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엄마의 글쓰기 2

by 울림



글을 잘 쓰려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면 글쓰기 실력이 느는 건 당연지사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잘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연구하고,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많이 연습하면 뭐든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조언이 싫다. 아이 키우는 엄마는 많이 읽을 수도, 많이 생각할 수도, 많이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북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팔로우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게시물을 잔뜩 볼 수 있다. 연말에는 한해 동안 읽은 책을 결산하는 게시물이 많이 올라왔고 연초에는 올해 읽을 책을 미리 쌓아두고 독서 계획을 다짐하는 게시물이 많았다. 책을 한쪽 벽에 사람 키만큼 쌓아 놓고, 이 정도는 읽어야 책 좀 읽는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자랑도 많다. 그런 게시물을 볼 때면 나는 생각한다. ‘돌봄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아이를 낳아 키우면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정말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활동에까지 제약이 생긴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7년 차 전업 엄마인 나는 그 와중에도 조금씩, 기를 쓰고 책을 읽어 왔다. 회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던 출산 전에 비하면 엄마가 된 이후의 독서는 전투에 가깝다. 고요히 생각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똥도 편히 쌀 수가 없는데, 밥도 편히 먹을 수가 없는데, 생각이라는 걸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맨날 까먹고, 제자리걸음이다. 오죽하면 “애 낳으면서 뇌도 같이 낳았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있을까. 잠을 푹 잘 수 없기에 정신이 늘 멍하다. 일상생활도 겨우 하는데, 기저귀 주문도 간신히 하는데, 글을 쓸 만한 연결성이 있는 명료한 생각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 되면 예상이 되겠지만, 당연히 쓸 시간도 없다. ‘우리 애가 열이 나는데 어떡하죠?’, ‘우리 애 얼굴이 찢어져서 피가 나는데 어쩌죠?’ 주변에, 맘카페에 물어본 뒤 지나치지 않고 조언해 준 댓글에 감사 인사를 할 시간도 부족할 만큼 엄마는 바쁘다. 책상에 앉아 손글씨로, 혹은 컴퓨터 앞에서 타자로 글을 쓰는 건 엄청난 엄두를 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먹기만 하는 사람인 게 아닐까? 적어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만이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거 아닐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에게 그런 시간은 허용될 수가 없는데, 이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쩌면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은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벽을 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애 키우는 엄마는 그저 애 밥이나 하고 기저귀나 빨라고, 글쓰기 곁에는 얼씬도 말라고 내쫓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하늘은 책이다. … 땅이 끌어안고 있는 만물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보다 멋진 텍스트가 어디 있으랴. … 천지라는 이 우주적 도서관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읽지 않을 수 없다. 고로 삶은 읽기다!”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64~65쪽.


삶은 읽기다. 고로 꼭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된다. 책 읽기를 예찬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결론을 얻었다. 삶을 잘 살면 된다. 내 삶에 충실한다면 이미 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기와 쓰는 것이라고 다를까? 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다가 노년에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면 다른 어떤 시집에서도 느낄 수 없던 감동이 밀려온다.


“남편은 자기 생일날 밥을 빨리 안 준다고 상을 엎어 밥상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을 새로 안 사고 석 달 동안 땅바닥에 밥을 줬더니 그 뒤로는 상을 안 엎었습니다.”

‘남편 버릇 고치기’ - 김영분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남해의 봄날, 127쪽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써야 한다. 생계에 바쁘고 육아에 지쳐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쓸 수 없는 사람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그대로다. 인생을 안다면 글도 쓸 수 있다. 1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읽기 어렵고, 이어지는 생각을 진득하니 하기 힘들고, 연습할 여유가 없는 전업 엄마도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글을 잘 쓸 수 있고, 어떤 자격이 있어야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 글쓰기를 방해하는 건 바로 그런 생각이다. 글은 어떠해야 한다고, 작가는 어떠해야 한다고 훈수 두는 말들을 가볍게 무시하자. 책 좀 읽었네, 글 좀 쓰네, 하고 잘난 척하는 그네들, 오늘 밥은 누가 차려줬냐고 물어보자. 그냥 마음대로 쓰자. 우리의 글이 세상에 널리 널리 퍼지게 하자. 더 많은 엄마들이 자기의 글을 쓰길 바라며 아이들 하원 전에 부랴부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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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레터 <조각보> 35호(2021.3.23.)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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