행 중이다.



꺼지라고 외칠 때는 언제고 여전히 발도르프 육아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도르프 공부는 나를 찾게 해줬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런 존재다. 엄마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자기만의 최적화된 모성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꿈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106)  책의 설명처럼 첫째를  키우려고 시작한 발도르프 공부는 결국 나를 키웠다. 지금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플라스틱 장난감을 쥐여줄지언정 나는 여전히 인간을 탐구하는 인지학이 재미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세상에  사람이고 풀어야  과제가 있다고 말하는 인지학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 육아를 넘어 삶의 지침이 되어 주었다. 꿈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임신 중에 알게 되었을   아이를  낳을 거라고 주장할  있었던 이유  하나이기도 하다. 인지학에서는 아이는 부모와 교사를 선택해서 온다고 말한다. 발도르프 교사는 나를 선택한  아이가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모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꿈별이가 나를 택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세상에 와야만 하는 이유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그것을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은  아이를 사랑으로 맞이해서  이유를 찾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무리 장애아를 낳을 생각이냐고 만류해도 아이를 지킬  있었다. 비록 꿈별이에게 필요한 치료가 발도르프 교육에서 말하는 좋은 환경과 맞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기꺼이 꿈별이를 맞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상 고래 때처럼 발도르프에 심취한 육아를 하지 못하더라도  공부는 나에게 소중하다.      


슈타이너 박사는 
어떤 아이도 나름대로 새로운 과제이고
새로운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어린이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
대단히 힘들지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진실한 작업이라고 했다.

교육자인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일은
얼굴 생김새 다르듯 제각기 모두 다른 아이들이
앞으로 실제  속에서 
당당히   있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해 주는 것일 뿐이다.
...
신이 만들어놓은 보물찾기 같은 흥미로운 세상을
온몸과 마음으로 즐기며 변화무쌍한 삶을 사는,
나란 사람의 모습을 나의 자녀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한 자녀교육법> 200~201


 육아 방법은 '결국 나를 위한 자녀교육법'이기에 나는 첫째 때와 상황이 너무나 달라진 지금도 저자의 글에 공감하고 감동할  있다. 무엇보다도 인지학의 가르침을 새기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읽고 쓰는 삶을 택한 저자의 선택을 응원한다.  주변에는 자연출산을 하고 발도르프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수십  있다. 아마 전국에 수백 명의 엄마들이 이런 육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발도르프 육아에 대해 글을  엄마는 없다. 거의  교육전문가가  책이거나, 외국에서 발도르프 학교를 보낸 학부모의 책이 한두  나와있는  전부이다. 용기를 내서 자신의 출산과 육아 방법을 공개하고,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눠준 권희려 작가님께 감사하다.  주변에 발도르프 육아하는 훌륭한 엄마들도 글을 쓰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있게.^^


아이를 맞이하는 부모,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모두에게 추천한다.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행복한 엄마라는  잊지 말고 '결국 나를 위한' 육아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본 서평은 인스타그램 서평단을 통해 도서 지원ᅳᆯ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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