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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ug 18. 2022

엄마에게 자기돌봄이 필요한 이유

[엄마의 자기돌봄] 들어가는 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면 

직장맘이든, 전업맘이든,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돌봄에 쓰게 됩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한 생명을 돌본다는 건

출산 전까지 해온 어떤 일과도 다른

생소하고 낯선 경험입니다.

직업이 어린이집 교사였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내 아이를 육아하는 데에는 퇴근이 없기 때문이죠.

어른을 돌보는 것과도 다릅니다.

저는 휴학생 때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반년 정도 전담해서 돌본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밥해 놓고 출근하시면

식사를 먹여드리고, 기저귀 갈아드리고,

가렵다고 하면 로션 발라드리고,

시간 맞춰 약 챙겨드리고,

무섭다고 하면 옆에 누워 주무실 때까지 토닥이고,

악몽 꾸거나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시면

다독이며 진정하시게 돕고,

그러다 자꾸 말 걸면 짜증도 내면서,

낮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가 퇴근하시거나, 학교 갔던 동생이 돌아오면,

저는 바통 터치하고 나가서 술을 마셨죠. 

처음 아이를 낳아 똥기저귀를 갈 때

거둥이 불편하신 할머니의 기저귀에 비해

아이의 변은 냄새조차 향긋하고 귀여워서

어려울 게 하나도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쉬운 건 딱 하나 기저귀 가는 것뿐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됐지만요.

아무튼, 치매 걸린 할머니의 돌봄을 해본 사람에게도

육아는 처음 만나는 어려움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락가락 하실지언정 

아예 말이 안 통하는 상태는 아니셨어요.

식사 하자마자 밥 안 먹었다고 우기기도 하시고,

저만 알아보시는 바람에 

다른 식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만큼 저에게 집착하시기도 했지만,

그때는 가족이 함께 할머니를 돌봤기에

제가 술 마시러 나간다고 

돌봄에 공백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이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훨씬 더 무서운 일이었어요.

술 마시러 나가기는 커녕, 

음식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마저 쉽지 않아서

엄마들 사이에는 '음쓰 탈출'이라는 

조어마저 통용됩니다. 

음식쓰레기를 핑계로 집밖에 나가서

수유복 차림으로 카페를 가든,

동네 한 바퀴를 돌든,

어쨌든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죠.

외출은 커녕,

제 때 먹을 수도, 제 때 잘 수도, 

제 때 쌀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바로바로 해소할 수 없어요.  

"이게 사는 건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돌봄이란 내 똥을 참으면서

아이 똥을 치우는 일이고,

내 밥은 못 먹어도 

아이에게 수유를 하고, 

밥을 지어 먹이는 일이고,

나는 아플 수조차 없을 때에도

아픈 아이를 밤새 간호하는 일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동시에

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바닥까지 드러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최신 육아 정보에서 뒤처져서도 안 되지만,

육아 '카더라'에 너무 휘둘려서도 안 되고,

좋다는 걸 해주되, 너무 유별나서도 안 되고,

사회성을 가르치되, 

아이의 감각기관을 보호해야 하는,

모순되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회사라면 때려치울 수라도 있지만

육아는 도망갈 수도 없고 퇴근도 없습니다.

아이가 웬만큼 자기돌봄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마라톤입니다.

첫째 고래가 여덟 살쯤 되니

이제야 손이 좀 덜 가네요.

이제 학업이라는 다른 과제가 펼쳐지긴 했지만

저는 아직 그 챕터에 대해서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기에

고래 육아만 놓고 보면 요즘은 꽤 살만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이가 하나 더 있고,

꿈별이는 마침 느리게 크는 아이라서

이 지긋지긋한 돌봄노동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뛰어내려 죽지 않으려면

제가 저부터 돌봐야 합니다.

우울증으로 아이들 방치하지 않으려면,

같이 죽겠다고 나서지 않으려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일부러 집안일을 못본 척

커피숍으로 나가버리고,

일이 산더미여도 BTS 영상을 보고,

애들이 부르는 소리 좀 못 들어도

이어폰 꽂고 설거지로 도피하고, 

넷플릭스 틀어주고 늦잠도 자고,

그래야 삽니다.

아주 잠깐의 숨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게

엄마의 자기돌봄입니다.

"엄마라는 사람이 무슨 저런 일을"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고,

거창하게 뭘 하기도 전부터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꼭 챙겨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쉬게 해주는

돌봄의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누려야 됩니다.

엄마 8년차인 저는

꽤 잘 챙겨서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 고비가 있었고

지금도 대단히 안정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경고등을 전보다 빨리 알아차리고

응급 자기돌봄을 시행할 정도로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풀어볼게요.

아직 자기돌봄 방식을 찾지 못한

돌봄제공자, 돌봄노동자가 계시다면

하나씩 따라해보면서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 보시면 어떨까요.

엄마의 자기돌봄을 응원합니다.



© lianamika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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