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늘 글을 쓰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쓰는 사람이 된 건 둘째를 낳은 후의 일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수술을 받고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있는 아이를 두고 홀로 퇴원해서 첫째 앞에서 의연한 척을 하며, 세 시간마다 모유 유축을 하며, 매일 병원에 면회를 다니던 한겨울이었어요. 둘째는 황달도 오고, 호흡 곤란도 겪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이겨내어 마침내 퇴원 날짜가 결정되었습니다. 밤에도 꼬박꼬박 시간 지켜 유축을 하느라 잠을 푹 자지 못했는데, 어느 새벽 뭐에 홀린 듯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 같기도, 고백 같기도, 반성문 같기도 한 토해냄이었습니다. 한 번 퇴고도 하지 않고 인연이 있던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 편집장님께 메일로 보내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감사히 지면을 내어 주셔서 1년 동안 둘째를 낳고 키우는 이야기를 연재했습니다.
<민들레>와 처음 인연이 된 건 첫째가 두 살 때였어요. ‘자연출산 가족모임’ 인터넷 카페 중 소모임 격으로 청양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주 신나게 공동육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민들레> 편집장님께서 글을 싣고 싶다는 연락을 해오셨어요. 전에 글을 쓰는 직업을 잠시 가진 적이 있어서 제가 대표로 쓰게 되었어요. 이후에는 아이돌이 주제였던 <민들레> 잡지에 젝키를 좋아했던 시절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특별히 글에 대해 열망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우리 육아 모임이 너무 좋아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나섰고, 1세대 아이돌에 대해서는 늘 H.O.T.팬들이 보여지는 게 샘이 나서, “젝키 팬이 여기 있다!!!” 외치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아이돌을 좋아해도 괜찮은 시민으로 잘 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서 글을 썼을 뿐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거나, 어떻게 읽힐까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글은 언제나 쓰고 있었습니다. 육아 카페에, SNS에 늘 그날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고, 사람들과 소통하곤 했지요. 무언가를 늘 끼적이고 있었지만 ‘글’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글은 대단한 사람이 쓰는 것, 고귀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글이라는 건 나 같은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쓰는 건 ‘글’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해’ 등등의 생각을 했습니다. 제 글에만 가혹했던 것은 아닙니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 중 상당수는 잘린 나무가 아까울 정도로 무가치한 글이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글, 의미 있는 글, 새로운 글, 정확한 글, 진지한 글, 나무를 자를 가치가 있는 글만이 진짜 글이라고 여겼어요. 그러니 제가 쓰는 건 글이지만 글이 아니었죠.
높은 기준을 들이대며 자기 폄하를 해서 그렇지,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어려웠던 적은 없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연습장에 욕을 쓰면서 화를 풀었고, 여행을 가면 꼬박꼬박 일기를 썼습니다. 방문자가 거의 없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도 나만 아는 글을 써서 올리곤 했어요. 글쓰기를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레 쓰고 있었지, 쓴다고 의식하면서 쓰진 않았어요.
의식하면서 쓰기 시작한 건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언론사는 대부분 학력, 전공 무관이라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 비중이 큽니다. 판에 박힌 자소서를 써서는 서류 통과가 요원한 일이기에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고민해서 썼습니다. 필기시험은 상식이나 언론 관련 시험도 있지만 대부분 논술과 작문 전형이었습니다. 성격이 다른 글이지만 둘 다 연습해야 했어요. 그래서 4학년 때부터는 거의 매일 한두 편의 글을 썼어요. 시험 시간이 짧고 황당한 주제가 나올 때도 많아서 그에 대비하기 위해 스터디 모임에서도 타이머를 맞춰 놓고 서로 기상천외한 주제를 던져주며 글쓰기를 훈련했습니다. 1시간에 논술 한 편, 30분에 작문 한 편은 완성하도록 연습했어요. 탈락을 하더라도 글을 완성하지 못한 채 시험지를 제출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게 나름의 뿌듯함입니다.
저는 결국 원하던 언론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지 못했어요. 최종 합격은 몇 번 했지만 정말 가고 싶던 회사는 아니었고, 나름 열심히 일했지만 제 커리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열패감에 가득 찬 채로 퇴사를 하고 ‘전업맘’이 되었습니다. 잠깐 기자로 일을 한 적도 있는데 그때는 밥 먹고 하는 일이 기사 쓰기였고, 그걸로 돈을 받았죠. 그렇지만 기사를 ‘글’이라고 여기지 않아서 그때도 글을 잘 쓴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공 살려 취직한 친구들보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며 애를 썼는데 성과가 없어서 속상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부서로 옮기고 싶어서 거의 7~8년 동안 입사 시험을 계속 쳤어요. 그렇게 해서 끝내 성공이라는 걸 했다면 끈기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실력은 없으면서 포기할 줄도 모르는 ‘미련곰탱이’가 되었어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둘째를 낳고 갑자기 저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어서 고민합니다. 글을 쓰면서 지옥 같은 시기를 버텼고, 가슴 찢어지는 고통에서 조금 거리두기를 할 수 있었고, 삶에 직면하는 힘이 생겼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대단하고 훌륭한 ‘글’의 기준에 부합하게 되어서 글쓰기가 좋아진 건 절대 아니에요. 그때의 기준에 대면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한 글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기준을 버렸어요. 글이라는 게 그리 대단해야 하고, 훌륭해야 하고, 지식이 가득해야 하고,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 지금은 믿어요. 제가 둘째를 낳고 나서 쏟아낸 글은 대단치도, 훌륭하지도 않지만 저를 살렸어요. 그때 쓰면서 토해내는 시간이 없었다면 진작에 높은 데서 뛰어내리거나 차도로 뛰어들었을 거예요. 여러 번 상상했기에 진심입니다. 그래서 그런 잣대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훌륭한 글이 아니어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글이면 되지, 내 작은 목소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지도 몰라, 아니 꼭 그러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에세이레터 <조각보>에 매주 에세이를 쓰고, 블로그에, 브런치에 포스팅을 하고, 비마이너라는 장애 언론사에 기고도 하고, SNS에도 짧은 글을 자주 올립니다. 아이 둘 키우면서, 매일 치료실 다니면서 어떻게 글을 쓰냐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기본적으로 수다쟁이이고 늘 하고픈 말이 샘솟아서 물리적으로 쏟아낼 시간이 부족할 뿐, 글감이 부족한 적은 없어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도 계속 쓸 수 있는 건 언론사 시험 준비 시절, 하루도 빠짐 없이 글쓰기를 훈련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간과 노력은 엄청 투자했지만, 학위가 나오는 공부도 아니고, 원하던 회사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했다고 자책했는데, 아주 쓸모가 없는 노력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에 후루룩뚝딱 내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훌륭하고 매끄럽고 진지하고 멋진 글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런 글은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글쓰기에 쏟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없어도 생업이 있는 분들은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는 대단치 않은 글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이제 나무를 베지 않아도 글을 쓰고 나눌 수 있게 되었잖아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아주 쉽게 독자와 작가가 만날 수 있는 세상, 실컷 누립시다.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이야기를 써야 글이 아니라고, 그냥 내 생각, 내 감정, 내 경험을 털어놓아서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하루를 또 살아갈 힘이 생긴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누군가 그 글을 읽고 공감하거나 위로를 받는다면 금상첨화라고,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마흔 여성, 울림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씁니다.
*에세이레터 <조각보> 48호(2021.6.22.)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